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행의 늪으로 빠지는 부동산 정책...결국 국민 갈라 놓은 임대차 3법


"나가주세요" "법대로 하시죠" 국민을 두쪽 낸 임대차 3법

 

    서울 마포구 아파트를 전세 주고 있는 A씨. 오는 10월이 전세 계약 만료 시점이지만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전 재계약을 하고자 임차인에게 수차례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임차인은 전화를 받지 않고 피했다. 지인들은 “임차인이 임대차 3법 시행될 때까지 버티려는 것”이라고들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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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내가 전세 들어 살고 있는 집도 내년에 재계약을 해야 해서 서로 협상해 좀 일찍 재계약을 하자고 설득하려 했는데, 대화도 하지 않겠다는 태도에 배신감을 느낀다”며 “나만 내년에 지금 사는 집에서 쫓겨나게 되면 낭패일 것이니, 세입자에게 전세금 돌려주고 들어가든, 아예 집을 비워두든 지금 세입자는 내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29일 ‘임대차 3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후, 인터넷 부동산 커뮤니티와 주요 지역 공인중개업소에는 바뀌는 법 내용이 무엇인지 문의가 폭주하고 있다. 강화되는 규제가 자신들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규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묻는 내용이다.

 


집주인들도 문제지만 임차인들 역시 전셋집 구하기가 더 힘들어지지 않을지 불안에 떨고 있다. 규제 강화 전 계약을 끝내려는 집주인과 버티려는 임차인 간 갈등이 생길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정치권이 만든 반(反)시장적 정책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이 집주인과 임차인으로 편이 갈라져 싸우게 된 셈”이라고 지적한다.

‘분쟁의 씨앗’ 된 임대차 3법
임대차 3법 중 임차인이 요구하면 전세를 1회(2년) 연장할 수 있게 하는 ‘계약갱신청구권’과 계약 연장 시 전·월세를 5% 이상 못 올리게 하는 ‘전·월세 상한제’는 다음 달 중 시행될 예정이다. 특히 계약갱신청구권은 기존 계약에도 소급 적용되기 때문에 계약 기간이 많이 남은 집주인 입장에선 최소 2년간 전세금을 올리지 못하게 된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집주인들은 해법 찾기에 골몰하고 있다. 서울 성동구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계약을 갱신할 의사가 없다는 내용증명을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전에 보내두면 소급 적용을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의 전화가 특히 많다”고 전했다. 세종시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계약서에 특약 사항으로 ‘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넣을 수 있느냐는 문의가 많이 온다”고 전했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재계약하지 않겠다'며 보낸 내용증명./인터넷 커뮤니티 '부동산 스터디'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킹서비스 등에서는 집주인과 임차인 간 대결 구도가 펼쳐지고 있다. 집주인들은 “시세보다 턱없이 낮은 전셋값을 받을 수는 없으니, 법 시행 전에 무조건 올리겠다”는 분위기다. 반면 세입자들은 “앞으로는 세입자가 더 이상 ‘을’이 아니다”라며 버티려 한다.

현재 계약갱신청구권 소급 적용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집주인이 실거주한다는 명분으로 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것이다. 다만, 보증금을 돌려줄 정도의 현금 여력이 있어야 하고, 만약 실거주하지 않고 있다가 적발되면 세입자에게 피해 보상을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세입자들 사이에서는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쫓아내면 감시하고 신고하겠다고 대응하면 된다”는 댓글이 퍼지고 있다. 정부가 실거주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카드 이용 내역, 통신사 기지국 접속 정보 등 개인 정보까지 검열할 것이라는 괴담도 돌고 있다.

집주인과 세입자가 주고받은 내용으로 추정되는 문자 내용./인터넷 커뮤니티 '부동산스터디'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부의 집값 규제가 국민을 투기 수요와 실수요로 가른 것처럼, 임대차 3법은 국민을 임대인과 임차인으로 갈라쳤다”며 “전세 시장 안정 효과나 사회 통합 측면에서 올바른 정책 방향이라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시장 혼란·전세의 월세化 가속화될 것
전문가들은 임대차 3법이 단기적으론 전세 시장 혼란을 키우고, 중장기적으로 전세의 월세 전환을 앞당길 것으로 내다본다.

실제 서울 인기 지역에서는 최근 아파트 전세 매물이 급감하고 있다. 임대차 3법이 시행되기 전에 전세 계약을 하면 최대 4년간 전세금을 거의 못 올리니 매물을 거둬들이는 것이다. 부동산 정보 업체 아실에 따르면 송파구 송파동의 전세 매물은 6월 250건에서 7월 121건으로 51.6% 줄었고 마포구 대흥동도 49.8% 급감했다. 학군 수요가 많은 강남구 대치동도 25.1% 줄었다. 매물이 줄어들면서 전세 가격도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억 단위로 오르고 있다. 강동구 상일동 ‘고덕롯데캐슬베네루체’ 전용면적 84㎡는 이달 7억5000만원에 전세가 거래됐다. 지난달 말 같은 층이 5억원에 거래됐으니 불과 한 달 사이에 2억5000만원 뛴 것이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전·월세 관련 규제가 강화되면 결과적으로 전세가 월세로 바뀌는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순우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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