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이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


설계자 따로 집행자 따로… ‘패싱’이 부동산 참사 불렀다


    문재인 정부에서 집값이 오른 데에는 복합적 이유가 있다. 세금으로만 집값을 잡겠다는 발상의 문제를 지적하는 전문가들도 있고, 저금리 시대에 돈이 몰릴 곳이 부동산과 주식밖에 없다는 전문가들도 있다. 원인이야 다양하지만 부동산 문제에 관한 한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부정적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상조 신임 정책실장(왼쪽)과 퇴임하는 김수현 정책실장이 지난해 6월 2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인사말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photo 뉴시스

최근 정치권에서는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의 실패 원인을 인사(人事) 문제에서 찾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가려져 있는 경제팀의 무능력에 원인이 있고, 한발 더 들어가면 이것이 대통령의 인사(人事)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현 청와대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인사(人士)는 주간조선에 대통령의 인사 문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경제 문제를 책임질 포지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패싱(passing·건너뛰다) 논란에 시달리다 존재감을 잃어가는 사이,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되는 인사(人士)들이 정책을 물밑에서 주도하는 패턴이 정권 초반부터 계속되면서 혼란이 일어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권 초 보수 성향의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도 중용하고, 안철수 캠프 출신인 장하성 전 실장도 중용했지만, 이것은 구색 맞추기에 불과할 뿐 결국은 쓸 사람만 쓴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힘을 싣는 인사들은 대부분 노무현 정부 청와대 비서실에서부터 대통령과 호흡을 맞췄거나 지난 대선에서 캠프 핵심이었던 인사들이 꼽힌다.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이들이 짜놓은 구도 내에서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별로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패싱 논란 시달리는 경제 투톱

흔히 경제팀 투톱으로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청와대 정책실장을 꼽는다. 여기에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경제팀으로 분류된다. 그런데 경제팀 투톱에 임명됐던 인물들은 하나같이 이른바 ‘존재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경제부총리는 김동연, 홍남기 총 2명이 맡았다. 두 사람 모두 패싱 논란에 시달렸거나 시달리고 있다.

김동연 전 부총리는 재직 시절 각종 경제 현안에 있어서 사사건건 청와대 및 여당과 부딪쳤다. ‘김앤장’으로 불렸던 장하성 전 정책실장(현 주중대사)과의 갈등이 대표적이다. 양측은 갈등설을 부인했지만, 전형적 기재부 관료인 김 전 부총리와 시민단체 운동을 주도한 장 전 실장과의 갈등은 정권 초부터 예견된 일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김 전 부총리는 장 전 실장과 대립각을 세운 것은 물론이고 법인세 인상, 종부세 강화 등 증세 문제에서 정치권 출신 장관, 여당 정치인들에게 주도권을 빼앗겼다. 일례로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가 첫 부동산 대책을 발표할 당시 김 전 부총린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현 법무부 장관)와 부동산 보유세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굽힐 것 같지 않던 김 전 부총리는 여당의 요구를 수용하며 보유세 인상안을 내놨다. 김 전 부총리가 주도했던 혁신성장 이슈는 규제완화에 부정적인 집권 여당 주류의 정서적 거부감 탓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역시 패싱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홍 부총리는 부동산 대책과 거시경제정책 발표 과정에서 존재감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 각종 경제정책을 둘러싸고 홍 부총리의 제안이 묵살되는 과정이 이를 잘 보여준다. 홍 부총리는 그간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그린벨트 해제도 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쳐왔다. 하지만 정세균 총리와 여당 안에서 이와는 반대 목소리가 나왔고, 결국 문 대통령이 나서서 그린벨트 해제는 없다고 못 박았다. 기재부가 지난 7월 8일 여당에 세제개편안을 보고했을 당시에도 김태년 원내대표 등 여당 내부에서는 “(세제개편안이) 너무 약하다”며 재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번 7·10 대책에서 종부세 최고세율이 6%로 정해진 배경에도 여당의 입김이 작용한 셈이다. 최근 문 대통령이 직접 발표한 그린뉴딜 정책 수립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부동산 국면에서 존재감이 없기는 김상조 정책실장도 마찬가지다. 김 실장은 지난 7월 17일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해 “이미 당정 간 의견을 정리했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고, 문 대통령은 그 사흘 만인 지난 7월 20일 그린벨트 해제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 5월 국무회의에서는 “한국판 뉴딜이 우리 사회의 모든 과제를 다 담을 순 없다”며 그린뉴딜을 한국판 뉴딜에 포함하는 데 반대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일주일 뒤 포함하겠다고 발표했다. 김 실장은 지난 4월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 때도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지만 더불어민주당 주장대로 전 국민 지급이 확정됐다. 지난 6월 국립보건연구원의 보건복지부 이관이 논란이 된 ‘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승격’도 김 실장이 관여한 사안으로, 문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김 실장은 김동연 전 부총리와 호흡을 맞추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교체된 장하성 전 실장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진보 시민단체 운동을 주도하며 경제 문제에 있어서 진보적 목소리를 내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과는 거리가 있어 왔다. 장 전 실장은 참여연대,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 진보적 색깔의 시민단체 운동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문 대통령과 가깝다고 알려졌지만, 정작 그는 2012년 안철수 캠프에 참여한 경력 때문에 ‘안철수 사람’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문 대통령이 다시 한번 장하성 교수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이마저도 거절했다. 김상조 실장은 시민단체 활동 당시 재벌 저격수로 이름을 날리며 현 정부에서 중용될 것이란 기대를 받았으나 현재는 정의당으로부터도 경질 요구를 받고 있다.



