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언' 공모(共謀)의 메커니즘 [임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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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언' 공모(共謀)의 메커니즘

2020.08.26

             
채널A 이동재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은 이 기자와 한동훈 검사장이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신라젠 관련 비리 혐의를 캐기 위해 사건을 공모했느냐가 핵심이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기자와 검사 간의 공모의 메커니즘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건이 터지면 검사 또는 형사는 수사를 하고, 기자는 취재를 한다. 사건에 관한 정보의 양에 있어 수사관과 기자는 비대칭 관계다. 기자의 취재는 수사관들로부터 수사상황을 듣는 것에 의존할 수밖에 없지만, 특종(特種)을 먹고 살아야하는 기자가 그런 취재만으로 만족할 수는 없다.

기자는 수사를 앞지르는 정보를 수집해야한다. 검찰 안에 정보원(빨대)을 둔다면 발품을 덜 팔고도 특종을 할 수 있겠으나, 그것은 기자 개인의 노력 외에 기자가 속한 매체의 성향이나 영향력 등 복합적인 조건들이 맞아야 가능한 일이다.

과열된 취재경쟁으로 기자는 종종 수사기관의 정보조작에 취약한 환경에 놓인다. 수사 당국이 정보조작을 위해 동원하는 것이 특정 언론사 또는 특정 기자를 선택해 정보를 흘리는 일본말의 ‘모치코미(もちこみ·집어주기)’ 전술이다. 그중에는 사실도 있지만, 여론을 떠보거나, 업으려는 탐색용 정보도 있다.

그것이 대형 사건이 났을 때 언론에서 추측성 보도가 많은 이유이다. 수사 당국으로서는 언론의 온갖 추측성 보도 중에서 수사에 필요한 부분만 취사선택하면 된다. 그런 방법으로 그들은 수사를 키우고, 수사의 방향을 잡아간다.

드물게 기자가 취재한 정보를 수사관에게 모치코미하는 수도 있다. 그 경우 양자 간의 유착으로 발전할 소지가 크다. 서울중앙지검이 이동재 기자 사건을 보는 시각이다. 이 기자가 유시민 씨의 범죄혐의에 대한 정보를 한 검사장에게 제공하고 검찰의 수사를 유도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흉악범죄 사건에서 사건 해결을 위한 기자와 수사당국 간의 정보교환의 필요성은 대체로 인정된다. 그러나 그밖에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모든 사건에서 특정 기자와 수사당국 간의 정보교환은 공모의 의심을 사게 된다.

공모는 꼬투리가 잡히지 않게 용의주도하게 이뤄져야 한다. 특종은 낙종한 많은 언론을 적으로 만든다. 특종의 배후가 유착으로 밝혀지면 특종기자는 끄나풀 기자로 전락한다. 사회적 파장이 큰 정치·경제 사건일수록 공모가 성층권에서 이뤄지는 배경이다.

이상은 필자가 1980년대 출입기자를 둔 언론사가 10여개, 출입기자가 50명 미만이었던 법조기자실에서 짧게 겪었거나, 느꼈던 풍경이다. 지금은 보도의 기준도 강화됐고, 출입기자 수도 300명 정도나 된다니 검·언 공모는 더 어려워졌다고 하겠다.

당시에는 보다 원시적인 취재방식으로 ‘사칭 취재’라는 게 있었다. 기자가 사건관련자를 상대로 검사나 형사를 사칭해 사건의 단서를 찾으려 한 경우다. 민간인을 상대로 형사를 사칭한다면, 형사를 상대로는 검사를, 검사를 상대로는 청와대를 사칭하는 식이었다.

요즘엔 보통 멍청하지 않고서는 그런 취재를 할 기자도 없겠거니와, 그런 기자에게 당할 형사나 검사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기자를 사칭한 사기꾼에 당하는 경찰에 관한 뉴스가 심심찮게 눈에 띄는 현실이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가 형사나 검사를 사칭해 얻은 정보로 특종을 하더라도 기자사회에서 그것은 술자리의 안주거리에 불과했다. 명백한 범법행위지만 무용담의 소재는 됐을지언정 비난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당한 쪽에서도 기자의 사칭 행위를 애교로 봐주는 분위기였다.

자신이 제보자의 덫에 걸려든 것도 모른 채 한동훈 검사장과 나눈 2월 13일자 대화녹음을 들려주며 제보자에게 한 검사장과의 친분을 과시한 이동재 기자는 위의 상황 중에서 어느 범주에 든다고 할 수 있을까? 그는 검사와의 친분을 과장한 요즘 판  '사칭 기자'라고 함이 맞지 않을까?

두 사람의 대화는 출입기자와 검사 간의 통상적인 대화 범위에 있지 범죄를 음모하는 내용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범죄 공모의 대화가 성립하려면 두 사람 간에 공통의 이해관계가 있고, 이익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과 실행 증거가 있어야 한다.

그는 검사에게서 자신이 취재하고 있는 유시민 수사에 관한 정보를 캐내려고 하지만 검사는 유 씨에 대해 ‘관심도 없고, 검찰의 말 한마디에 꼬리를 내린 사람’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다. 공모의 증거라기보다 공모가 아니라는 증거 쪽에 가깝다.

이것이 검찰 수사심의위가 한 검사장에 대해 수사중단과 불기소를 권고한 이유이고, 서울중앙지검이 이 기자를 기소하면서 공소장에 공모혐의를 적시하지 못하고, 강요미수 혐의만 적용한 이유이다.

유시민 씨를 비롯한 여권인사들의 신라젠과의 범죄 연루여부를 취재해온 이 기자가 한 검사장과 범죄를 모의할 정도의 친분관계라면 한 검사장과의 대화녹취록을 들려주면서까지 제보자를 유인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검찰 수사심의위가 한 검사장과는 달리 이 기자에 대해 기소를 권유한 것은 취재방식의 위법성을 인정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취재방식에 대한 거부감이라면 누구보다 기자들이 더할 것이다. 기자가 구속됐음에도 언론이 그다지 동정적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건의 핵심인 검언 공모 혐의가 입증되지 못했으므로 기자에 대한 법적 조치도 검사와 상응해야 한다. 게다가 ‘미수’ 범죄다. 최소한 재판을 받더라도 불구속 재판이 맞다. 필자가 이 기자에 대한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나 검찰의 구속 기소를 언론에 대한 과도한 적대감의 표출로 보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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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종건

한국일보와 자매지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의 여러 부에서 기자와 부장을 거친 뒤 서울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사장을 끝으로 퇴임했으며 현재는 일요신문 일요칼럼, 논객닷컴 등의 고정필진으로 활동 중입니다. 한남대 교수, 한국신문윤리위원회 위원 및 감사를 역임했습니다. 필명인 드라이펜(DRY PEN)처럼 사실에 바탕한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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