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센트 공화국] 8평 원룸에 멀티탭 6개도 모자라

8평 원룸에 멀티탭 6개인데도… '돼지코'가 모자라


[아무튼, 주말]
2020 대한민국 콘센트 공화국


    직장인 윤모(26·서울 용문동)씨 8평 원룸엔 곳곳에 핏줄처럼 전선이 늘어져 있다. 침대 머리맡 4구 멀티탭(플러그를 여러 개 꽂을 수 있는 이동식 콘센트)엔 휴대폰 충전기, 무선 충전기, 에어컨, 책상 옆 멀티탭엔 스탠드·선풍기·노트북, 화장대 옆 멀티탭엔 전동 칫솔, 헤어드라이어, 와이파이 공유기…. 벽면에 설치된 2구짜리 콘센트 5개로는 턱없이 모자라 멀티탭 6개를 추가했다. 콘센트 삽입구 총 23개. 평당 3구꼴이다. "충전 강박이 있어 플러그를 꽂아 두거든요. 원룸에선 두세 걸음 안에 모든 물건이 닿는 게 편해 여기저기 콘센트를 뒀는데 이렇게 많을 줄 몰랐어요."

일러스트=안병현

남 얘기가 아니다. 집을 한번 둘러보자. 콘센트마다 플러그가 빼곡하게 꽂혀 있지 않은가. 어미젖 물고 있는 새끼 돼지처럼 각종 코드가 멀티탭에 얼굴 파묻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이 나라의 당당한 멤버다. 웰컴 투 콘센트 공화국!

 

 

가전의 분화, 콘센트 포화

콘센트의 공식 나이는 116세. 한국전기연구원(KERI)에 따르면 1904년 미국 발명가 하비 허벨이 세계 최초의 전기 플러그와 콘센트를 특허 등록했다. 정작 미국엔 없는 표기. 'concentric plug(콘센트릭 플러그)'의 일본식 준말 '콘센토'가 한국으로 건너와 '콘센트'가 됐다. 영어론 'outlet(아웃렛)' 'socket(소켓)' 등으로 부른다. 한국에서 원조 별명은 '돼지코'. 작은 구멍 두 개가 뚫린 한국식 220볼트 플러그용 콘센트가 돼지 콧구멍 같다 해서 붙은 별명인데, 요즘은 플러그 앞에 끼우는 변환 어댑터에 별명을 넘겨줬다. 태어난 곳은 미국 땅이지만 '가전 천국' 한국에서 만개했다. 집마다 콘센트 대전이 펼쳐진다.

아이 둘을 둔 나모(42·서울 대흥동)씨네 4인 가족은 최근 21년 된 43평형 아파트로 이사했다. 리모델링할 때 가장 신경 쓴 부분이 콘센트. 이전 집에서 콘센트 기근 현상을 심각히 겪은 탓이다. 거실 천장엔 사물인터넷(IoT) 카메라용, 베란다엔 무선 청소기 충전용, 부엌 장 안과 화장실 서랍장 안엔 소형 가전용 매립식 콘센트를 설치했다.

나씨에게 집에 있는 가전 종류를 물었다. "공기청정기, 정수기, 시스템 에어컨, 전기밥솥, 오븐, 전기 포트, 에어 프라이어, 믹서, 냉장고, 인덕션, 식기 세척기, 세탁기, 건조기, 물걸레 청소기, 무선 청소기, TV, 비데, 스타일러, 스마트폰 3대, 태블릿 PC 3대, 노트북 2대…. 헉, 45개나 되네요. 20년 전 친정 식구 6명이 살 때와 비교하면 3배 정도 늘었어요."



무선 청소기, 무선 선풍기, 무선 충전기 등 무선 가전의 진격이 콘센트 포화 해소책 아니냐고? 현실은 반대다. 작동할 때는 코드가 필요 없지만, 쓰기 전 배터리를 충전하려면 콘센트가 필요하다. 코드리스(cordless·무선)의 역설이다.

최근 가정의 콘센트 수요를 반짝 증가시킨 돌발 변수가 생겼다. 코로나로 인한 재택근무 증가다. 콘센트는 홈 오피스의 생명선. 전기를 먹고 사는 디지털 기기가 방전되는 순간, 홈 오피스는 가동을 멈춘다. 콘센트 고장 난 집은 주유기 없는 주유소다.

