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과 치료에 형사 벌, 곤란하다 [고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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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과 치료에 형사 벌, 곤란하다

2020.09.17

지난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 정종건 판사는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남세브란스병원 의사 임상조 씨(40)에게 금고 10개월을 선고하고, 그 의사를 법정에서 구속했습니다. 기사에서 사실관계는 ‘환자 이씨(당시 82세)는 뇌경색으로 치료를 받는데, 2016년 6월 엑스레이 검사와 씨티 촬영에서 대장암 의심 정황이 나와 입원했다. 주치의(강씨)는 CT 촬영 등에서 장폐색 의심 증상을 보였던 이씨가 복부 팽만이나 압통이 없고 대변을 보고 있다는 임상 상황을 고려하여 대장 내시경을 실시하기로 했고, 전공의는 임상조의 승인을 받아 환자에게 장 정결제를 투여했는데, 하루 만에 다발성 장기손상으로 사망했다. 원인은 이씨의 장폐색이었다.’고 정리합니다.
형법 제267조(과실치사)에는 ‘과실로 인하여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한 자는 2년 이하의 금고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합니다. 여기에 나온 과실은 사전을 뒤져보면 ‘어떤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부주의하여 인식하지 못하여, 다시 말하면 주의하지 않아서 범죄가 구성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의사가, 이렇게 처치하면 환자가 죽음에 이를 수 있는데, 주의하지 않아(과실) 그런 일이 생겼다(치사)는 뜻으로 풀이합니다.

□ 의료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

의사는 아픈 사람을 치료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어느 분 말대로, 의사는 죽을 사람 열 명이 있을 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중증 환자는 대부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형법에서 치사는 특별한 경우일 수 있지만, 중증을 치료하는 병원에서는 아주 흔한 일이기도 합니다. 특별한 상황에서 적용하는 과실치사죄를 의료분야에 그대로 적용하면 곤란합니다.

□ 의학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분야도 많은데

의학은 사람에게 생기는 증상의 원인을 찾아 치료하는 분야입니다. 끊임없이 밝히고 지식을 쌓아가고 있지만 완전히 밝혀진 부분보다 못 밝혔고, 치료법을 개발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오래전에 읽은 글을 떠올립니다. 일본에서 명의로 소문난 사람에게 오진율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고, 그 명의는 아마 25% 정도라고 답하자, ‘과연 명의’다고 감탄한 기사가 있었습니다. 사람의 병을 완벽하게 진단하고 처치하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전문가가 의료기 측정값과 임상 상태로 판단하더라도 오진 위험은 언제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 의사의 재량 판단에 형사 잣대는 위험하다

임상조 교수에게 여덟 살과 네 살 먹은 애 둘이 있어 가슴이 먹먹하다는 신파조 감성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병을 진단할 때 오진할 위험은 분명히 있지만, 환자는 의사의 전문성에 몸을 맡겨야 합니다. 현존하는 오진율을 애써 외면하려 하면 부작용으로 나타납니다. 벌써 의료계에 있는 사람은 ‘진행성 대장암, 더 이상 치료하지 말라는 판결이 나왔다’고 한탄합니다. 또, 인터넷에는 아래와 같은 풍자성 질문도 있더군요. 

           
의사가 주의하더라도 의학 지식과 경험의 한계로 오진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강하게 처벌하면 의사는 자신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이을 의사의 직업정신이나 소명의식과 연결하여 비난하기 어렵습니다. 앞으로 중증 환자가 오면 시간이 걸리든 말든 치료비가 얼마가 들든, 환자의 형편을 고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은 살려 달라고 급하다고 외치지만, 최선이라고 생각하였던 처치 결과가 나쁘게 나오면 당장 무찔러야 할 적으로 바뀌는 상황에서, 그 위험을 무릅쓰고 처치하겠습니까? 환자야 어떻게 되든 의사의 안전을 생각하겠지요.

□ 형평에도 맞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다른 전문 분야와 비교해도 형평에 어긋납니다. 형사 판단을 내리는 판사도 증거를 잘못 보고, 오판을 낼 수 있습니다. 오판이 나온 것에 비난을 받을 수 있겠지만, 오판을 낸 판사에게 형사죄를 묻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의사가 영상자료와 임상 상태를 종합하여 재량으로 판단한 것이 죽음이란 결과로 나타났다고 하여 형사 잣대로 처벌하는 것은 지나칩니다. 분노한 의사들이 ‘그 판사가 병원에 올 때 두고 봐라’는 댓글은 섬뜩하지 않습니까?

전문 분야, 특히 의료 분야에서도 정보 접근 등 고쳐야 할 것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전문가의 재량에 속하는 판단에 형사의 칼을 들이대는 것은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의사가 지켜야 할 것을 놓쳐 생긴 결과를 두둔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재량으로 판단한 것에 형사 잣대를 들이대지 말라고 요구합니다. 오진율을 낮춰 나가고, 정말 귀신같이 치료하는 의사가 많이 나오게, 전문가로서 의사의 역량을 더욱 키울 수 있게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 중요하겠습니다. 전문가 재량 판단에 형사 잣대는 거두어야 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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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고영회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1981)와 박사과정을 수료(2003)했으며, 변리사와 기술사 자격(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가 있습니다.
대한변리사회 회장, 대한기술사회 회장, 과실연 공동대표, 서울중앙지법 민사조정위원을 지냈고, 지금은 서울중앙지검 형사조정위원과 검찰시민위원,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법원 감정인입니다. 현재 성창특허법률사무소 대표와 ㈜성건엔지니어링 사외이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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