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딜정책,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내세우지만 실상은..."


[최보식이 만난 사람] 

"文대통령 뉴딜발언 한달 안돼 5조사업 뚝딱… 그냥 돈잔치"


'정책의 배신'의 저자, 윤희숙 의원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고 내세우지만 실상 강성 노조와 586세대 등 좌파 기득권 수호를 위한 것이다. 그 짐은 고스란히 힘든 서민과 자식 세대에게 떠넘겨진다. 일반 국민은 이런 정책의 함정을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요즘 경제 공부를 위해 들고 다니는 책이 '정책의 배신'이다. 지난 금요일에는 저자 특강도 들었다고 한다.


저자는 당 바깥의 사람이 아니라 윤희숙(50) 의원이다. 미 컬럼비아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를 했다. 공공재정 분야 전문가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발언으로 '기본소득'이 핫이슈가 됐을 때 만났다.


―김종인 위원장의 기본소득 발언은 약간 오락가락한 느낌을 줬다. 통합당 안에서 이런 논의가 진행돼왔나?


"여당의 돈 살포로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분석이 있었다. 우리도 돈을 풀 수 있는 정당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논의가 시작된 것 같다. 기본소득은 국민 개개인이 사회에 대해 일정 지분을 가지기 때문에 일종의 배당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학설에서 나왔다. 국민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윤희숙 의원은 '요즘은 '현금 뿌리기'가 마치 개혁적인 것처럼 포장된다'고 말했다.




현금 복지 경쟁


―기존의 복지 제도는 방만하다. 중간 단계에서 새는 관리 비용이 너무 많다. 기본소득은 이런 비효율적 복지 체계를 대체하려고 한 것이다. 정부가 일정액을 국민에게 직접 줘 알아서 사용하라는 거다. 하지만 지금 나오는 기본소득 주장은 '약자와의 동행'에 맞게 사회 취약 계층에 어필하겠다는 것인데?


"그런 목표라면 전 국민에게 주는 기본소득의 원래 개념과 맞지 않는다. 약자 배려가 왜 현금을 뿌리는 식이어야 하나. 그게 실제적인 효과가 있을까. 불평등과 양극화가 왜 심화되는지 구조적 문제를 봐야 한다. 오히려 교육과 일할 기회를 더 제공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요즘은 '현금 뿌리기'가 마치 개혁적인 것처럼 포장된다."


―기본소득 제도를 도입하려 했던 쪽은 우파였다. 닉슨 미 공화당 정부에서 처음 시도됐지만 민주당이 재원 문제 등으로 반대했는데?


"우리의 경우 여권에서 정치적으로 기본소득을 얘기하는 세력이 쭉 있어 왔다. 기존 복지에 기본소득을 추가로 얹어주려는 것이다. 특히 이재명 경기지사는 기본소득을 자신의 브랜드로 삼고 있다."


―김종인의 발언 직후, 이재명 지사가 기다렸다는 듯 "기본소득이 다음 대선(大選)의 핵심 의제"라고 했다.




"낚시에 걸린 것처럼 우리가 민주당의 어젠다를 문 격이다. 상대 프레임에 갇히면 결코 이길 수 없다. 우리 당이 감당 못 할 기본소득을 이슈로 만든 것은 실수였다고 본다."


김종인 위원장

―스위스에서는 몇 년 전 기본소득 찬반 투표를 실시해 부결됐고, 핀란드에서는 실업자만을 대상으로 시행해봤는데?


"핀란드에서 실업자를 두 집합군으로 나눠 기존 복지 제도와 기본소득 제도를 2년간 적용했다. 기본소득에 대해 부정적 평가가 나왔다. 근로 의욕과 역동성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이번에 공돈 맛을 봤다. 현금 복지 경쟁은 시대적 추세가 된 것 같다. 코로나 사태로 문재인 정권은 눈치 안 보고 돈을 뿌릴 명분도 얻었다.


"재난을 맞은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중소기업을 위해 돈을 잘 썼어야 하는데, 보통 때도 못 먹던 한우를 다들 사 먹으러 갔다. 한우 값이 올랐다는 뉴스도 있었다. 이건 비정상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우를 사 먹었다는 보도를 보고 흐뭇했다'는 글을 올렸는데?


"흐뭇하게 여길 사안이 아니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문제였다. 정말 급박한 상황을 막는 데 재난지원금이 안 쓰였다는 뜻이다."


―재난지원금으로 한우를 사 먹든 뭘 하든 소비 진작으로 경제가 굴러가는 선순환이 될 거라고 했는데?


"현 정권이 앞서서 '한우 먹으러 가는 것도 경기 부양이고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국가 장래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정권 임기 동안만 굴러가면 된다는 식이다. 제정신을 가진 경제 관료라면 재난 상황에서 돈이 이런 식으로 쓰이는 데 대해 걱정 많을 것이다."


―총선 때 여당이 소득 하위 70%에게 재난지원금을 주자고 하니, 오히려 황교안 대표가 전 국민 50만원, 김종인 위원장은 대학생 100만원을 주자고 했는데?


"우리나라 산업화를 이끌어온 보수 세력은 나라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 포퓰리즘 정책에 편승하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는 보수 진영에 그런 지도자가 없었다."


―국민은 현 정권을 겪으면서 '이렇게 돈을 막 뿌려도 나라도 안 망하는데 과거 보수 정권은 우리에게 너무 인색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정권 임기 안에는 덮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쌓이고 있다. 그리스나 베네수엘라 꼴이 된다. 이대로 가면 정말 망한다고 국민에게 계속 알려야 하는데 그런 정치 세력이 없었다."


