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해, 2020년의 메이저리그 개막 풍경 [방석순]



www.freecolumn.co.kr

특별한 해, 2020년의 메이저리그 개막 풍경

2020.07.29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가 지난 24일 마침내 개막되었습니다. 유례없는 넉 달 동안의 긴 봄잠을 자고 깨어난 메이저리그 소식은 국내 야구팬들도 목을 빼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추신수, 류현진, 최지만에 이어 올 시즌 김광현까지 가세했으니까요. 국내의 눅눅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이들이 펼쳐 보일 활약이 어느 때보다 기대되는 해입니다.

과연 내셔널 패스타임이라는 프로야구다웠습니다. 비록 코로나 때문에 팬들의 참관은 불가능했지만 수도 워싱턴의 내셔널스 파크에서 열린 개막식은 전 세계로 열린 TV 채널을 통해 미국의 오늘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1, 3루 선상에 줄지어 선 지난해 챔피언 워싱턴 내셔널스와 원정팀 뉴욕 양키스 선수들은 200미터가량의 길고 검은 리본을 두 손으로 맞잡았습니다. “평등과 화합은 공감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다.” 대형 스크린에서 흑인 배우 모건 프리먼((Morgan Freeman, 83)의 목소리가 잔잔히 흘러나왔습니다. 이어 선수들은 일제히 그라운드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경찰 폭력에 목숨을 잃은 흑인 조지 플로이드에 대한 애도의 표시였습니다.

.

LA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다저스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개막전 광경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양 팀 선수들은 국가가 연주되는 동안 더러는 무릎을 꿇고 더러는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대고 추모의 뜻을 나타냈습니다. 예년 같으면 구름 관중이 가득 메웠을 스탠드에 대신 세워진 그림 패널들이 선수들을 말없이 성원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은 그라운드에서의 그런 모습에 혐오의 뜻을 밝힌 적이 있습니다. 플로이드 사건 직후에는 오히려 경찰을 두둔하는 듯한 발언으로 흑백 구분 없이 미국 전역으로 번져 가는 항의시위에 부채질을 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스포츠 그라운드의 무릎 꿇기는 인종차별 반대의 강력한 메시지로 지금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메이저리그는 이날 의미심장한 트윗을 띄웠습니다. 프리먼이 낭송했던 바로 그 다짐이었습니다.

“오늘, 그리고 매일 우리는 형제로서 함께할 것이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동등하게, 그라운드에서의 차별을 없애고, 불공정을 바로잡을 것이다./ 평등은 단지 말뿐이 아니라 우리의 권리다./ 오늘 우리는 6대륙 25개국의 남자로서 다짐한다./ 오늘 우리는 하나다.”

워싱턴-뉴욕 경기에 앞서 미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앤서니 파우치(Anthony Fauci, 80) 소장이 마스크를 쓴 채 시구를 했습니다. 경기 부양에만 몰입해 코로나 위험을 애써 무시해온 트럼프 대통령에 맞서 코로나 확산의 심각성을 강조해온 인물이지요. 트럼프가 상황을 지나치게 과장한다며 비난했지만 파우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트럼프가 들먹이는 낮은 치사율을 잘못된 해석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24일 당일 워싱턴 포스트가 보도한 전 세계 코로나 감염자는 최소 15,419,000명, 사망자는 628,000명. 그 가운데 미국의 감염자는 4,016,558명, 사망자는 141,251명이었습니다. 감염자는 무려 26%, 사망자는 22%로 모두 세계 1위의 기록입니다.

홈팀 워싱턴의 신예 후안 소토도 양성 판정을 받아 이날 개막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마이애미 말린스는 코치와 선수 10여 명이 양성 반응을 보여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홈경기 일정을 일단 연기했습니다. 관중 입장을 포기하고 씹는 담배, 해바라기 씨, 침 뱉기 등을 금지하며 조심조심 시작하긴 했지만 메이저리그의 올 시즌엔 여전히 불안감이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개막전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의 활약은 손에 땀을 쥐게 했습니다. 토론토로 이적해 25일 탬파베이 원정 개막 경기에 선발 등판한 류현진은 초반 안정적인 투구로 팀 리드의 발판을 만들었으나 5회 말 일본 홈런왕 출신 요시 쓰쓰고에게 2점 홈런을 맞으며 아쉽게 물러났습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데뷔한 김광현은 9회 초 5-2 리드에서 구원투수로 등판, 연속안타를 맞아 2실점했으나 5-4로 아슬아슬하게 승리를 지켜냈습니다. 꿈에 그리던 메이저리그 첫 세이브 기록입니다.

탬파베이 왼손 타자 최지만은 개막 2, 3차전에서 좌우 타석을 옮겨 다니며 잇달아 2루타, 홈런포를 쏘아 올려 홈팀의 연승을 이끌었습니다. 텍사스 레인저스와의 7년 계약 마지막 해를 맞은 추신수는 홈에서 맞은 콜로라도와의 3연전에서 안타 1개에 그쳐 아직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 모습이었습니다.

코로나 돌발사태로 메이저리그는 올해 공식 일정을 66일간으로 대폭 단축했습니다. 감염 위험을 줄이고자 이동 거리도 최소화했습니다. 그래서 각 팀은 같은 리그의 같은 지구팀과 40경기, 다른 리그의 같은 지구팀과 20경기를 치러 포스트시즌 진출을 결정하게 됩니다. 한 팀이 연간 162경기씩을 치르던 정규리그가 거의 3분의 1로 줄어든 셈입니다. 포스트시즌에는 16개팀이 진출해 지구 결승전에 앞서 5전 3선승의 와일드카드 시리즈를 갖습니다. 줄어든 정규리그, 늘어난 녹다운방식 포스트시즌, 승부에 대한 압박감은 예년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구단이나 선수들이 매 경기에 임하는 자세도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더 뜨거운 플레이가 기대되기도 하는 2020년 메이저리그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방석순

스포츠서울 편집국 부국장, 경영기획실장,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홍보실장 역임. 올림픽, 월드컵축구 등 국제경기 현장 취재. 스포츠와 미디어, 체육청소년 문제가 주관심사.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