두 달 전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시작한 직장인 정모(43)씨가 마스크 다음으로 준비한 것도 4구짜리 멀티탭 3개였다. "재택근무용 노트북에다, 아이 둘 온라인 수업용 태블릿 PC 등 갑자기 디지털 기기 사용이 확 늘었어요. 올 초 이사하면서 공사할 때 콘센트를 많이 넣는다고 했는데도 턱없이 부족하더라고요." G마켓에 따르면 올 상반기 멀티탭 판매량은 작년 동기 대비 5% 증가했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수업 등의 영향으로 보인다.

 

 

콘센트를 보면 삶이 보인다

작다고 깔보면 곤란하다. 콘센트는 주거 문화의 변화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다. 필요한 콘센트 수가 늘었다는 것은 그만큼 새로운 가전이 많아졌다는 의미이고, 가전의 변화는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음을 의미한다.

"식구마다 휴대폰을 쓰잖아요. 무선 이어폰, 태블릿 PC 충전도 각자 하고. 딸 둘이 같이 방을 쓴다 해도 과거보다 콘센트가 2배는 더 필요하다는 얘기죠." 인테리어 디자이너 조희선씨는 "10~20년 전만 해도 소형 가전이 이렇게 많아지리라곤 생각 못 했을 거다. 불과 5~6년 전 지은 아파트도 콘센트가 부족하다"며 "콘센트 포화의 핵심은 새로운 디지털 모바일 제품의 등장"이라고 했다.

주방도 치열한 콘센트 국지전이 펼쳐지는 무대. 한샘 디자인실 김윤희 상무는 "과거엔 24시간 켜져 있는 가전인 냉장고를 홈 네트워크 허브로 생각해 냉장고 대형화가 트렌드였다. 그런데 최근엔 와인 냉장고, 쌀 냉장고, 침실용 미니 냉장고, 복고형 냉장고 등으로 기능·취향에 따라 냉장고 종류가 잘게 쪼개지고 있다. 다른 가전도 세분되고 있어 그만큼 콘센트가 많이 필요해졌다"고 했다.

김 상무는 '환경'과 '건강'이 키워드로 부상한 것도 주목했다. "미세 먼지 때문에 공기청정기를 방마다 들이거나 스타일러를 갖춘 집이 늘어났고, 건강을 생각해 주방 가전도 주서기, 착즙기, 에어 프라이어 등으로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는 집 설계에도 반영된다. 삼성물산 건설 부문 M&E 센터 전기 담당 류규상 책임은 "신축 30평형대 아파트의 경우 특수 목적용이나 빌트인용 콘센트를 제외하고 2구짜리 콘센트가 거실 5개, 안방 3개, 주방 3개, 침실·부부 욕실·공용 욕실 각 2개, 베란다·세탁실·드레스룸·파우더룸 각 1개 등 총 25개(50구) 정도 설치된다"며 "10~20년 전과 비교해 1.5배 정도 늘어났다"고 했다. 예컨대 30평형대 아파트 거실의 경우 과거엔 2~3개 정도 있었지만 신축은 벽걸이 TV용 콘센트, 하부 거실장용 콘센트, 홈오토(인터폰) 아래 USB포트 딸린 콘센트, 소파 좌우로 하나씩 등 5개 정도 들어간다.



류 책임은 "콘센트 위치 하나에도 여러 연구가 반영된다"며 "요즘은 거실에서 TV를 없애는 등 획일적 인테리어에서 탈피하는 집이 늘어나고 있어 이런 변화까지 고려해 콘센트 수와 위치를 조정하는 게 과제"라고 했다.

콘센트를 확보하라


최근 인테리어 마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유럽형 정사각형 콘센트. 사진은 국내 중소기업에서 유럽형으로 만든 제품. / 애드리온

'멀티탭 없는 리모델링.' 요즘 인테리어 담당자들의 모토다. 조희선씨는 "집 공사를 할 때 꾸미기보다 기본 인프라를 제대로 갖추기가 더 중요하다. 그중 하나가 콘센트 확보"라고 했다. 전기 공사는 한번 해놓고 나면 다시 하기도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든다. 조씨는 리모델링할 때 고객에게 '현재 사용 중인 가전'과 '앞으로 추가할 예정인 가전' 리스트를 받은 다음 여기에 여분을 추가해 콘센트를 넣는다고 한다. 그는 "미관상, 안전상 안 좋은 멀티탭이 필요하지 않게 공사하는 게 목표"라며 "방마다 평균 4개를 넣는데 전체적으로 종전의 2배가 된다"고 했다. 멀티탭을 가리는 정리함도 인기다.



