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네덜란드도 원전 건설로 돌아선 세계적 추세 외면하고 있는 한국


미·영·네덜란드 '원전 건설'로 선회…"한국은 탈원전으로 역행"


美·英·스웨덴 등 원전 운영국 77% ‘원전 확대·유지’

네덜란드 "온실가스 감축 시급… 태양광으로 뒤덮인 풍경 싫어"


    세계 주요국이 원자력 발전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고 있다. 신규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인 미국과 영국은 물론, 신재생 에너지를 지지하는 네덜란드마저도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을 목표로 원전 건설을 검토 중이다. 전 세계 원전 운영국 30개국 가운데 77%에 달하는 23개국이 원전 확대 또는 유지 정책을 펼치고 있으며, 원전 도입을 검토하는 국가도 17개국에 육박한다. 탈(脫)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는 한국 정부가 세계적인 에너지 전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네덜란드 보르셀(Borssele) 원자력발전소 전경. / 위키피디아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는 최근 신규 원전 건설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네덜란드 경제기후부는 지난주 에너지 전문 컨설팅회사 엔코에 의뢰해 작성한 연구 보고서 ‘미래 네덜란드 에너지 믹스에서 원전의 역할(Possible Role of Nuclear in the Dutch Energy Mix in the Future)’을 네덜란드 의회에 제출하고 원전 도입 논의를 본격화했다.




네덜란드가 그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던 원전의 신규 건설을 검토하는 이유는 기후변화 대응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40%가 해수면보다 낮아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 국토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 현재 네덜란드는 전력의 80% 이상을 천연가스와 석탄으로 충당하고 있어 화석연료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태양광·풍력은 전력의 약 12%를 생산한다. 원자력 발전소는 단 1기 운영 중으로 비중이 미미하다.


네덜란드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30년까지 해상풍력발전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전력의 비중을 최대 70%까지 확대하겠다는 청사진을 세웠으나, 태양광·풍력은 날씨나 계절에 따라 발전량이 들쭉날쭉한 데다 기존 천연가스 대비 발전비용이 높아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 이에 네덜란드는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으면서 비교적 저렴하고 지속적으로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원전을 눈여겨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네덜란드 인근 북해에 매장된 천연가스가 고갈될 것이란 전망도 원전 도입 논의를 부추긴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네덜란드 집권당 자유민주국민당(VVD)의 마크 하버스 의원은 현지 매체 알헤멘다흐블라트(AD)와의 인터뷰에서 "태양광과 풍력만으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없으며, 풍력 발전기와 태양광 패널로 초원이 뒤덮인 지저분한 풍경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싶지도 않다"며 "네덜란드는 원전이 절실히 필요하며, 지금 논의를 시작해야 2025년에 원전을 짓기 시작해 2030년에 가동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집권당은 적게는 3기, 최대 10기의 신규 원전을 짓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에릭 빕스 네덜란드 경제기후부 장관은 의회에 보낸 서한에서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원들은 전체 에너지 시스템 비용 측면에서 원자력이 태양광·풍력보다 비싸지 않다고 한다"며 원전의 경제성을 강조했다. 원전은 급전가능한(dispatchable·출력조절 가능한) 전력원이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태양광·풍력보다 시스템 비용이 낮다는 설명이다. 이런 시스템 비용을 반영하면 네덜란드의 신규 원전 비용은 MWh(메가와트시)당 86달러로, 해상풍력발전의 99달러보다 약 13% 저렴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보고서를 작성한 연구원들은 원전이 태양광·풍력보다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더 안전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안전성 요건이 강화되면 원전은 현존하는 에너지원 중 가장 안전하다"고 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등 원전 사고로 방사능이 방출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고려해도 원전이 석탄, 태양광 등 다른 발전원보다 안전하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TWh(테라와트시)당 연간 사망자 수 기준으로 원전이 평균 0.01명, 태양광 0.245명, 해상풍력 8.5명, 석탄 120명 등이다.


그래픽=이민경


네덜란드 외에도 과거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던 영국 등에서도 원전을 유지하거나 새로 지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이달 발간한 ‘세계원전시장 인사이트’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과 영국, 체코 등 세계 각국이 원전을 활용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국가별로 무조건 원전을 영구 정지하거나 조기 폐쇄하기보다 수급 사정에 따라 원전 설비 관리와 건설을 진행하는 추세"라고 했다.




실제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이 취합한 자료를 보면 전 세계 원전 운영국 30개국 가운데 23개국이 원전 확대·유지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한국처럼 원전 축소 정책을 추진하는 국가는 7개국에 불과했다.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원전 신규 도입을 추진 중인 국가도 17개국에 달한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34년 만에 원전 건설을 재개했다. 미 에너지부는 7년 내 가동을 목표로 차세대 원자로 실증 프로그램에 6500만달러를 지원하는 등 원전 산업 부흥정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국 원전기업 뉴스케일파워가 추진 충인 소형모듈원전(SMR) 사업이 지난달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설계 인증을 통과하면서 아이다호주에 들어설 소형원전 12기의 건설 계획도 차질 없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영국도 2025년까지 많게는 10기의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로 했다. 영국은 세계 첫 상업용 원자로를 개발한 ‘원전 종주국’이지만, 1980년대 추진한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건설 능력을 상실했다. 그러나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원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원전 확대’로 정책을 선회했다. 스웨덴과 


핀란드도 원전의 발전 비중으로 점진적으로 늘리기로 했다.


국내 원전업계는 문재인 정부가 한국의 지리적 특성이나 에너지 믹스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하게 탈원전 정책을 추진해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는 "원자력을 빼고 무탄소 사회를 달성할 수 없다"며 "탈원전이 아닌 ‘탈탄소’에 중점을 둔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재은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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