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 공급량 40%는 정부 희망치… 8·4 대책, 곳곳서 날림 흔적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잡기 위해 야심차게 수도권 ‘13만2000가구’ 공급 계획을 내놨지만 급하게 준비하느라 곳곳에서 ‘날림’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목표로 세운 공급 물량의 약 40%는 재건축 사업장 조합원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대다수 사업장은 정부 계획에 반발하고 있다.

이번 대책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을 불러 "공급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지 한 달 만에 마련됐다. 이번 대책은 태릉CC, 용산 캠프킴 등 신규 택지 발굴과 기존 개발사업을 고밀화한다는 것 외에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많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졸속으로 대책을 마련하면서 시장 혼란만 부추겼다는 비판도 나온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방안' 합동 브리핑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기 위해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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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밝힌 공급물량의 약 40%는 ‘뇌피셜’


정부가 지난 4일 발표한 ‘서울권역 등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방안’의 핵심은 공공참여형 고밀 재건축 도입 방안이다. 현재 250% 수준인 용적률을 300~500%로 끌어올려 주택을 기존 가구 수보다 2배 이상 공급하고, 증가한 용적률의 50~70%는 기부채납으로 환수하는 식이다. 정부는 이를 통하면 5만 가구가 공급될 것으로 봤다.

그러나 5만 가구는 재건축 조합 등을 상대로한 정확한 수요예측조사가 없이 나온 목표치에 불과하다. 정부의 뇌피셜(근거 없는 생각)이라는 말이 등장한 이유다.

 


김영한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관은 지난 4일 브리핑에서 "서울지역에서 사업시행 인가를 받지 않은 93개소(26만가구 규모) 가운데 20%가 이 사업에 참여한다고 전제했을 때의 수치"라며 "목표치적 수치이긴 하나, 충분한 용적률을 통해 사업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했다. 5일에는 박선호 국토부 1차관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고밀재건축 물량은 전체 공급 물량(13만2000가구)의 약 38%에 달한다. 만약 국토부 예측이 틀리다면 실제 공급물량은 10만가구도 안될 수 있다.

재건축 조합의 반응도 시큰둥한 상태다. 일부 재건축 단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졸속 대책’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여의도의 대표적인 재건축 단지인 A아파트 입주민은 "정부 정책을 보고 (재건축 포기하고 계속 살자는 의미로) 노후화 된 수도관 공사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며 "재건축을 해도 이익의 90%를 정부가 환수한다는데 누가 동의하느냐"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오전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주택공급확대TF회의결과 브리핑 생중계를 시청하고 있다. /뉴시스

 

 

집은 없어도 차는 있는 세상인데… 차 없는 사람만 입주 가능한 주택 공급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공실 오피스·상가를 주거 용도로 전환하는 지원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입주 조건을 ‘차량 미소유자’로 제한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여기에 주거 용도로 전환할 경우, 주차장 추가설치를 면제해주기로 하면서 입주민들의 주차대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가 입주 요건으로 ‘차량 미소유자’를 내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역세권 청년주택 사업 때도 차량을 소지하거나 운행할 경우, 당첨이 취소되거나 계약해지·퇴거조치를 당할 수 있다. 하지만 청년 주택과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공급 주택은 상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차량 소유를 입주 조건으로 내건다는 게 과하다는 지적이다.

반대로 정부는 장기 공실 공공 임대주택의 입주요건은 ‘도시 근로자 평균소득 50%~100%’에서 150% 이하로 완화했다. 150%는 2인 기준 월 657만원 수준이다. 소득이 평균보다 50% 많아도 임대주택에 입주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차는 안되고, 소득은 많아도 된다는 정부 논리에 일관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부동산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청년주택과 달리 가족들이 함께 살 가능성이 많은데, 청년주택 기준을 내밀면 어쩌냐", "요즘 집은 없어도 차는 있는 세상인데"라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에서는 "내 명의가 아닌 리스해서 차를 타면 된다" "그냥 아버지 차끌고 다니면 된다"는 꼼수를 알려주는 글도 등장했다.

소통 부족으로 발표 4시간 만에 지자체 반발


정부가 대책을 발표하면, 지방자치단체는 사전에 협의된 대로 정부 대책에 힘을 실어주기 마련이다. 하지만 8.4대책은 발표 4시간 만에 서울시와 지자체 등에서 "공공재건축은 안된다" "뉴스를 보고 알게됐다"며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정부는 공공참여형 고밀재건축만 허용하자는 입장이지만, 서울시는 민간 재건축 시장을 활성화하되 공공성을 강화하자고 맞선 것이다.

여기에 지자체장과 국회의원들도 가세했다. 김종천 과천시장은 긴급 브리핑을 열고 "과천시민이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청사 유휴부지에 4000가구의 대규모 공동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시민과 시에 감당할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마포가 지역구인 정청래 민주당 의원은 "주민들의 항의 목소리를 듣고 기사를 통해 알았다"며 "마포구청장도, 나도 아무것도 모른채 발표돼 당황스럽다"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 정책 담당자 전화번호를 공유하며, 항의전화를 유도하기도 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용적률 높이고 기부채납 받겠다는 아이디어는 성공이 쉽지 않다"면서 "재건축이익환수제 시행연기 등 규제완화 없이는 주택공급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힘들고, 이로 인해 서울 지역 집값 상승은 계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성우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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