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 거래 주거래은행 이젠 아무 소용 없네"


수십년 거래했는데 대출 퇴짜… "주거래은행 아무 소용 없네"


    서울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지난 3월 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직격탄을 맞았다. 급히 운영자금이 필요해진 A씨는 10년 넘게 주거래은행으로 이용해온 시중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이 은행은 A씨의 신용등급 등을 이유로 대출 승인을 거절했다. A씨를 받아준 곳은 정책 자금을 집행하는 기업은행 (8,120원▼ 10 -0.12%)이었다. A씨는 "예·적금은 물론 카드대금까지 해당 은행과 같은 카드사로 받아왔는데, 정작 필요할 땐 주거래은행은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픽=송윤혜


최근 코로나19와 6·17 부동산 규제 등으로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 발품을 파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주거래은행에 대한 ‘무용론’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수십년간 거래해온 주거래은행보다 거래 한 번 없었던 다른 은행에서 훨씬 좋은 조건의 금리를 제시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각 은행이 내거는 주거래 고객 기준을 충족하려면 고액 예금과 대출 등을 보유해야 하는데, 혜택은 수수료 면제 등에 불과해 비대면 거래가 활성화될수록 ‘주거래은행’의 의미 역시 더욱 퇴색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8일 은행권에 따르면 신한·KB국민·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은 주거래 고객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고객 우대 제도를 각각 운영 중이다. 각 은행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보통 4개 등급으로 나뉘어 있고, 등급이 올라갈수록 면제되는 수수료 종류와 서비스 제공 폭이 달라진다. 신한·KB국민은행의 경우 카드, 보험 등 다른 계열사와 통합 점수를 제공하고 있어 해당 금융지주 서비스를 많이 쓸 수록 등급도 올라가는 구조다. 하나은행 역시 그룹사 통합 우대 제도를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은행이 제시하는 주거래 고객의 기준은 높은 편이다. 우리은행을 예로 들면, 가장 높은 등급인 ‘프레스티지’에 선정되기 위해선 7000점 이상을 충족해야 한다. 3개월 평잔 100만원당 입출식 예금은 100점, 담보대출 20점, 신용대출은 50점을 받을 수 있다. 급여·연금을 이체하면 최저 150점을 준다. 하나은행 역시 가장 높은 ‘하나VIP’ 등급은 1만점을 채워야 하는데, 급여 이체가 300점으로 가장 높다. 그러나 이 외에 대출은 100만원당 30점, 저축성 예금은 100만원당 20점 등에 불과하다. 단순히 오래 이용한다고 주거래 고객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예금과 대출 등을 많이 보유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한은행 에이스 등급인 B씨가 지난 한 달간 받은 멤버십 혜택./독자 제공


이보다 낮은 등급의 점수를 맞추기는 비교적 쉽지만, 기준을 맞춰도 받는 혜택이 그리 크지 않다. 신한금융 기준 1174점으로 ‘프리미어(상위 세번째 등급)’이면서 은행 기준 912점으로 ‘에이스(상위 두번째 등급)’에 해당하는 B씨가 지난달 15일부터 이달 7일까지 받은 혜택은 총 1800원에 불과했다. 모바일 이체 수수료 500원짜리 3번, 타행 자동이체 수수료 300원짜리 1번 등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도 나름 많이 고민하고 최대한 많은 혜택을 드리려 하지만, 금액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크게 와닿지 않는 수준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핀테크 등이 발달하면 주거래은행의 의미가 더 퇴색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상품 비교가 활성화될수록 주거래은행 외 다른 은행의 상품에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비대면 거래의 경우 대부분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아 주거래 고객에게 주로 제공하는 수수료 우대 서비스가 많이 퇴색된 상황"이라며 "비대면 거래 위주 고객이 늘어날수록 주거래은행의 혜택을 체감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윤정 기자 조선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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