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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소명의식이 필요합니다.

2020.09.16

1987년 봄, 대학에 입학해 사회학 수업을 준비하면서 읽었던 원서에 ‘소명(vocation)으로서의 직업’이라는 구절이 나왔습니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한참을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직업이란 ‘돈을 버는 수단’이며 따라서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했던 제게 ‘소명으로서의 직업’이라는 개념은 매우 낯설었습니다. 게다가 역사와 종교, 문화가 우리와 전혀 달랐던 서양의 종교개혁 시기에 이 개념이 싹튼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이해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이 ‘소명으로서의 직업’이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의 모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모든 것이 명료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정신적인 토대는 ‘돈을 버는 것’에 대한 신학적 면죄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지만, 캘빈(Calvin)은 ‘근면, 절약, 금욕의 삶을 통해 축적한 부(富)는 하늘 나라로 가는 증거가 된다’라고 주장하면서 돈을 버는 행위에 대해, 면죄를 넘어 신의 은총을 쌓아 나가는 것으로 승격시켜 주었습니다.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은 캘빈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고 그때와는 많이 변형되긴 했으나 미국은 여전히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굳건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모체인 캘빈주의는 근면, 절약, 금욕적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흥청망청하는 천박한 자본주의와는 다른, 영적이고 관념적인 가치가 훨씬 더 우선시되었던 것입니다. 소명으로서의 직업은 이러한 토대 위에 설명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소명으로서의 직업은 단순히 개인의 적성에 맞는 천직이라는 개념이 아닌, 스스로 엄격하게 삶을 통제하는 가운데 이웃에 대한 봉사를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수단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돈을 벌어 부자가 되는 것은 구원의 증거가 되는 것으로 간주하게 됩니다.

의사단체의 집단행동으로 국민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고, 또 한번의 분열로 서로의 마음에 상처가 생겼습니다. 하필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에 의사들을 자극해서 결국 정부는 얻은 것도 없이 모양만 빠졌고, 의사 단체는 집단 이기주의라는 오명을 쓰게 됐으며, 국민은 또 한번 불편한 감정을 느껴야 했습니다. 갈등은 봉합됐지만, 여진은 남아서 ‘의사국가고시’를 거부한 의대 4학년 학생들을 구제하는 문제로 또 한번 파장이 예상됩니다.

요즘 부모들이 자식을 의대에 보낼 때, “너는 인술을 펼쳐서 병마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을 덜어줘야 한다.”라는 얘기를 할까요? 아니면, “요즘 같은 때, 의사만큼 좋은 직업이 없다. 회사에서 잘릴 걱정 안 해도 되지, 사회적으로 대접도 받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잖니? 그리고 늘 ‘선생님’ 소리를 듣고 얼마나 좋아?”하고 말을 할까요? 이 빌어먹을 입시지옥에서 보통의 경우는 부모가 죽을힘을 다해서 뒷바라지를 하고 본인 스스로도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아야 가는 곳이 의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를 쓰고 의대에 가는 이유가 단지 세속적인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우리는 자식 세대를 잘못 키우고 있는 겁니다.

직업을 통해 세상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이 소명으로서의 직업을 실천하는 것인데, 돈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직업은 수단으로 전락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세상도, 사람도 불행해집니다.

우리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우대를 하는 대표적인 직업이 두 개가 있습니다. 바로 법조인과 의사입니다. 그런데 이 두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언제부터 다른 직종보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시작했을까요? 변호사의 수임료, 의사의 진료비는 누가 언제 어떤 근거로 책정한 것일까요? 아파서 못 살겠고, 억울해서 못 살겠고, 감옥 갈까 두려워 찾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수요자의 절박함이 그들이 높은 수입을 올리는 근거입니다. 그리고 그 두 직종의 높은 진입장벽 또한 그들이 누리는 높은 수입의 원천입니다. 게다가 이 두 직종은 실패를 해도 돈을 법니다. 패소를 해도, 수술을 했지만 사람을 살리지 못해도 돈을 법니다. 다른 직종의 경우는 결과가 좋지 못하면 오히려 소송을 당하는데, 이 두 직종은 가능합니다. 그 이유는 의사와 변호사의 직업적 양심을 믿고 전문성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이 두 직종에 더 높은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 높은 도덕적 양심이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성직자 수준의 높은 희생정신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이 두 직종은 잘못을 했을 경우 바로 잡을 수 있는 더 높은 전문가 집단이 없기 때문에 자정(自淨)이 가능할 정도의 사회적 책임의식과 윤리의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지난 십 수년간 우리 사회에 비친 이들의 모습은 돈에 의해 움직이는 인상을 많이 주었습니다.

국시를 거부한 의대생들은 “의료 전문가와 상의 없이 졸속으로 추진된 정책들이 결국 의료의 질적 하향을 야기하고 국민의 건강권을 위협할 것이 자명했다”며 “단체행동에 처음 나선 이유인 ‘옳은 가치와 바른 의료’를 지키겠다는 마음에는 일말의 변함도 없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들의 말이 진심인지를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떻게 의사가 됐는데, 우리가 얼마나 고생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를 이렇게 궁지로 몰면 곤란하지.”라고 얘기하는 것으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은 어른이 보호해줘야 합니다. 그리고 제대로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들에게 진정한 직업적 가치를 가르치지 않은 어른들이 지금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겁니다. 하긴, 그 어른들조차도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 거겠지만, 이제라도 각자, 자신의 직업에 소명의식이 생기기를 희망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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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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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ngi, conpaper En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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