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일용직, 일감 끊기며 생계 막막 “사회보험을 무슨 수로 드나”


사회안전망에서도 비껴난 직종…연금ㆍ보험 가입률 20%대 그쳐

서울시 “건설노동자 국민연금ㆍ건강보험료 지원”


    “오늘은 제발 일이 있어야 할 텐데….”


28일 오전 5시 서울역 인근 인력소개소로 향하는 건설일용직노동자 신모(30)씨의 발걸음이 무겁다. 이른 새벽마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인력소개소 몇 군데를 돌아도 공치는 날이 더 많아진 탓이다. 이번 주에도 월요일 하루밖에 일하지 못했다. 지난해만 해도 일주일에 닷새는 기본으로 건설현장에 나가 일할 수 있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감이 사라진 요즘은 일주일에 사흘만 일해도 운이 좋은 편이다. 일당 13만원에서 인력소개소에 수수료를 떼주고 남은 100만원 남짓으로 한 달을 나야 한다. 당장 생계가 막막해졌다. 신씨는 “정 궁하면 구세군 무료 급식을 찾아 끼니를 해결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그것도 어렵다”며 “월세 내고 남은 돈으로 한 달을 살려면 저축은 꿈도 못 꾼다”고 토로했다. 밑천이라곤 청춘뿐인 그는 그저 오늘 하루도 잘 버틸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날도 빈손인 채 고시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낮 기온이 26.6도를 기록한 27일 서울 관악구의 한 터널공사 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이 지름 1.2m인 상수도관 안에 들어가 작업을 하고 있다. 건설업은 고되고 위험한 노동환경에 비해 임금 수준이 낮고 고용 형태도 불안정한 대표적인 직종이다. 배우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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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은 가장 취약한 계층에 가장 먼저, 가장 깊은 타격을 준다.’ 코로나19 사태로 일용직이 대부분인 건설노동자의 불안정한 삶이 민낯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코로나19는 비정규직, 그 중에서도 일용직 노동자를 덮쳤다. 건설 일용직은 일용직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직종으로 꼽힌다. 그렇잖아도 불안정한 고용환경과 건설 경기 침체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온 건설노동자에게 코로나19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건설업 취업자 수는 193만4,0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만9,000명 줄었다.


건설일용직은 위험하고 고된 노동환경에 비해 임금 수준이 낮고 고용 형태도 불안정한 대표적인 직종이다. 건설노동자 10명 중 7명은 한 공사현장에 7일도 채 발붙이지 못하는 ‘떠돌이’다. 애초 건설업 특성상 공정별로 일자리가 발생해 한 현장에서 오래 일할 수 없는 한계도 존재한다. 단기 고용 관행은 사고나 부실시공으로 이어지기 쉽다. 실제로 건설현장에서 재해 비율(1.76%)은 전체 산업 평균(0.34%)의 5배가 넘는다.




월 평균 근무일수도 13일에 불과하다. 자연스레 소득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다. 형틀목공, 용접, 화약취급 등 123개 직종의 건설기능인력도 75%는 소득 2분위(소득 하위 40%) 이하이고, 이른바 ‘잡부’로 불리는 저숙련 일용직은 1분위로 추정된다. 직장생활을 하다 최근 10여년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서창석(56)씨는 “하루 필요해 부르는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10만원 남짓 받아 하루 벌어 먹고 살다 보면 돈이 안 된다”며 “주변의 일용직 건설근로자 대부분은 월셋방에 살면서 다음달 월세 걱정하면서 산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건설노동자는 가장 취약한 직종임에도 사회안전망에서는 또 비껴나 있다.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만 하더라도 사회보험(국민연금, 건강보험) 가입률이 50%를 웃도는 반면 건설노동자의 경우 국민연금 22.2%, 건강보험 20.8% 가입에 그친다. 100세 시대, 하루살이 건설노동자의 노후가 더 불안한 셈이다. 99.1%가 가입한 산재보험에 비해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가입률이 떨어지는 건 구조적 요인이 크다. 건설노동자 임금에서 각각 4.5%, 3.335%를 떼어 공제하는데 한 푼이 아쉬운 노동자들 스스로 가입을 꺼리는 게 현실이다. 2018년 정부가 사회보험 가입률을 높이기 위해 가입기준을 기존 월 20일 이상 근무한 건설노동자에서 8일 이상으로 완화한 것도 오히려 단기 근로 급증에 일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 조치로 50.2%였던 7일 이하 단기 노동자가 69.5%까지 뛰었다. 한 인력소개소 대표 이모(57)씨는 “실제로 사회보험 가입을 꺼려 일주일만 나오는 사람도 있다”며 “한 달에 보름 이상 일하는 사람에겐 사회보험 부담분이 이틀치 일당 정도라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노동자로서의 당연한 권리마저 빼앗기기 십상이다. 건설현장에서 유급휴일, 주휴수당은 딴 나라 얘기다. 배관공으로 40년 넘게 잔뼈가 굵은 전영오(58)씨는 “주 5일 이상 일하면 받는 주휴수당이라는 게 있는지조차 몰랐다”며 “당연히 그런 걸 받아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는 사실상 일당에 수당이 포함된 것으로 간주해 지급하는 포괄임금제가 건설현장에서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는 탓이다.


이렇다보니 건설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노가다’, ‘막노동’에 머물고, 직업인으로서의 위상은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로 인한 가장 큰 문제는 신규 인력, 특히 청년 유입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건설현장에는 50대 이상이 절반 이상(51.8%)을 차지한다. 20대는 5.7%에 불과하다. 부족한 자리는 외국인 노동자가 채우고 있다. 건설기능인력 10명 중 2명은 외국인노동자로 매년 늘고 있다.


김재겸 서울시 건설혁신과장은 “건설 일자리에 대한 획기적인 혁신방안을 마련해 젊은이를 끌어들이고, 이들을 숙련된 기능공으로 키워야 건설업도 살릴 수 있다”며 “한강의 기적을 일군 건설업은 실제로도 고용효과가 큰 대표적인 서민ㆍ지역 일자리”라고 강조했다. 서울시는 이날 ‘건설일자리 혁신 방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관련기사 서울시, 전국 최초 건설노동자 국민연금ㆍ건보료 지원)


일자리 환경 개선과 사회보장 강화를 통해 건설일자리를 양질의 일자리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조은석 민주노총 건설노조 정책국장은 “일당을 주급제로 바꾸고, 주휴수당을 보장하는 것 등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임금이 하도급 단계를 거치면서 깎이지 않도록 발주자가 정한 금액 이상으로 임금을 보장하는 적정임금제가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영은 기자 you@hankookilbo.com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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