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의 글쓰기 [김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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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시대의 글쓰기

2020.06.09

언제부터인가 100세 시대라는 말이 낯설지 않고 별 감흥도 없습니다. 80세 넘어 세상을 달리해도 ‘호상(好喪)’이란 말을 쓰지 않는 요즈음입니다. 어, 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과거의 기준으로 노인의 문턱에 다다른 50~64세 인구는 신중년 또는 ‘50플러스(+)세대’로 불립니다. 머지않아 ‘노인’이라는 기준도 바뀌고 ‘신중년’이란 말도 나이대가 바뀔지도 모릅니다. ‘60플러스(+) 세대’로, 60~74세입니다.

60플러스(+) 세대는 역동의 근‧현대를 살며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공신이기도 합니다. 이들의 지식과 경험을 살리기 위한 지원 방책 강구가 국가 사회적으로 중요하겠지만, 당사자들 또한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고 인생 제2막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인생 2모작의 첫 발걸음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글쓰기를 제안합니다. 그런데 왜 글쓰기를 추천하는가? 나 자신과 주변을 정리 정돈하고 다시 새로운 걸음을 딛기 위함입니다.

우리 속담에 이런 말도 있죠. ‘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어떻게? 나라를 구했다든지(순국선열처럼), 애국하고 사회에 큰 공헌을 해서(정치인은 제외합니다!) 남이 내 기록과 역사를 남겨주면 좋죠. 하지만 만만치 않습니다. 우선 주위를 살펴보죠. 가까운 지인이나 일가친척 중에 그런 ‘셀럽’이 있는지요? 뭐 동창 중에는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요. 우리 모두 이름을 남길 수 있다면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 나쁠 거 없잖아요, 솔직히? 여건이 안 돼서 그렇지요.

그런데 죽지 않고도 이름을 얻는 손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글을 쓰면 됩니다. 그러면 이름이 남거든요. 유식한 말로 유한한 시간의 흐름에 관여하는 것이죠. ‘경험이 없는데 무슨 수로 글을 쓴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 법합니다. 하지만 평생을 살며 누구에게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이에요. ‘나’야말로 ‘내 이야기’의 주인이잖아요, 그러니 나에 대한 이야기로 접근해보죠. 간단한 글쓰기부터 수기나, 자서전, 수필집, 회고록, 회상록, 고백록, 자전적 소설에 이르기까지, 어떤 형태로든. 내가 주인인 내 이야기로 말이죠.

글쓰기에 공인된 양식이나 형식은 없습니다. 굳이 구분한다면 시간 흐름에 의한 전기형(연대기형) 서술과 테마형 서술이 있습니다. 전기형은 기록과 서술 측면이 강하고, 테마형은 구성과 화소 배치, 묘사 측면이 두드러집니다. 전기형은 시간에 순응하는 글쓰기의 대표 격으로 과거 대부분의 수기나, 자서전, 전기는 이렇게 쓰였습니다. 케케묵은 창씨 자료와 조상의 벼슬 언급부터 시작해 이력을 들추어내는 것이죠. 1. 출생 전ㅡ>2. 출생ㅡ> 3. 유치원 ㅡ> 4. 초등학교 ㅡ>5.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ㅡ> 6. 입사와 퇴사ㅡ>6. 퇴직 후 백수 생활ㅡ>7. 현재로 이어지는 글쓰기입니다. 하지만 요즘 이렇게 쓰다가는 시대에 뒤처져 어느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할 것이에요. 종이야 미안하다, 나무야 미안하다!

테마형은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지 않지만 변형된 글쓰기입니다. 시대별 중심 사건을 다루되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해 이야기를 재구성합니다. 이를테면 1. 천상천하유아독존(석가는 아니지만)ㅡ>2. 세발자전거와 반려동물의 기억ㅡ>3. 내 인생 최초의 잊지 못할 아픔 4. 학창시절의 꿈과 소망ㅡ>5. 사회 진출 후의 성과와 좌절ㅡ>6. 사랑과 이별, 결혼(이혼 포함)ㅡ>7. 자녀의 성장과 독립ㅡ>종교 입문과 취미 생활ㅡ>8. 은퇴 후 100세 시대의 삶 등. 큰 틀에서 시간 흐름을 타되 중심 사건을 내세워 내 삶을 말하는 방식입니다. 이런 유의 글은 재미있고 읽을 맛이 납니다. 앞으로 대세를 이룰 것이라 짐작합니다.

‘말이야 쉽지, 그 어려운 것을 어떻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개발새발도 괜찮으니 한 편의 글(A4 용지 1장)로 시작하면 됩니다. 기억을 되살려 가장 의미 있거나 잊지 못할 일이면 무엇이든 좋습니다. 기쁜 일, 슬픈 일, 첫사랑, 좌절과 아픔, 시련 극복기, 고마운 사람, 잊지 못할 사람, 이사와 첫 집 장만 등. 개인의 취미, 신념과 가치관도 포함될 수 있겠죠. 아내와의 이야기를 써도 괜찮겠죠. 어떻게 처음 만났나? 어려움이나 우여곡절은? 그런 다음 차차 이야기와 범위와 개수를 넓혀나갑니다. 단계별로 5~6개씩만 간추려도 얼추 30~40편입니다. 그러다보면, 웬일이니! 책 한 권으로 충분한 양이 되네요.

최종단계인 글 모음으로 책을 내려면 품격을 갖추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자기 삶을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겠죠. 어쨌거나 어렵사리 초고가 마련되면 퇴고 과정을 거치며 문장도 가다듬고, 구성과 체계도 고려하며, 새로운 소재나 기억을 되살려 첨삭 보완합니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나의 글이 다른 사람에게 읽혀야 하고 설득력 있게 전개되어야 한다는 점일 것이에요. 어려울 수도 있는 이 작업을 수행하려면 당연히 인내심과 도전의식, 끊임없는 자극과 동인이 필요하겠죠?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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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김창식

경복고, 한국외국어대학 독어과 졸업.수필가, 문화평론가.
<한국산문> <시에> <시에티카> <문학청춘> 심사위원.
흑구문학상, 조경희 수필문학상, 한국수필작가회 문학상 수상.
수필집 <안경점의 그레트헨> <문영음文映音을 사랑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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