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반 인종주의 운동 [김수종]


www.freecolumn.co.kr


미국의 반 인종주의 운동

2020.07.17



‘20달러’짜리 미국 지폐에는 강퍅한 인상의 남자 얼굴이 그려져 있습니다.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1829~1837 재임)의 초상화입니다. 돈에 초상화가 그려질 정도이면 워싱턴이나 링컨같이 공로가 크게 인정되는 인물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잭슨 대통령은 19세기 초반 미국이 영국과의 전쟁을 벌이고 서부개척에 나설 때 각종 전투에서 승리하며 플로리다를 미국에 합병하고 미시시피강까지 미국의 세력을 확장한 전쟁 영웅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의 정치는 워싱턴, 제퍼슨, 아담스 등 버지니아 주나 매서추세츠 주의 명문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잭슨은 변방 켄터키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자 극히 제한됐던 참정권을 모든 남성에게 부여하는 등 소위 보통 사람의 시대를 열었다는 정치적 평가를 받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잭슨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는 논란이 적잖습니다. 그는 노예를 소유했고 인종주의 정책을 폈습니다. 미국 진보주의를 대표하는 정치학자이자 역사가인 하워드 진은 1980년 저서 ‘미국 민중사’에서 백인들과 평화롭게 살려던 인디언을 가혹하게 몰아낸 대통령이라고 잭슨을 통렬히 비판합니다,

잭슨은 1829년 대통령에 취임하자 인디언을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쫓아내기 위해 인디언 이주 정책을 추진합니다. 잭슨 정부는 인디언에게 “풀이 자라거나 물이 흐르는 한 자신의 땅을 영원히 소유할 것이다.”라고 약속했지만 당시 전쟁장관은 암암리에 “인디언의 전멸은 불가피해질 것이다.”라고 말했다니 인디언이 소멸하기를 바랐던 모양입니다. 인디언 이주정책을 놓고 남부는 찬성했지만 북부는 반대했습니다. 잭슨은 대법원 판결도 무시하고 인디언 수만 명을 서부로 쫓아내는 정책을 강행했습니다.

미국 역사에서 백인의 야만성을 보여준 체로키 족의 ‘눈물의 행진’(Trail of Tears)은 이때 일어난 비극입니다. 잭슨 정부는 켄터키 일대에 사는 체로키 족 1만7천 명을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일시에 강제 퇴거시켰고, 이 작전 과정에서 인디언들은 추위, 기아, 질병, 백인의 공격에 시달리며 4천 명이 죽었습니다.

오늘날 미국 곳곳에는 잭슨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물이 있습니다. 워싱턴의 백악관 인근에는 60여 년 전 세워진 잭슨 대통령의 청동 기마상이 있습니다. 지난 6월 말 4명이 이 동상을 훼손하려다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백인 경관들의 가혹 행위로 인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으로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들불처럼 번질 때, 시위자들은 잭슨이 인디언을 박해한 인종주의자라고 보고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입니다.

잭슨 동상 훼손 사건이 벌어지자 흥분해서 반응한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입니다. 그는 트위터 문자로 "재향군인 기념물 보존법에 따라 징역 10년이다. 조심하라"고 경고했습니다. 백악관에 사는 현직 대통령으로서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파손하려는 행위에 분개하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민감하게 반응한 배경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잭슨 대통령은 트럼프가 추종하는 ‘롤모델’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잭슨의 팬’이라고 소개할 정도로 그를 높이 평가했을 뿐 아니라 백악관에 입성하자 집무실에 잭슨의 초상화를 걸어놓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는 기치 아래 비폭력 인종차별 반대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운동을 촉발한 것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지만, 본질적으로 미국 사회에 뿌리내린 인종주의와 백인우월주의에 대한 저항의 의미가 큽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편견에 대한 반발 심리도 가세하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그래서 운동의 양상은 비폭력적이지만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인물의 동상을 훼손하는 등 ‘미국식 과거청산’ 움직임이 강한 것 같습니다. 미국의 반 인종차별운동에 영향을 받아 전 세계에서 노예무역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단죄 형식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적잖은 후유증이 예상됩니다.

미국의 인종 문제는 계기만 생기면 분출하기 마련입니다. 21세기에 인종적 편견을 가진 미국 대통령이 나온 것은 어쩌면 미국의 시대를 빨리 저물게 만드는 촉매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인권과 자유 등 민주주의 가치를 가지고 세계 질서를 주도했던 미국은 화려했던 모습을 잃고 있으며, 미국적 가치의 영향력 감퇴에 따라 미국 역사의 어두운 면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할지 백악관에서 밀어낼지 궁금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뉴스1’고문과 ‘내일신문’ 칼럼니스트로 기고하고 있다. 한국일보에서 32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주필을 역임했다. ‘0.6도’ 등 4권의 책을 썼다.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