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일 같지 않은 건망증 골프장 에피소드


골프장에서 골프백이 사라졌다고?


[골프 오딧세이-55] 


   입문한 지 얼마 안 되는 직장 후배와 골프하기로 한 날이었다.

마침 내 집이 골프장 가는 동선에 있어 아침 일찍 픽업하러 오겠다고 했다. 접선하기 10분 전에 전화가 왔다.


집에 캐디백을 놔두고 와서 다시 차를 돌려 가지고 오겠단다. 어림잡아 왕복 한 시간 정도 소요될 것 같았다.

동반자들과 함께하기로 한 아침 식사는 고사하고 티오프 시간도 맞추기 어려웠다. 두 홀 정도는 지나야 합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구나 동반자 중에 초면인 사람도 있어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계속 차를 돌리겠다는 후배에게 골프장에서 클럽을 렌트하자며 전화로 겨우 설득한 끝에 시간에 맞춰 골프장에 도착했다.


사연인즉, 골프를 한다는 설렘에 전날 거실 모퉁이에 캐디백을 잘 세워놓았다. 새벽같이 일어나 속옷과 골프복은 챙겼는데 서둘러 보스턴백만 차에 싣고 왔다는 것이다.




필자 집 근처에 와서야 거실에 잘 모셔둔(?) 캐디백을 생각해낸 것이다. 허망해하는 후배를 위해 클럽 렌트비를 내가 대주면서 해프닝이 마무리됐다. 골프백을 가지러 왔다 갔다 하면 내 멘탈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음도 고백한다.


골프는 하루 전 준비물을 챙기면서부터 시작된다. 구력이 오랜 고수들은 준비 매뉴얼이 체화돼 상관없지만 누구나 준비물 미비와 분실물 때문에 곤혹스런 상황을 겪는다.


우선 골프백 관련 사고가 가장 치명적이다. 총칼 없이 전쟁터에 나서는 꼴이다.


경기도 여주 소재 골프장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이다. 여성 골퍼가 티오프 시점까지 계속 기다리는 데도 결국 백이 나오지 않자 골프장이 발칵 뒤집어졌다.


급기야 골프장 사장까지 나와 직원들을 총출동시켜 백 대기실과 현관 등을 샅샅이 훑었지만 결국 찾지 못했다. 이미 티오프 시간을 넘어 해당 골퍼를 제외한 나머지 3명만 출발했다.


분을 삭이지 못하는 골퍼에게 사장이 골프장에 오기 전 어디서 출발했는지 묻자 '○○연습장'이라고 했다. 직원과 함께 그 연습장으로 가보니 자신의 골프백이 그대로 서 있었다.


같은 브랜드에 같은 색상의 다른 사람 백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고 그대로 싣고 온 것이다. 경기실에서 아무리 그 골퍼의 네임태그를 찾으려니 허탕칠 수밖에 없었다.


이미 그 골프연습장에서도 난리가 난 상황이었다. 결국 2시간 정도 소동이 끝나고서야 그 골퍼는 동반자와 합류했는데 샷이 제대로 됐는지 알 길이 없다고 골프장 사장은 회고했다.


필자는 구두를 신고 18홀을 돈 적이 있다. 사건이 있기 며칠 전 우중 라운드를 마치고 젖은 골프화를 햇볕이 잘 드는 발코니에서 말렸다가 깜빡하고 골프장에 온 것이다.


장갑이나 양말 칫솔은 골프장 숍에서 사면 되지만 골프화는 당시 15만원 안팎인 데다 집에 골프화가 두 켤레나 더 있어 그냥 필드로 나갔다. 정장화가 아닌 캐주얼화라며 캐디와 동반자에게 양해를 구했다.


18홀을 끝내고 나니 매끈하던 신발이 흡사 전쟁을 치른 전투화 같았다. 이 경험담을 들려주자 어느 선배 골퍼는 본인도 겪은 일이라며 이후 차 트렁크에 여분의 골프화를 늘 비치해 둔단다.


시간이 촉박하거나 건망증으로 준비물을 빠트릴 수 있어 모자와 장갑은 항상 여벌로 보스톤백에 넣고 다닌다. 특히 장갑은 비오는 날이나 땀에 흠뻑 젖었을 때를 대비해 1~2개를 더 갖고 다니면 유용하다.


라운드를 도는 중에는 클럽 분실이 가장 위험하다. 경험적으로 고수일수록 분실 위험이 낮다. 구력이 짧은 사람은 클럽을 2~3개 들고 필드로 나갔다가 샷을 하지 않은 클럽을 놔두고 오는 일이 많다.




