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위기 ‘솔선수범’ [정숭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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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 ‘솔선수범’

2020.07.09

모범을 보여야 할 사람들이 모범은 깊숙이 처박아 놓고 조상과 후손들에게 수치스러운 일만 저지르는 게 끝이 없습니다. 이제 사전에서 ‘솔선수범(率先垂範)’이라는 좋은 말은 사라지고 ‘솔선수치(率先羞恥)’가 그 자리를 꿰찰 것 같습니다.

대통령 비서실장 노영민은 부동산 투기를 잡는 데 모범이 되겠다며 두 채 집 중 국회의원일 때 자기 지역구였던 청주에 있던 집을 내놓겠다고 했습니다. 서울 강남 반포에 있는, 값이 이미 많이 오른 데다 앞으로 얼마나 오를지 아무도 모르는 ‘똑똑한 한 채’를 남겨놓고요. “아들이 살고 있어서 반포 집을 남겼다”라며 대충 변명하고 넘어가려던 그는 따갑고 날카로운 비난이 홍수 때 큰물 나듯 넘쳐 쏟아지자 뒤늦게 이 집을 팔겠다고 나섰습니다만 이걸 솔선수범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지 싶습니다. 오히려 열세 평짜리, 코딱지 만한 반포 집을 움켜쥐려던 그의 판단은 서울에 집을 살 만한 능력이 되는 사람들이 뒤 안 돌아보고 그냥 따라가야 할 길이 됐습니다. 돈보다는 윤리와 명예와 솔선수범을 중요히 생각하는,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은 마침내 멸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법무부 장관 추미애도 솔선수치를 행하는 사람들의 맨 앞줄에 서 있습니다. 열흘간의 병가가 끝났음에도 납득되는 사유 없이 부대로 돌아오지 않은 그의 아들이 아무 처벌도 받지 않은 걸 본 같은 부대의 한 사병은 “우리 엄마도 추미애였으면 좋겠다”라고 했답니다. 이 이상 가는 솔선수치의 예가 달리 있을까요? 그는 이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아들 문제를 검찰이 조속히 수사해주기 바란다”라고 말했다는데, 이 발언 또한 검찰 수사에 가이드라인이 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이 사건 보도는 제보자의 제보가 바탕인데 그는 검언유착의 한 사례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검찰이 수사상황을 언론에 흘려주고 있어서 아들의 ‘탈영’ 기사가 계속 나온다는 거지요.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검찰을 개혁해야 하고, 검찰총장 윤석열은 개혁을 가로막는 세력의 대표이니까 물러나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 코웃음 치는 사람이 많은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는그의 이런 언행 때문일 겁니다.

민주당 의원 윤미향도 솔선수치한 사람의 예에서 빠트려서는 안 될 겁니다. 솔직히 말하면, 제일 앞에 세워놓고 싶습니다. 불쌍한 할머니들을 잘 돌보겠다며 받은(뜯어낸?) 기부금과 후원금, 정부 지원금을 주머닛돈처럼 쓴 게 아니냐는 심각한 의혹의 주인공임에도 의혹 해소에는 지극히 불성실했던 그는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또 후원회를 구성해 기부금 걷기를 시작했습니다. 그가 하는 걸 보면 “명예는 순간이고 이문(利文)은 영원하다”는 시정의 우스개가 솔선수치를 행하는 사람들의 좌우명이 아닌가 싶군요.

‘조국백서’를 내겠다며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지지자 9,300여 명에게서 나흘 만에 3억여 원을 모금한 ‘음모론 전문가’ 김어준, 변호사로서 김어준과 어울리다가 국회의원까지 된 김남국 같은 사람들도 앞장서서 부끄러운 짓을 저질러 온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올 1월  “2019년 하반기 이른바 ‘조국 사태’를 거쳐 오며 시민들은 검찰과 언론의 민낯을 봤다.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던 시민들과 조국 사태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백서 제작을 준비했다”는 제작 취지를 설명하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돈 받을 때 약속한 책 발송일 4월이 지난 지 오래인데도 책이 언제 나온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습니다. 김어준은 18대 대선이 조작됐다는, 음모론을 주장하는 영화 ‘더 플랜’을 만들 때도 20억 원을 모금했는데 그 용처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받고 있습니다.

참, 감감무소식인 ‘조국백서’ 대신 ‘반(反) 조국백서’가 곧 나올 모양입니다. 이 소식을 전한 6일자 동아닷컴(donga.com)에 따르면 이 책 저자는 논객 진중권(전 동양대 교수)과 김경율(회계사, 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서민(칼럼니스트, 단국대 의대 교수), 권경애(변호사, 법무법인 해미르 소속) 등입니다. ‘진보 진영 인물’로 이름 높았으나 작년 가을 조국 사태 이후에는 대통령과 측근이 하는 말과 행동 모두를 날카롭게 비판해온 사람들이지요. 그 때문에 지금은 그 진영으로부터 엄청난 비판과 욕을 먹고 있기도 하고요.

7월 중 발행이 목표라는 이 책이 ‘반 조국백서’인 것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라는 제목(가제)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2017년 5월 10일 취임사에서 정말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뜻으로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고 한 걸 저자들은 “조국 사태 이후 좋아진 게 뭐가 있나, 좋아지기는커녕 대통령이 조국을 싸고돌면서 내로남불, 위선, 거짓말, 뻔뻔스러움, 덮어씌우기, 편 가르기 등등 공동체 발전을 저해하는 것들만 더 두드러지지 않았나, 정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가 되지 않았나”라고 힐난한 겁니다. 진중권 같은 이는 아예 “대통령 선거 공약 서른 개 중 하나만 실천됐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마지막 공약이 그것이다”라고 정신 박힌 사람이라면 아프기 그지없을 야유를 보냈습니다.

‘반 조국백서’를 무척 기대하고 있는 나는 이 책에 ‘솔선수치’와 관련된 부분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조국 사태의 핵심이자 본질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공직, 그것도 최상층의 공직을 맡거나, 김어준처럼 민간 영역에서도 분에 넘치는 자리를 맡아 자기네 이득을 우선적으로 챙겨왔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내가 반 조국백서 필자라면 ‘솔선수적(率先垂賊)'이라는 말도 사용했을 거라는 말로 이 글을 끝내겠습니다. 솔선수치를 행하는 사람 중에는 남의 것을 훔치는 것과 다를 게 없는 짓을 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는 생각에서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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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정숭호

1978년 한국일보 입사, 사회부 경제부 기자와 여러 부서의 부장, 부국장을 지냈다. 코스카저널 논설주간, 뉴시스 논설고문, 신문윤리위원회 전문위원 등 역임. 매주 목요일 이투데이에 '금주의 키워드' 집필 중. 저서: '목사가 미웠다'(2003년), '트루먼, 진실한 대통령 진정한 리더십'(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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