전기 기사 황모(59)씨는 "요즘은 인테리어 공사를 하면 40평형대 기준으로 콘센트를 5~7개 추가로 설치한다"며 "벽 콘크리트를 부수고 철 박스를 심어 콘센트를 부착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라 하나당 7만원 정도 드는데도 대부분 하는 추세"라고 했다.

콘센트가 단순 전기 공급 장치를 넘어 인테리어 요소로도 주목받고 있다. 크기는 작지만 벽면에 붙어 있어 작은 디테일에도 신경 쓰는 이들에겐 센스를 보여주는 장치가 되는 것. 조희선씨는 "전형적인 한국형 콘센트는 직사각형인데, 요즘은 유럽형 정사각형 콘센트를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며 "개당 2만~7만원 정도로 비싼 프랑스·독일제 콘센트를 찾는 이도 꽤 있다"고 했다.

절반 가격으로 유럽형 정사각형 콘센트를 만드는 국내 업체들도 몇 군데 등장했다. 그중 한 업체인 '애드리온' 임성욱 부장은 "4년 전 타운하우스, 전원주택, 호텔 등 고급 건물용 틈새시장으로 생각해 유럽형 콘센트를 만들었는데 요즘은 마감재까지 신경 쓰는 이가 많아져 일반 가정 수요도 눈에 띄게 늘었다. 드라마 제작사에서 콘센트 협찬을 요청할 정도"라고 했다. 드라마 볼 때 눈 크게 뜨고 벽면을 봐야겠다. PPL 강자 홍삼 스틱, 화장품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 PPL 샛별 콘센트가 보일지 모르겠다.

플러그 느슨하게 꽂으면 화재 위험도

 

멀티탭 7문7답

콘센트 부족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멀티탭은 구세주다. 한국전기연구원 도칠훈 박사에게 멀티탭에 대해 물어봤다.

―멀티탭에 가전 여러 개를 꽂아 쓰면 위험하지 않은가.

"전자레인지, 전기난로, 인덕션, 오븐, 에어컨 등 전력 소모가 많은 가전 기기는 벽 콘센트에 꽂는 게 가장 좋고, 멀티탭을 쓸 때도 하나만 꽂는 게 바람직하다. 휴대폰 충전기 등 전력 소모가 많지 않은 소형 디지털 기기는 여러 개 꽂아도 괜찮다. 허용 전력을 넘지 않으면 된다."



―허용 전력이 뭔가.

"허용 전력 용량은 버틸 수 있는 전력 용량이다. 포장 뒷면이나 멀티탭 뒤에 적힌 '정격전압'을 보면 전압(V·볼트)과 전류(A·암페어)가 나온다. 둘을 곱하면 허용 전력 값이 나온다. 예컨대 '16A 250V'라고 적혀 있으면 허용 전력은16A×250V= 4000W(와트)다."

―개별 스위치가 달린 멀티탭이 더 안전한가.

"전자 제품을 콘센트에 꽂아두면 전원을 켜지 않아도 대기 전력이 발생한다. 개별 스위치가 있으면 필요 없는 기기로 전력이 공급되는 걸 차단할 수 있으니 대기 전력이 감소하는 것이다. 가정에서 보면 절약되는 대기 전력이 아주 많지는 않지만, 국가적으로 볼 때는 전력 절약이 크다."

―개별 스위치가 있는 멀티탭에서 스위치 1개가 고장 나서 안 될 때가 있다. 나머지를 계속 써도 위험하지 않은가.

"스위치 불을 밝히는 발광 다이오드 소자가 나갔을 수 있다. 불량품이 아닌 한, 누전 차단 장치가 있기 때문에 그 칸 말고 나머지 작동하는 삽입구를 쓰는 건 문제가 안 된다."

―멀티탭에도 수명이 있나?

"금 등 귀금속을 제외한 나머지 물질은 시간이 흐르면 산소와 반응해 산화된다. 콘센트용 전선은 거의 구리선이고, 간혹 알루미늄선이 쓰이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표면에 산화막이 생겨 전자 전도성이 낮아지고 저항이 커져 에너지 효율이 떨어진다. 멀티탭은 반영구적 장치가 아니다."

―멀티탭 쓸 때 주의할 게 있다면.

"삽입구에 플러그를 끼울 때 홈에 꼭 맞춰 끝까지 꽉 끼워야 한다. 느슨하게 꽂으면 플러그와 콘센트의 접촉 면적이 작아져 저항이 커지면서 열이 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멀티탭 전선 길이는 상관없나?

"길수록 저항이 크다. 선 길이가 짧을수록 좋다. 5m 정도까지는 괜찮지만 그 이상은 주의해야 한다."
김미리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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