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2년 전에 이미 “태양광발전 산사태 경고"


태양광 패널과 토사가 덮친 논…산림청 2년전 "산사태 우려"


“이런 물난리 처음” 400m 아래 마을까지 쑥대밭 


    지난 10일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의 한 야산. 산비탈에 늘어선 태양광발전 시설 밑으로 흘러내린 토사가 길 위에 잔뜩 쌓여있었다. 흙더미는 안전펜스를 밀어내고, 인근 농경지까지 내려와 벼와 밭작물을 덮쳤다. 200㎾급 태양광발전 6개를 갖춘 이 시설은 3만여㎡ 부지에 2018년부터 공사를 시작했다. 땅값이 싼 임야를 벌목해 수백개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한 구조다.


마을주민 “태양광 원망스러워”, 지자체는 “긴장마 영향”

산림청, 산지 태양광 산사태 피해 12건…전체 1.1%

발전소 업자 “방수포 깔았지만 소용없어”

산지 태양광 허가 건수 2년 전 크게 급증

전문가 “산지 침식에 따른 토사 유출 가능성 커져”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설치된 산지 태양광발전 시설이 최근 내린 폭우로 토사가 유출돼 농경지를 덮쳤다. 발전소 곳곳은 도랑이 깊게 파이고 배수로도 훼손됐다. 최종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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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 주민 안모(69)씨는 “멀쩡한 산을 깎아 발전소를 만들더니 큰비에 흙탕물과 토사가 아래로 내려왔다”며 “평생 이곳에서 살았지만 이런 물난리는 단 한 번도 겪은 적이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제천에는 지난 2일부터 이틀 동안 300㎜의 집중호우가 내렸다. 이날 발전소 안전점검을 하러 온 관계자는 “지금은 길이라도 터서 들어올 수 있지만, 지난주 폭우가 내린 날에는 토사가 쌓여 진입조차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폭우 피해를 본 산지 태양광발전 시설 곳곳은 아수라장이었다. 도로 아래에 2m가 넘는 도랑이 움푹 패어 있는가 하면, 땅속에 있어야 할 콘크리트관이 훤히 보였다. 태양광 패널은 경사면 흙이 빗물에 씻겨나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았다. 빗물은 토사와 뒤섞여 400m 떨어진 마을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안병동(63)씨는 “발전소를 지을 때 진행한 대규모 토목공사가 산사태를 유발한 것 같다”며 “주민들 입장에선 태양광을 원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설치된 산지 태양광발전 시설이 최근 내린 폭우로 토사가 유출돼 농경지를 덮쳤다. 발전소 곳곳은 도랑이 깊게 파이고 배수로도 훼손됐다. 최종권 기자


산림청 2년 전엔 “태양광발전, 산사태 피해 우려”

산림청에 따르면 제천 공전리 발전소처럼 야산에 설치한 태양광 발전시설은 전국에 1만2721곳에 달한다. 최근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잇따르자 일각에서는 “산지 태양광발전 시설이 산사태를 유발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산림청은 통계를 근거로 이를 반박했다. 산림청은 10일 “6월 이후 산사태 피해 건수(1079건)과 비교하면 산지 태양광으로 인한 산사태 피해는 1.1% 수준”이라고 했다. 이번 집중호우로 산사태나 토사 유출 등 피해를 본 태양광발전 시설은 12곳(0.09%)으로 파악했다. 산사태의 주요 원인이 산지 태양광과 거리가 멀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산림청은 2년 전엔 산지 태양광발전이 산사태의 원인일 수 있다는 내용의 자료를 냈었다. 2018년 4월 30일 발표한 산림청 보도자료 ‘태양광 발전소 산사태·투기 우려 심각…산림청, 대책 마련 나선다’에서 “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위해 부지에 자라고 있던 수십 년 된 나무를 벌채하면서 산지경관 파괴, 산지 훼손, 산사태, 토사 유출 등의 피해도 우려되는 실정”이라고 했었다.

 

이수곤 전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산사태 피해가 접수되지 않은 산지 태양광발전 시설에서도 산지 침식으로 인한 토사 유출이 증가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며 “나무와 풀은 침식을 방해하고 빗물을 머금어 산사태를 막는 효과가 있다. 산을 깎아 인위적으로 개발한 태양광시설은 지하로 흘러가는 수량을 줄이고, 지표면에 흐르는 물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충북 제천시 봉양읍 공전리에 설치된 산지 태양광발전 시설이 최근 내린 폭우로 토사가 유출돼 농경지를 덮쳤다. 발전소 곳곳은 도랑이 깊게 파이고 배수로도 훼손됐다. 최종권 기자


토사 유출은 시작…장기화 땐 ‘하천 범람’ 

그는 이어 “북한은 과거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산을 개간해 일명 ‘다락논’이라 불리는 계단식 논을 많이 만들었는데, 산도 잃고 홍수도 막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산지 침식 현상이 지속하면 하천에 토사가 많이 쌓이고, 하천 바닥 수위가 높아져 장기적으로 잦은 범람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제천시 대랑동의 800㎾급 산지 태양광발전 시설은 최근 내린 큰비에 무너져 내린 모습이었다. 설비를 지지하던 토사와 태양광 패널 수십장이 논으로 대거 유입돼 농작물 피해를 줬다. 이해영 제천시 에너지관리팀장은 “태양광발전 설비 상단부에 깔아놓은 마사토가 집중호우로 인해 대거 유출됐다”고 설명했다. 

 

취재팀이 이날 둘러본 충주시 주덕읍 장록리와 앙성면 조천리 산지 태양광발전시설은 산사태는 아니지만, 산에서 쓸려내려온 흙과 자갈이 농경지에 들어가 있었다. 발전시설 소유주 송모(53)씨는 “태양광 패널이 쓰러지지 않게 축대를 깊게 박고, 방수포로 바닥을 덮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그나마 배수로를 여러 개 만들어 놓은 덕분에 패널이 무너지는 사태는 피했다”고 했다. 충북도 관계자는 “태양광발전 시설이 산사태에 취약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장마 같은 경우 긴 시간 동안 많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오후 충북 제천시 대랑동 태양광 설비가 산사태로 파손돼 있다. [연합뉴스]


산지 태양광발전시설은 재해에 무방비로 노출되면서 관리 부실 문제가 계속 지적돼 왔다. 2016년 917건(면적 529㏊)이던 허가 건수는 2017년 2384건(1435㏊), 2018년 5553건(2443㏊)으로 크게 늘었다. 정부는 2018년 12월 산지관리법을 개정해 경사도 설치 기준을 기존 25도 이하에서 15도 이하로 바꾸는 등 규제를 강화했지만, 건립과정에서 산림을 훼손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문창열 강원대 건설시스템공학과 명예교수는 “벌목을 한다는 점에서 산지 태양광이 산사태를 야기할 가능성은 있지만, 배수시설을 어떻게 갖추었느냐에 따라 지역마다 상황은 다른 것 같다”며 “보강공사 기준을 강화하고, 기존 법률로 허가가 난 시설에 대해서는 행정명령이나 조례를 제정해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천·충주=최종권·박진호 기자 choigo@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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