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구난방 '아무말 대잔치'...분노하는 실수요자 ㅣ 제정신인가?...집값 잡겠다고 수도 이전이라니


중구난방 '아무말 대잔치'…집값 자극, 실수요자 분노


정부·여당서 조율안된 부동산 발언 쏟아져

'행정수도 이전'에 세종 집값 수억원 껑충

그린벨트, 용적률, 재건축…실수요자 혼란


   정부와 여당이 연일 조율되지 않은 부동산 대책 관련 발언을 쏟아내면서 시장이 혼란에 빠지고 있다. '행정수도 이전'과 '군 유휴부지 활용', '용적률ㆍ재건축 규제 변화' 등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슈에 대한 중구난방식 발언이 오히려 특정 지역의 집값을 자극하며 불안심리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서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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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회와 청와대, 정부부처 모두 세종시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한 이후 세종 아파트값이 수억원씩 급등하는 등 과열양상이 지속되고 있다. 일선 공인중개사들 사이에서도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승폭이 가파르다.


김 원내대표의 발언은 수도권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오히려 시장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며 '정부가 찍으면 오른다'는 속설만 입증시켰다는 분석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부동산 이슈를 잠시 잡아둘 순 있겠지만 수도권 인구분산이나 서울 집값하락의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업계에선 당정이 부처간 조율없이 단편적인 발언을 쏟아내면서 시장의 불안과 불만만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실제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 해제를 놓고 정부와 갈등을 빚은 서울시가 한동안 중단됐던 서울 재건축을 다시 추진할 수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여의도와 압구정 등을 중심으로 매물이 들어가고 호가가 급등하고 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부처간 협의가 안된 상태에서 발언자의 발언에 따라 얘기가 달라지고 있으니 시장에선 혼란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불과 1~2주 사이에 계획이 바뀌는 이례적인 모습이 이어지고 있는데 애초에 장기적인 관점에서 충분히 협의를 하고 대책을 발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말이 부동산을 둘러싼 세대갈등까지 키우는 양상이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전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태릉골프장은 청년, 신혼부부, 생애 첫 주택구매자 등 실수요자를 위한 공급대책에 활용하기로 부처 간 의견을 모았다"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획기적인 공급확대 없이 한정된 자원을 신혼부부와 청년에 특별공급하다보니 4050세대를 중심으로 "역차별"이라는 불만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여기에 "(현정부 들어) 집값이 11% 올랐다"는 김현미 국토교통부장관의 발언은 시장의 분노에 불을 끼얹은 모습이다. 지난 3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이 53% 올랐다는 민간 통계나 체감 지수와 너무 딴판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부동산 대책의 무게추가 정부에서 정치권으로 넘어간 것이 오히려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의안정보 시스템에 따르면 21대 국회 출범 이후 여당은 종합부동산세법과 주택임대차보호법 등 40건에 가까운 부동산 관련 개정안을 발의했다. 문제는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등 같은 법안에 서로 다른 내용으로 쏟아내다보니 임대차 시장의 공포감만 커진다는 점이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이번 정부 들어서는 부동산 관련 정책을 낼 때 국민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라는 게 없다. 의견 수렴 없이 결정을 한 뒤 밀어붙이는 것"이라며 "지금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을 방치한 채 잘못된 정책을 반성없이 밀어붙이면 집값을 잡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아시아경제] 


[기자수첩] 집값 잡겠다고 수도 이전이라니


    집값 대책이 난데없이 행정수도 이전 논란으로 튀었다. "수도권 과밀과 부동산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며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던진 한 마디에서 비롯됐다. 2004년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에 위배된다는 결정을 내린 지 16년 만에 수도 이전 논란이 부활한 모습이다.




수도 이전은 수많은 합의와 숙고를 거쳐야 하는 '백년대계'다. 갑작스런 논의는 부동산 정책의 연이은 실패로 지지율이 흔들리자 땜질 처방으로 나왔다는 의심을 피하기 힘들다. 인터넷에서는 "전 국토의 균형 발전을 위해 20년마다 수도를 옮기면 되겠다"는 비아냥거림까지 나온다.


22일 오후 세종시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서 아파트 매물을 문의하는 시민과 부동산 관계자가 지도를 보며 대화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수도권 과밀 해소도 미지수다. 세종에 내려온 부처의 고위 관료 중 다수가 여전히 서울에서 통근한다. 집값을 올리는 건 고용중심성과 직주근접성이라는 경제적 논리다. 행정부처 이전으로 과밀이 바로 해소될 리도 없는데 무작정 수도 이전을 방안으로 내던지는 모습이다.




벌써 세종 집값을 자극하는 역효과도 낳고 있다. 한 공인중개사는 "안 그래도 미친 가격"이라며 "치솟는 세종 집값에 기름을 부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 집값은 올해 들어 벌써 21.4% 치솟았다. 전국에서 가장 가파른 상승세다. 주변부로 개발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에 토지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이 수도권 집값에만 몰두하며 지방에는 무감각했던 전례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가 6·17 대책으로 대전을 규제지역으로 묶자 업계에서는 '만시지탄'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지난해부터 대전 집값이 지속적 상승세를 보였지만 국토교통부는 "면밀히 보고 있다"는 답변만 되풀이할 뿐 실질적 대책은 내놓지 않다가 몇 달이 지나서야 규제지역으로 묶었다. 대전 서구와 유성구도 이미 올해 집값 상승률이 10%를 넘었다.


여당은 "백년대계 중대사를 덮어놓을 수 없다"지만 정작 백년을 내다보는 시각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정부와 여당은 거듭된 땜질 처방으로 부동산 정책의 실패를 자초했다. 이제는 수도 이전까지 끌어들여 논란만 키우고 있다.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고 싶다면 제대로 된 집값 안정책부터 내놔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는 그 후에 해도 늦지 않다.

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아시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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