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내쇼날’의 비밀과 ‘재현학원’ [박종문]



www.freecolumn.co.kr

일본 ‘내쇼날’의 비밀과 ‘재현학원’  

2020.06.06

일본 전기공업계의 왕자가 된 '내쇼날'을 일으킨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은 소학교도 못 다닌 무학자지만 어려서부터 남의 공장의 직공으로 다니며 정직하고 부지런히 일하면서 숱한 고생을 하다가 스물세 살 때 독립을 하였습니다. 겨우 세 명의 사원을 데리고 오사카시 변두리의 작은 셋집 하나를 얻어 조그마한 공장을 차렸습니다.
 
어느 날 마쓰시타는 거래처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하기 위해 어느 민가의 추녀 밑에 서있었습니다. 비가 그치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 그 집 안에서 부부가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방이 이렇게 어두운데 전등을 켜야 식사를 할 수 있지 않겠소?"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다리던 옷을 마저 다리미질해야 하니까요."
"아 참, 옷은 내일 마저 다리면 될 게 아니오?"
"지금 마저 안 다리면 옷이 말라서 안 돼요."
이렇게 부부는 서로를 양보하지 않고 전기 사용을 가지고 소리를 높여가며 다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마쓰시타 머리에 번개같이 스쳐가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옳지, 저럴 때에 하나의 전선에 두 개의 소켓을 달면 저런 다툼은 없을 것이 아닌가?"
공장에 돌아온 마쓰시다는 그날 밤새도록 쌍소켓의 설계를 그려가지고 다음 날부터 쌍소켓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천장에서 내려온 외줄 전선에 쌍소켓을 달면 전등도 켜고, 동시에 전기다리미나 선풍기도 쓸 수 있는 매우 편리한 물건이었습니다.

이 쌍소켓이 새로 선보이자 폭발적으로 팔리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전 세계로 팔려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해 1년 사이에 30억 엔(한화 240억 원)이라는 엄청난 수입이 늘어나 그것이 자본이 되어 회사가 점점 커지면서 '내쇼날' 이라는 일본에서 잘 나가는 대실업가가 된 것입니다.

일전, 상계동에 있는 ‘재현학원’ 이사회에 다녀왔습니다. ‘재현학원’은 1970년, 당시 73세의 이익엽 전 재현학원 이사장이 세우신 학원입니다. 한국모방 회장을 역임하신 고 김재현 씨가 40대의 연세에 자식도 남기지 않고 지병으로 1961년 세상을 떠나자 혈혈단신이 된 이익엽 여사가 아들을 기리기 위하여 장학재단인 ‘김재현 육영회’를 설립하여 몇 년 간에 걸쳐서 150여명의 장학생을 배출하였습니다. 후에 그 장학생 출신 중에 저 같은 장돌뱅이도 있지만 3명의 장관, 수많은 의사, 법조인, 교수, 실업인들이 배출되었습니다.

장학재단으로는 미흡하여 그 연세에 학원을 설립하여 당시 서울에서 가장 빈촌인 상계동의 야산을 매입하여, 돌산을 깨고 그 자리에 재현중학교를 건립하여 1971년 개교하였습니다. 1977년에는 재현고등학교도 건립하였습니다. 빈촌인 상계동에 세워진 그 학원이 금년에 설립 50주년을 맞이하였고, 서울대학교 7명을 비롯한 서울 소재 6개 주요 대학에 무려 64명을 합격시킨, 일반학교로는 서울 최고 명문 고등학교 중 하나로 성장하였습니다.

저는 'Knowledge is Power'가 아니라 'Practicing Knowledge is Power.'라고 주장합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석이란 말이 있듯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걸 바로 실행에 옮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쓰시타 씨나 이익엽 여사에게는 감히 비견할 수 없지만, 저는 다른 사람은 하던 사업도 접는 70세에,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가 보내 준 아이디어 하나를 듣고 바로 구멍가게 회사를 설립하여 스낵사업에 뛰어들었습니다.  

아내 - "그래 바로 실행에 옮겨 그 콜라겐팝 사업이 성공하였소?"
남편 - "아니, 아직은 성공하지 못했소. 그러나 뭐든지 성공을 하려면 최소 5년은 걸리는 법이오. 처음 해 보는 사업(?)인데 제품을 출시한 지 3년 동안 안 망한 것만 해도 대단한 것 아니오? 5년에 안 되면 7년, 10년 끈질기게 해 보면 성공할 거요."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부푼 가슴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박종문
세계 제 1의 곡물 메이저 카길(Cargill) 한국 지점장 역임, 현 (주)지미앤초이스푸드 대표, 여행작가, Tourpen Club 회장

.

.

Copyright ⓒ 2006 자유칼럼그룹.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freecolumn.co.kr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