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이고 뒤틀려도 곱다. 타래난초 [박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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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이고 뒤틀려도 곱다. 타래난초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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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래난초 (난초과) 학명 Spiranthes sinensis


연초록 신록의 계절이 가고 녹음 짙은 한여름이 되자 감미롭던 따스한 봄 햇살이 어느새 뜨거운 불볕으로 바뀌었습니다. 다투어 피어나던 봄꽃들은 이미 지고, 맺힌 열매가 한창 영글어 가고 있습니다. 산과 들판에 꽃을 찾아 나설 때면 땡볕이 무섭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한여름의 땡볕은 초목의 성장과 결실에 필수적 요소입니다. 식물이 자신의 몸집을 키우고 열매를 맺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는 오로지 햇볕에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식물은 부드러운 봄 햇살에 꽃을 피우고 강한 여름 햇살을 받아,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어 성장과 결실을 이룹니다. 풀꽃은 대부분 봄에 꽃을 피웁니다. 여름에는 키 큰 나무들의 녹음이 짙어져 숲 바닥에 새어드는 햇볕이 적은 탓에 키 작은 풀꽃들은 햇볕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풀꽃은 키가 작아 주변 나뭇가지에 잎이 무성하기 전인 이른 봄에 부지런히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 햇볕의 효율적인 이용 방법이라 하겠습니다.

한여름에는 아무래도 풀꽃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귀한 풀꽃을 보려면 기온이 서늘하고 키 큰 나무가 울창하지 않은 높은 산에 올라가거나 주변에 숲 그늘이 미치지 않은 개활지를 찾아야 합니다. 주로 길옆이나 묘지, 시냇가, 논밭 가장자리를 찾게 됩니다. 따라서 한여름 꽃 탐방 산행 중 주변에 묘지가 있으면 가급적 들러봅니다. 묘지가 있는 다듬어진 묏자리에는 잔디와 함께 자라는 여름 풀꽃을 종종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바로 타래난초입니다.

타래난초는 산만한 잔디 풀숲에 꽃대를 내밀어 꽃을 피웁니다. 가녀린 꽃대에 밥풀만큼 작은 꽃들이 줄기를 감싸듯 빙빙 돌며 다닥다닥 붙어 있습니다. 흘깃 지나치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작은 꽃입니다. 일단 눈에 들어와 자세히 살펴보면 볼수록 신기하고 별난 꽃입니다. 선명한 분홍빛 덮개 꽃과 백설처럼 하얀 입술꽃잎의 맑고 화사한 모습은 가히 환상적이라 할 만합니다. 단정하게 일렬로 반듯하게 피는 꽃이 아니라 꼬이고 뒤틀린 듯 배배 틀어진 채로 꽃대를 감듯이 돌아가며 꽃이 핍니다. 무질서하고 산만해 보일만도 합니다. 그런데도 오히려 깔끔하고 분홍빛과 흰빛의 꽃잎이 한데 어울려 영롱한 광채를 발하는 것처럼 곱게 보이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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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대를 감고 오르는 듯 꼬이고 뒤틀린 타래난초 꽃차례

타래난초는 우거진 숲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묘지나 밭둑 등 개활지의 잔디밭에서 자라는 난초과의 여러해살이풀입니다. 강한 햇살이 내리쬐는 한여름에 짙은 분홍의 덮개 꽃에 하얀 입술 꽃을 피우는데, 줄기를 중심으로 한 나선(螺線) 모양으로 빙 둘러 가며 꽃이 달립니다. 간혹 흰색의 꽃도 있습니다. 꽃대는 곧게 선 외줄기입니다. 길지 않은 짧은 꽃대에 밥풀만 한 꽃이 수십 개 달립니다. 작은 꽃들이 가녀린 꽃대를 중심으로 꼬여 올라가며 피는 모습이 실타래를 닮았다고 하여 타래난초라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학명의 Spiranthes가 뜻하는 것도 희랍어의 speira(나선상으로 꼬인)와 anthos(꽃)의 합성어로 나선형으로 꽃대를 감아 올라가며 피는 꽃 모양에서 유래된 이름이라 합니다.