특히 노캐디제를 행하는 골프장에선 이런 일이 다반사다. 카트 운전에 클럽 챙기랴, 공 닦으랴 캐디가 하던 일을 도맡다 보니 클럽 분실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골프가 끝난 후에는 소지품을 의외로 많이 빠트린다. 일단 카트에 휴대폰, 지갑, 장갑, 바람막이 옷, 선글라스, 거리측정기 등을 두고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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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캐디가 다시 살펴보고 연락하기에 찾을 수 있다. 이후에도 분실 위험은 상존한다. 목욕탕이나 라커룸에 칫솔과 안경, 휴대폰, 거리측정기, 선글라스, 심지어 틀니까지 두고 온다.


지갑은 프런트에서 계산할 무렵, 휴대폰은 운전대를 잡으며 내비게이션을 켜려는 순간 분실을 인식한다. 안경도 운전석에 앉으면 그제야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린다. 안경은 욕실 안, 라커룸, 세면대, 화장실 등 모든 곳이 분실 위험 장소다.


골프장을 빠져나올 무렵 가장 신경 쓸 부분은 클럽과 보스턴백, 그리고 캐디백이다. 간혹 스타트하우스 옆 간이연습장에서 연습하다 클럽을 나무에 세워두고 출발한다.




몇 홀 지나서야 막상 필드에서 해당 클럽으로 샷을 하려다 없다는 사실을 알고 부랴부랴 찾아 나선다. 대부분 경기과에 연락해서 찾을 수 있지만 누군가 가져가 버리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CCTV에 나타나지 않으면 배상 문제가 생기고 그날 멘탈은 무너진다. 골프를 마치고 카트에서 캐디 주문대로 반드시 클럽을 확인해야 한다.


나도 몇 년 전 바뀐 퍼트 주인을 몰라 아직도 그대로 사용한다. 간혹 골프백을 발레 서비스로 실어주거나 동반자가 대신 내 차에 실어주더라도 골프장을 떠나기 전에 반드시 트렁크를 열고 다시 확인한다.


다른 사람 차에 골프백을 임시로 실었다가 외부 식당에서 식사를 끝낸 후 인사를 나누고 그대로 차를 몰고 귀가한 경험도 있다. 다음에 다시 찾으려면 번거롭다.


골프 입문기에 골프장에 보스턴백을 종종 두고 왔다. 포천 아도니스CC 등 먼 골프장은 돌아가기도 여의치 않아 며칠 지나 소포나 택배로 전달받은 적이 수차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분실 사고도 있다. 제주도에서는 얼마 전부터 카트털이 까마귀 경계령이 내려졌다. 토종 까마귀가 골퍼들이 페어웨이나 그린으로 나간 틈을 노리고 카트에 실린 간식이나 음료 심지어 옷, 지갑, 휴대폰까지 물고 간다. 현금 30만원이 든 지갑을 물고간 피해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필드에서 까마귀가 공을 물고 가는 사례도 있다. 누가 봐도 공이 페어웨이로 잘 날아갔는데 가보면 없다. 목격자가 없으면 분실구로 처리되기에 1벌타를 먹고 원래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샷을 해야 한다.


골프 치매라는 농담이 있지만 만약 물건을 놔두고 왔다면 대부분 건망증이지 치매가 아니다. 골프 약속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면 건망증(Forgetfulness)이지만 약속 자체를 아예 기억하지 못한다면 치매(Dementia)일 확률이 높다고 한다.


클럽하우스 식당에 재킷을 걸어두고 오거나 골프장 주차장에서 캐디백만 트렁크에 넣고 옷가방을 두고 오면 건망증이다.




분실물 보관은 법적으로 1년이다. 고객이 두고 간 물건은 보통 라커에보관하고 문의는 프런트로 오기 때문에 라커 직원과 말이 서로 안 맞으면 번거롭다. 이를 감안하고 연락해야 한다.


골프장 측이 분실물이 있다고 했는데 관리 부주의로 없어졌으면 배상 문제가 걸리기 때문에 골프장 측도 유념해야 한다. 라커룸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기에 이곳에서 분실하면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본인 책임이 우선이다.


까마귀가 카트에서 지갑을 물고 가 분실했다면 어디에 책임을 묻기도 어렵다. 단 골프장 측이 이런 사례가 흔한데도 불구하고 미리 골퍼들에게 예고하지 않았다면 다툼의 여지가 있다.


자주 골프를 하는 직장 선배는 골프장을 빠져나오기 전 반드시 스스로 되뇌는 말이 있다. "안?전?지?키?자"라는 말이다.

'안=안경, 전=전화기, 지=지갑, 키=키, 자=자크'다. 이후 그는 중요한 지참물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정현권 골프 칼럼니스트·전 매일경제 스포츠레저부장]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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