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말만 믿었는데"...태양광 사업자들 망연자실


태양광 사업자들의 '무한 기다림'…"정부 말만 믿었는데"


#1. 충남 청양의 한 과수원 부지. 축구장 한 개 크기 산지엔 농사를 포기한 밤나무만 늘어서있었다. 제철을 맞은 밤꽃들이 흐드러지게 자태를 뽐냈지만 사업자 A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연 1억8천만 원의 수익을 기대하며 태양광 사업에 뛰어든 지 어느덧 5년. 어려워진 농가 사정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였다. 하지만 아직 부지는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장밋빛 기대는 허탈로 바뀌었다.


태양광발전 전기사업소 전경 / 제주도 제공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발전사업 허가는 5년 전, 개발행위 허가는 작년에야 받았다. 까다로운 인허가 절차를 마치고 드디어 전기를 팔 수 있을 거란 꿈에 부풀었지만 다음 걸림돌은 '선로'였다. 태양광으로 만든 전기를 팔려면 설비를 한국전력의 송·배전망에 연결해야 한다. 이걸 '계통연계'라 한다. 하지만 배전선로가 부족해 당장 연결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무제한 접속 약속만 믿고 있던 A씨의 가슴은 털썩 내려앉았다. 한전은 2016년 10월부터 1MW 이하 소규모 신재생 발전 설비를 무조건 전력망에 연결시키고, 공용망 보강이 필요할 경우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변수였다. A씨는 직접 한전에 찾아가 항의까지 했지만 돌아온 건 "언제 가능할지 모르겠다"는 답변뿐이었다고 한다.


A씨는 이미 한 발전 자회사에 20년 장기계약으로 전기를 팔기로 돼 있었다. 올해 안에 공급하지 못하면 계약이 취소되는데다 수천만 원에 이르는 위약금까지 물어야한다. 이미 인허가 과정과 진입로 조성 등에 든 돈만 2억 원에 달한다. 농사를 포기하면서 1억 원의 대출까지 끌어 쓴 상태다. 밤농사도, 태양광 사업도 못한 채 땅만 5년째 놀리고 있는 A씨는 차라리 사업을 포기해야할 지 고민이다.


#2. 광주의 태양광 시공업자 B씨는 요즘 태양광 사업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뜯어 말린다. 계통연계 신청을 하고도 밀려있는 사업자들이 이미 태반이다. 심지어 태양광 설비를 지어놓고도 선로 연결이 안 돼 마냥 기다리고 있는 사업자들도 있다고 한다.


이 지역에서 태양광에 뛰어드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후 보장을 목적으로 한 어르신들이다. 매달 수백만 원 벌이가 가능하다는 달콤한 말만 믿고 빚까지 내 설치하기 때문에 만류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사태를 본 B씨는 본인 사업을 하려다 포기했다. B씨는 "한전에 물어봐도 지금부터 빠르면 2년~5년 걸린다는 말만 돌아온다"며 "무턱대고 독려하고, 허가만 내놓고 이제 와 어쩌라는 것이냐"고 한탄했다.




땅값이 싼 지방일수록 태양광 설치가 매력적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지역일수록 송배전망 인프라는 부족하다. 현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정책에 힘입어 영호남을 중심으로 전국 곳곳에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서고 있다. 많은 사업자들이 몰리는 전라도와 경상도 일대에 유독 접속 지연이 집중된다. 하지만 인프라가 받쳐주지 않자 무한 대기의 악순환은 계속되는 것이다.


1/3이 '접속 대기'…인프라에 발목 잡힌 태양광

전국에서 지난 2016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태양광 발전 계통 연계를 신청한 용량은 14GW에 달한다. 하지만 이 가운데 4.6GW가 여전히 접속 대기 상태다. 한마디로 태양광 발전에 뛰어든 사업자 1/3이 아직 사업을 하지 못하고 있단 얘기다. 송배전망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전은 지난 3월부터 배전선로 접속 용량을 20% 늘렸다. 쉽게 말해 기존엔 1개 선로에 10MW 태양광 설비를 물릴 수 있었다면 이제 12MW까지 연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송배전설비를 더 빨리 짓는 방안 등을 추진 중이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전남의 한 사업 관계자는 "지금 밀려있는 걸 생각하면 20% 접속 늘리는 건 조족지혈"이라며 "정부에서 독려만 하지 '나 몰라라' 하고 있어 배신감까지 든다"고 언성을 높였다. 충남 천안의 한 사업자도 "당장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호소했다.


당장 배전선로를 새로 까는 게 급선무지만 공사엔 최소 1년 넘게 걸린다.


배전철탑을 드론으로 점검하는 모습 / 한국전력 제공




배전선로 신설에만 10년 간 2조원…"독려만 급급"

비용도 문제다. 미래통합당 한무경 의원실이 한전 전력연구원에서 제출받은 보고서를 보면 2031년까지 배전선로를 신설하는데 드는 돈은 2조1869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송전선로, 변전소 신설까지 더하면 비용은 훨씬 더 늘어날 전망이다.


2년 연속 적자에 시달려온 한전에 송배전 설비 확충 비용이 만만치 않은 부담이 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전 전력연구원도 보고서에서 "배전선로 신설은 어려운 회사 재무여건에서 투자비가 지속 증가하는 부담이 따른다"고 밝혔다. 한무경 의원은 "태양광 발전 확대에만 급급했지 인프라 구축이나 경제성은 따져보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정부는 2034년까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78.1GW까지 계속 늘리겠단 계획이다. 비중으로 보면 현재 15%에서 40%까지 늘어난다. 2030년까지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을 20%로 끌어올리겠다던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보다 한발 나아간 것이다. 송배전 설비 확충 비용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사태를 예측할 순 없었을까. 전문가들은 정부가 애초 태양광 발전 확대를 추진할 때 고려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자동차가 늘면 도로를 확충해줘야 되는데 그게 안 된 꼴"이라며 "정책 속도를 현장이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도 "확대에만 급급해 전력 설비망에 대한 부분을 놓친 것"이라고 꼬집었다.




수없이 늘어날 송배전선로 관리도 숙제다. 이 교수는 "원전은 연결을 위해 큰 전용도로 하나만 깔면 됐다면, 신재생에너지는 시골길을 수없이 만들어야 하는 꼴"이라며 "겨우 송배전선로를 깐다 해도 소규모 영세 신재생 발전업자들을 누가 어떻게 일일이 관리할 것인가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정부는 지난해 태양광 설비 보급 목표를 조기에, 초과 달성했다며 자축했다.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기 전, 현장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였다면 사업자들이 느낀 '배신감'이 조금은 덜해졌을까. 정부와 현장의 온도차가 아쉽다. 

임유진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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