광화문광장에 은행나무를 돌리도!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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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광장에 은행나무를 돌리도!

2020.10.07

300대의 경찰 버스에 둘러싸인 광화문광장 전경 사진은 극사실 기법으로 그린 초현실주의 그림 같습니다. 기괴하고 괴괴합니다. 공기도 흐름을 멈춘 것처럼 보입니다. 색깔은 화강암의 회색빛, 아스팔트의 검은빛이 전부입니다. 소리가 있어도 들리지 않는 곳, 사진을 들여다보려니 침묵만 깊게 느껴집니다. ‘침묵의 광장’을 지나 ‘죽음의 광장’이라고 해도 되지 싶습니다.

페이스북에는 광화문광장의 이 광경을 모질게 짓씹어 놓은 글귀가 수백 개 올라와 있습니다. 그중 “당신은 이제 안전하다 여길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국민을 차단한 게 아니라, 당신 스스로 감옥 속에 들어간 것. 민의를 떠나 옹벽 뒤에 숨은 왕의 고독. 그게 제일 큰 참형이라. 왕의 가수들이 그걸 조롱해주듯이”라는 글이 먼저 떠오릅니다. 추석 전날 TV에서 “국민을 위해 목숨 건 왕이나 대통령은 보지 못했다”고 말한 나훈아를 왕을 조롱한 가수라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이 글을 좋아했습니다.

“장담하는데, 문재인 치하 대한민국에서 괴벨스는 실업수당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할 거라는 거다. 괴벨스 정도의 선동가는 그 흔한 (문빠) 맘카페 운영자 자리도 차지할 수 없다는 거다”라며 광화문광장을 줄지어 막은 버스 행렬을 “방역의 벽”이라고 주장한 여권 인사들을 나치 독일의 괴벨스보다 악랄한 선동가라고 야유한 글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런 글귀와 광화문광장을 찍은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예전 광화문 거리(세종로-광화문 부근에서 교보문고 앞까지)가 그리워졌습니다. 늠름하고 풍성한 은행나무가 길 가운데에 줄지어 서 있고, 길가 보도에는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들이 넓은 잎새를 펄럭이던 그 거리 말입니다.

내 생각에, 그 광화문 거리의 절정은 지금 이맘때부터 시작되는 가을이었습니다. 특히 늦가을, 옷깃 세운 행인들 발걸음 빨라지고, 은행잎 샛노랗게 물들어 한 잎 두 잎 낙엽 되어 쌓이고, 플라타너스 바짝 마른 잎이 차가워진 바람에 쓸려 보도 이 구석 저 구석을 뒹굴던 때, 효석의 수필-“낙엽을 태우면 커피 볶는 냄새가 난다”던-과, 구르몽의 시-“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라고 묻던-가 저절로 떠오르던 그때 말입니다.

“샛노란 은행잎이 가엾이 진다 해도 정말로 당신께선 철없이 울긴가요”라며 헤어지기 싫어하는 애인을 달래는 문정선의 ‘나의 노래’와 “마른 잎 떨어져 길 위에 구르네, 바람이 불어와 갈 길을 잃었나, 아무도 없는 길을 너만 외로이 가야만 하나”라며 가을의 조락(凋落), 그 쓸쓸함을 또 다른 음계로 그려내는 임희숙의 ‘마른 잎’ 같은 노래도 예전 그 광화문 거리에서 떼놓을 수 없는 기억, 추억입니다.

2006년, 서울 시장이었던 오세훈은 광화문 거리를 2009년까지 광장으로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서울 도심 재창조 프로젝트'의 일환이자 ‘관광객 1,200만 명 시대를 열기 위한 계획’이라는 설명이 따랐지요. 경복궁, 세종문화회관 같은 관광과 문화적 명소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세종로 복판에 보행로를 조성하고 차량 통행을 억제하기 위해 차선을 줄이는 게 기본 방향이었습니다. 2008년 5월 말에 광장 조성 공사를 시작한 서울시는 이듬해 8월 1일에 완공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때까지 서울 도심의 상징이었던 은행나무는 뽑혀서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플라타너스는 잘려서 사라졌습니다.

은행나무는 광화문 거리의 상징과도 같으니 그대로 뒀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컸으나 원래 일제가 조선의 주작대로(朱雀大路-궁궐의 남문에서 도성의 남문까지의 길, 조선에서는 광화문에서 숭례문까지)의 기를 죽이려고 심었던 나무였으며,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너무 자라서 광화문과 경복궁, 청와대, 북악산을 가리고 있다는 또 다른 여론에 덮였습니다. 광화문광장에서 녹색이 사라지고 화강암이 뿜어내는 잿빛의 지배가 시작된 데는 이 여론의 힘도 컸을 겁니다.

오세훈의 광화문광장 조성 계획에 반대하던 사람들의 주장이 기억납니다. “가을 정취를 짙게 해주는 은행나무는 절대 옮겨서는 안 된다”는 낭만적인 반대가 아니었습니다. 광장 공사 자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습니다. 그때는 ‘녹색 성장’을 내세우던 MB정부 때였지요. 성장을 추구하되 자연은 지킨다는 논리, 자연친화적 성장 정책을 펴겠다는 것이었는데, 반대자들은 MB와 같은 당 소속이었던 오세훈의 광장 조성 계획을 “광화문 거리에서 은행을 뽑아내고 플라타너스를 베어내는 게 무슨 녹색성장이냐, 녹색 없는 녹색 성장이 말이 되느냐?”며 조롱하고 반대했습니다.

예전에 녹색 성장 정책을 추진하던 세력과 그 지지자들은 지금 “그린 없는 그린 뉴딜이 말이 되느냐?”며 현 정권이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그린 뉴딜 정책’을 야유합니다. 그 야유와 조롱에는 태양광 한다며 깎아낸 산 사진이 빠지지 않습니다. 나무가 송두리째 잘리고 뽑혀 나간 산 모양이 흉물스럽지요.

광화문광장 자체가 역사 속 공격자와 방어자가 일시에 바뀌는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전진에 실패하면 공격진이 물러나고 수비진이 들어오는 미식축구 같습니다. 광장 조성공사가 시작되기 직전에 벌어진 광우병 시위(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는 별도라고 하더라도, 2014년의 세월호 침몰 진상 규명 시위와 두 해 뒤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에서의 공격자들은 우익 진영의 작년 10월 3일과 올 8월 15일, 그리고 엊그제 개천절 시위에서는 방어자로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지금 공격자는 예전 방어자들이 하는 말을 따라하고 있고, 방어자들은 예전 공격자들이 하던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방어자들의 말에 모순이 더 많지만 그들은 아랑곳없이 숫자를 믿고 철벽을 치고 있습니다.

광장 조성을 반대하던 사람들은 광장을 활용해 권력을 잡고, 광장을 조성한 사람들은 광장 밖으로 쫓겨난 모습! 어쨌거나 이런 편 나누기, 진영 싸움에 질린 나는 광화문 거리 한가운데에 서 있던 은행나무가 그리울 뿐입니다. 나무가 있으면 시위할 공간이 없어지기 때문만이 아니라, 나무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순화해줘서 시위보다는 대화, 타협하려는 마음을 불러일으킬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무만 생각해도 순진해지는지, 나는 이렇게 외칩니다. “거기에 은행나무들을 다시 갖다 놓으라구!”

문정선의 노래는 https://www.youtube.com/watch?v=XoYCDXB0WMU에서, 임희숙의 노래는 https://www.youtube.com/watch?=98U4aOcXMY0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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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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