같은 문재인의 다른 발언


―문 대통령이 '전시(戰時) 재정 편성'을 주문하면서 우리 재정은 튼튼하다고 강조하는데?


"기축통화(국제 금융거래에서 통용되는 미국·EU·영국·일본 화폐) 국가가 아닌 나라 중에서는 우리의 부채 비율은 높다. 재정 부실은 국채 시장에서 국가 신용 평가로 이어지는 구조다."


―문 대통령은 작년 이맘때 '국채 비율 40%의 근거가 무엇인가?'라며 머뭇거리는 기획재정부를 압박했다.


"같은 문재인이 4년 전 야당 대표 시절에는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 40%를 죽어도 맞춰야 한다'며 박근혜 정부를 공격했다."


―왜 국채 비율을 40% 선에 맞춰야 하나?


"우리나라의 고령화와 생산 활동 인구 등을 계산하면 40%를 안 넘어야 건전 재정이라는 것이다. 경제 근간이 튼튼하면 부채 비율이 좀 높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빚의 성격이다. 일시적이고 투자 성격의 빚은 나중에 수익이 나면 갚을 수 있다. 싱가포르 부채 비율은 우리보다 몇 배 높지만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얼마 전 이창용 IMF 아태국장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경제 펀더멘털이 나빠지고 빚의 성격도 나쁘다"고 지적했는데?




"가정에서도 만성적 빚이 늘어나면 빚쟁이가 달려든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빚을 내서 복지 등 영구적 지출에 쓸 경우 국제 금융시장에 나쁜 시그널을 주게 된다. 외국 투자자들이 '이 나라는 빚을 관리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해 채권 회수에 들어가면 우리 정부는 상환 부담에 빠질 수 있다. 한 달 전 KDI 보고서에도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재정 적자가 경제 위기를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코로나 사태 이전인 작년에도 이미 정부의 재정 적자는 역대 최대였다.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사업과 공무원 증원 등으로 정부 지출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특히 공무원 수 늘리기는 영구적 재정 부담이 될 것이다. 일자리는 경제 활성화를 통해 시장에서 만들어야 하는데, 임기 내 공무원 등 공공 부문에서 17만4000명을 증원하겠다고 했다."


―그 숫자대로라면 공무원 한 명당 30년간 인건비와 연금 등으로 405조4000억원의 추가 예산이 들어간다는데?


"공공 부문은 1차 생산자가 아니다. 민간 부문에서 돈을 벌어 세금으로 먹여 살린다. 공공 부문 일자리 처우가 민간보다 훨씬 좋고 '철밥통'이다. 이러니 젊은이들이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인재 풀을 얼마나 왜곡시키나."


―코로나 사태를 봐도 민간에서는 폐업·해고·휴직이 속출하지만,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데는 공무원·공기업 등이다.


"나라를 정상적으로 만들려면 공공 부문 개혁이 너무 중요하다. 다음 정부가 이런 부담을 다 떠안게 될 것이다."


―얼마 전 3차 추경안이 제출됐다. 코로나 사태에서 현실적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재정 정책밖에 없지만, 3차 추경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35조3000억원으로 규모에서도 최대였는데?


"1998년 외환 위기와 2008년 금융 위기를 맞았을 때도 정부 재정으로 극복해냈다. 그동안 보수 정부가 재정 관리를 잘해 신용도를 좋게 유지해왔기 때문이다. 재정이 안 튼튼했으면 단기간에 그렇게 막을 수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누구도 재정 투입을 반대하지 않는다. 국가 부채 증가를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다. 하지만 어떻게 돈을 쓰느냐, 지출의 성격은 매우 중요하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김종인 위원장에게 "순부채 증감률을 100조원을 안 넘기려다 보니 이 정도로 낮춰 어깨가 무겁다"고 말했다. 마치 선심 써서 추경 규모를 적게 해줬다는 것처럼 들렸다.


"현 정권은 재정 적자를 많이 내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일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 외환 위기 때는 국채 24조9000억원, 글로벌 금융 위기 때는 43조2000억원이었다. 지금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재정을 집어넣고 보자는 식이다."


그냥 돈 잔치


―돈을 마구 풀어 경기 부양으로 경제 선순환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인데?


"지금은 생산 활력을 살리는 쪽으로 돈이 들어가고 동시에 구조조정을 병행해야 한다. 단지 경기 부양을 위해 뿌려대서는 안 된다. 가령 5조원을 책정한 '한국판 뉴딜' 사업은 돈을 퍼붓기 위해 급조됐다. 위에서 갑자기 몇 조(兆)를 쓰라고 하면 기재부에서는 그 돈을 쓸 사업을 만드느라 난리가 난다."


―설마 정부가 구체적 사업 내역도 없이 퍼붓겠나?


"문 대통령이 '뉴딜'이란 말을 꺼낸 지 한 달도 안 됐다. 이 짧은 기간에 5조원짜리 사업 계획을 세웠다면 아이들도 웃을 일이다. 그냥 돈 잔치를 벌이겠다는 것이다. 통상 수천억원짜리 국책 사업에는 전문가 회의와 예비타당성 조사 등을 거쳐 2년 이상 준비한다."


―경제 관료들은 알면서 이렇게 하고 있다는 건가?


"위에서 몇 조를 쓰겠다면 공무원들은 그것에 맞추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렇게 해왔지만, 지금은 너무 대담하게 한다는 차이가 있다. 현 정권은 '재정을 많이 쓰는 게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식의 담론을 퍼뜨렸다. 국민을 그렇게 믿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견제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최보식 선임기자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6/07/202006070231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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