타래난초는 잔디가 없이는 살 수 없는 풀꽃입니다. 잔디 뿌리에 붙어사는 박테리아균(菌)과 공생하기 때문입니다. 녹색식물인 난초류는 공생하는 균류(菌類)의 협력 없이는 종자가 발아하지 않고 발육도 못 하는 것이 많습니다. 자연 상태에서 박테리아균의 협력이 없으면  발아가 불가능합니다. 난초류인 타래난초 역시 그 씨앗이 너무도 작아서 발아에 필요한 영양분을 씨앗에 저장하지 못합니다. 난초의 씨앗에는 발아에 필요한 영양분을 저장하는 배젖(endosperm)이 없습니다. 그 결과 홀로 발아하여 싹을 틔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타래난초는 자신의 몸에 난균(蘭菌)이 기생하도록 하여 자기 몸속에 들어온 균사(菌絲)로부터 영양분을 흡수해서 발아하고 나아가 난균까지 완벽하게 분해, 흡수하여 자라는데 필요한 영양분으로 삼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잘못되면 타래난초가 균의 침입을 받게 돼 오히려 균의 희생물이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삼국지에 나오는 적벽대전에서나 전해 들었던 고육지계(苦肉之計)의 생존술을 쓰는 셈입니다. 이토록 처절한 생의 몸부림과 고도의 생존전략으로 그 생을 이어가는 식물의 면면을 알고 나면 하찮게만 여겼던 이들의 끈질긴 생명력과 지혜에 숙연함과 감탄이 함께 일기도 합니다.

가냘파 보이기만 한 조그만 타래난초 꽃대, 이 꽃대에 왜 수많은 꽃이 비비 꼬이고 뒤틀린 듯 감고 돌아가며 매달려 있을까? 이것은 외줄기 꽃대의 표면적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한 꽃의 배열이며 어느 방향에서든 곤충의 눈에 잘 띄기 위한 전략이라 합니다. 나아가 씨앗이 여문 후 사방팔방으로 씨앗을 날려 보내기 위한 비책이기도 하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름이 끼치도록 외로움과 고적감이 감도는 묘지의 산만한 잔디밭 사이에서 가녀린 외줄기 꽃대를 올려 꽈배기처럼 꼬고 뒤틀린 구조를 이루며 꽃을 매달고 있는 타래난초를 보며 생각합니다, 사람 사는 세상, 우리의 보편적 사고와 관례에 비추어 볼 때 정상과 관례를 일탈한 이상한 모습, 꼬이고 뒤틀리고 되감는 현상은 볼썽사납고 역겨워 보입니다. 하지만 자연 세계에서인지라 모진 생을 이어가는 타래난초의 기이한 모습과 행태가 오히려 곱고 신기하게만 보입니다. 인간사회에서는 한평생 세상살이를 통해 으레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면서도 꼬이고 뒤틀린 현실 사회의 제반 상황을 참고 보기가 역겨운데 식물의 세계를 보면 그러한 생각이 들지 아니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가 본질적으로 무엇이 다르기에 서로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 비정상적이며 예외적 현상임에도 자연세계는 거부감 없이 도리어 신기함과 감탄으로 곱게 받아들여질까? 그것이 참으로 궁금할 따름입니다.

타래난초

짙은 외로움 소름 돋게 묻어나는
봉분(封墳) 언저리 풀섶에
불쑥 솟은 가녀린 꽃대
외로운 영혼의 넋이런가.

꼬이고 뒤틀린 마디마디
엉긴 듯 감긴 듯 또아리를 틀었다.
희로애락으로 얼룩진 세월
엎어지고 뒤집힌 꽃이 되었나 보다.

굴곡진 지난날의 되울림인가?
한여름 뻐꾸기 애잔한 울음 속에
지는 듯 피어나는 꼬임과 뒤틀림,
붉고 하얀 꽃잎이 오히려 곱다.

(2020. 7. 10. 타래난초꽃을 보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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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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