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서두르는 서울 주택 공급대책...인프라 부족 ‘우려’


서울 집짓기 과속하는건 아닌지… 고개 드는 인프라 부족 ‘우려’


   당·정과 서울시가 서울 유휴부지에 3만여 가구를 추가 공급하는 방안을 긴급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주택과 함께 들어서야 할 교육·교통·상업 시설 등 생활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주택 공급에 쫓겨 ‘숫자’만 채우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주택공급 유휴부지로 거론된 SETEC 부지/조선DB


3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현재 아파트 신규 공급 부지로 검토되는 곳은 △태릉골프장 1만가구 △강남 대치동 SETEC·동부도로사업소 등 7000가구 △삼성동 서울의료원·MICE 유휴부지 8000가구 △개포동 SH공사부지 2000가구 △구룡마을 부지 4000가구 △상암동 유휴부지 2000가구 △용산 정비창 부지 8000~1만가구 등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정부가 교육·교통 등은 전혀 생각지도 않고 책상물림으로 던진 숫자"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강남구 대치동 일대다. 현재 거론되고 있는 계획에 따르면 대치동의 SETEC과 동부도로사업소, 개포동 SH공사 부지까지 500m 반경 안에 약 9000가구가 공급된다. SETEC 부지의 경우 다소 유동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수천가구는 공급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2000~4000가구 수준의 아파트 단지가 여럿 밀집해 각급 학교와 상권 등이 그나마 잘 갖춰진 편에 속한다. 그러나 9000가구가 갑자기 새로 들어설 경우 기존 생활 인프라들이 과포화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도 출·퇴근 시마다 극심한 교통체증을 겪고 있는데 교통과 관련된 청사진은 별도로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도 있다.




삼성동 서울의료원 부지도 마찬가지다. 현대자동차의 신사옥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바로 뒤편의 자투리땅에 가까운 부지에 아파트를 세우게 되면 각종 생활 기반시설을 마련하기 힘들지 않겠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초등학교의 경우 현재로서는 약 1km 떨어진 대현초등학교와 봉은초등학교 등이 가장 가까운데, 그나마도 코엑스 등으로 크게 번잡한 삼성역 사거리를 지나야 한다. 설령 탄천 건너편의 MICE 부지에 기반시설을 갖추더라도 교통체증의 문제는 피하기 힘들다고 주민들은 예상한다.


상암동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상암동의 경우 중학교가 상암중학교 단 1개뿐인데, 학급당 학생 수가 과밀학급 기준(30명)에 육박하는 28.9명에 이르렀다. 상암동 주민들은 2000가구가 추가로 들어설 경우, 중학교는 물론 초등·고등학교까지 과밀학급 문제가 불거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인근의 기타 유휴 부지에도 학교를 유치할만한 공간은 없는 상황이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상암동은 계획단계부터 주거지구와 업무지구를 뚜렷이 구분했던 곳"이라며 "주거지구는 이미 완성돼 추가로 주택을 공급하게 되면 생활 기반 시설을 마련할 용지를 확보하기 힘들다"고 했다.


서울 마포구 상암DMC(디지털미디어시티) 랜드마크 부지. /조선일보DB


서울시는 주택 공급 계획을 준비하면서 학교나 교통 등의 기반시설은 사전에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까지 이 업무에 관여한 한 전직 서울시 고위관계자는 "생활 인프라는 주택공급 계획 발표 후 실무 차원에서 검토할 문제"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주택을 많이 공급하는 것이 집값 안정에는 도움이 될 수 있으나 시민들의 삶의 질은 오히려 나빠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익명을 요청한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제대로 된 주거 단지를 조성하려면 계획단계부터 교육·교통·상업·녹지 시설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이런 검토도 없이 빈 땅마다 아파트만 먼저 짓고 보겠다는 것은 기존 주민들과 신규 입주민 모두의 삶의 질을 하락시키는 대증요법일 뿐"이라고 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재건축·재개발이 위축된 영향으로 공급이 적었고, 그걸 갑자기 메우려다 보니 이런 일이 생기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재개발이 해제된 곳만 해도 26만 가구 수준"이라면서 "정권 초기부터 시장이 계획했던 공급을 그대로 뒀다면 공급 부족이 덜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병훈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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