정책 집행자와 설계자 간의 괴리

두 명의 경제부총리, 두 명의 정책실장이 존재감을 잃은 배경에는 대통령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온 인사들이 짜놓은 인적, 정책 스크럼에 낄 틈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예를 들어 부동산 정책은 사실상 정권 초반부터 김수현 전 정책실장이 설계하고 주도했다. 김 전 실장은 노무현 청와대에서 근무하며 참여정부 민정수석 및 비서실장을 지낸 문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인물이다. 참여정부 역시 총 22번의 규제 일변도 부동산 정책을 내놨는데 이 뼈대를 만든 사람이 김수현 전 실장이다.

김 전 실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과 동시에 시민사회수석을 맡았다. 시민사회수석의 본래 역할은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일이다. 현 김거성 시민사회수석은 지난해 7월 취임하면서 “시민사회수석의 역할은 경청하고, 존중하고, 대화함으로써 소통이 제대로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김수현 전 수석은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것을 넘어 부동산 정책 수립에 광범위하게 관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반에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의 사무실을 자주 오가며 부동산 정책 당청협의를 주도해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1월 김수현 수석을 아예 정책실장에 임명했다. 여당 한 관계자는 “정권 초부터 시민사회수석이 부동산 문제에 깊이 개입한다는 논란이 일자 아예 그를 정책실장으로 임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제 문제에 있어서 문 대통령이 김 전 실장에게 힘을 확실하게 실어준 만큼 경제부총리로 대표되는 기획재정부 관료들이 부동산 문제에 있어서 의견을 펼 여지는 없었다고 한다. 정책 집행자와 설계자가 다르다 보니 그 사이에서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바로 소득주도성장을 설계한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있으면서 장하성 전 실장과 최저임금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었던 일이다. 두 사람은 직접적으로 부딪치지는 않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이견을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직급이 높은 실장이 아니라 수석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청와대 내의 최저임금 논란은 일단락됐다. 두 사람의 이견에 대해 채이배 전 의원은 주간조선에 이렇게 해석한 바 있다. 채 전 의원은 장하성 전 실장, 김상조 실장과 오랜 시간 시민운동을 함께했던 관계다.

“장하성 전 실장은 원래 시장 중심의 사고를 하는 분이다. 이분이 시민단체 활동을 할 때 쓴 ‘왜 분노해야 하는가’ ‘한국 자본주의’란 책을 보면 대·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격차 등을 양극화의 원인으로 꼽는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돈을 내려주는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원·하청 관계의 개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를 없애는 것, 대기업이 계열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을 없애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일자리도 공공영역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게끔 하는 것이 장 전 실장의 평소 철학이라는 것이 책에 나와 있다. 그런데 청와대에 들어와서 보니, 대통령이 워낙 강하게 홍장표 수석(현 소득주도성장 특별위원장)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이걸 수용한 것뿐이다. 본인도 일단은 풀어야 할 것이 양극화와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로 봤는데 임금격차를 풀 수 있는 방법으로 현 정부가 제시한 것이 최저임금이었다. 본인은 정부 출범 후 뛰어들었기 때문에 그 방향을 다 바꿀 수가 없었다. 전체 물줄기는 혼자 바꾸기 어렵다.”



홍장표 전 수석 역시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을 지내며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고 2012년 문 대통령 대선 캠프에도 몸담은 바 있다.

관료사회에 대한 불신

결국 쓰는 사람만 쓰는 문재인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의 기저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로 관료들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기재부 출신의 한 공기업 사장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정책의 일관성 차원에서 보면 관료들은 일종의 완충작용을 한다”며 “부동산 정책에 있어서 그것이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너무 폭주를 하게 되면 기재부가 그 우려를 전달하는데 대통령이나 청와대가 이를 귀담아듣지 않을 경우 그 후유증은 반드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 인사는 “김동연 전 부총리가 보유세 강화 방안에 대해 우려를 나타낸 것이나 홍남기 부총리가 재정건전성 악화를 이유로 재난지원금 축소지급을 주장한 것도 그런 맥락”이라며 “부동산 가격이 현 정부 들어서 대폭 상승한 데는 세금만으로 부동산을 잡을 수 없다는 기재부의 우려를 묵살한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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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현 정부가 기재부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한 설문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조선비즈가 지난 1월 29일부터 2월 7일까지 7개 경제부처 과장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기재부 소속 과장은 총 38명이 참여했다. 단일 부처로서는 가장 많은 과장이 설문에 응답했다. 조선비즈가 기재부 소속 응답자 설문을 따로 분석한 결과, 기재부 과장의 63%(24명)가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부총리, 각 부처 장관 등 경제팀이 직위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청와대 정책실장, 경제부총리 등이 직위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26%(10명)에 불과했다. 기재부 과장들은 ‘현재 경제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곳’으로 청와대를 지목했다. ‘청와대가 정책을 주도한다’는 응답은 74%(28명)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경제부처(기재부)가 정책을 주도한다’는 응답은 3명(8%)에 불과했다.

정책을 실질적으로 설계하고 주도하는 사람과 컨트롤타워가 다를 경우 이를 가장 혼란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다름 아닌 시장이다. 한국은행의 한 관계자는 “박근혜 정부는 ‘초이노믹스’라고 해서 최경환 경제부총리에게 사실상 전권을 주다시피 했고, 그 결과 당정청이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서 경기를 부양하려 한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시장에 줬으나, 문재인 정부는 경제부총리는 보유세를 올리지 말라 하고, 경제수석은 토지공개념을 얘기하다 보니 시장이 혼란을 느낀다”며 “어느 정책이 낫다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기업이든 부동산 시장이든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주는 게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현 정부는 메시지 관리, 한발 더 나아가서 용병술에 실패한 셈”이라고 주장했다.
박혁진 기자 주간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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