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의 학습 [홍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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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서의 학습

2020.05.27

오래전부터 기업에서 관심을 가진 경영 기법 가운데 학습조직과 지식경영이 있습니다. 조직 안에서 사업 능력과 지식을 개발하고 축적하며 공유하는 일을 어떻게 잘 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일컫는 말입니다. 이론을 개발한 이도 있고 컨설팅을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조직 안에서의 학습에 관한 독특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 다니던 회사에서 사내 컨설턴트 팀을 이끌었습니다. 이 팀은 각 부문에서 꾸린 문제해결팀을 지원하였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회사가 셋으로 분할되었지만 당시에는 꽤나 많은 종류의 사업이 있었으니 문제해결팀이 담당한 문제도 다양했습니다.
사업별로 중요도 높은 문제를 선정하고 젊은 인재들을 선발하여 태스크 포스를 만들고 이 팀이 몇 달 동안 그 문제에만 매달려 해결하게 하였습니다. 해당 사업부에서 몇 해에 걸쳐서 애썼지만 해결책을 얻지 못한 품질 문제라든지, 어렵사리 신제품을 개발했는데 품질과 비용 양면에 문제가 있어 적자만 쌓인다든지 하는 일은 흔한 문제였습니다. 계절에 따라 새 디자인을 내놓는데 실패하는 디자인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팀도 있었고, 새로 출시하는 브랜드를 확실히 성공시키라는 과제를 맡은 팀도 있었습니다. 생산 현장 인력의 능력을 높이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과제도 있었습니다.

문제들은 난이도가 높았습니다. 컨설턴트팀이 지원을 시작할 때는 실패할 팀도 많으리라고 생각했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대부분의 팀들이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성과의 크기가 기대 이상으로 컸습니다. 회사의 공식 척도는 없었지만 몇몇 뜻있는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문제해결팀이 달성한 연간 이익 향상 금액이 팀원 연봉의 합계액 정도가 되면 성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 성과가 매년 반복해서 실현될 테니까요.
실제로 팀들은 그보다 더 높은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팀 수의 변화가 그 성과를 반영하는 한 현상이었습니다. 지원팀이 출범한 첫해에는 문제해결팀이 20개였는데, 다음 해에는 65개 팀이 결성되었고 3차년도에는 100개가 훨씬 넘는 팀이 활동했습니다. 사업부장(임원)들이 사업 성과를 높이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게 되니 그랬습니다.

팀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를 첫해 연말 지원팀의 워크숍에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처음부터 성공 조건으로 강조한 것이었지만 실행하면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이었습니다.
문제해결팀은 글자 그대로 태스크 포스였습니다. ‘백마고지 3용사’로 대표되는 군대의 특공대 같은 것이지요. 팀에게는 단 한 가지의 해결해야 할 과제만 주어집니다. 그리고 소요되는 자원은 가능한 한 다 제공받습니다. 문제와 관련되는 부서 사람의 팀원 참여, 필요 장비와 예산, 관련 부문의 협조 등이 그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불필요한 제약 조건은 모두 제거됩니다. 대표적으로 근태 규칙 지키기나 의례적인 회의 참석 의무에서 면제됩니다. 이런 환경 조건이 팀으로 하여금 주어진 문제에 몰입하게 해 주었습니다. 조직이 확실한 성과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팀이 성공하는 데에는 다른 요인도 있었습니다. 흔히 말하는 ‘기본 충실’과 ‘고객 중심’이 그것입니다. 팀에게는 초기에 ‘문제해결 과정’의 교육을 하였습니다. 그 과정의 앞부분은 문제 정의를 확인하고 원인 분석을 하는 게 골자입니다.
어떤 팀은 성과에 대한 조급증으로 분석 단계를 대충 하고 지났다가 지원팀의 조언을 받아 앞 단계로 돌아가 분석을 보완하면서 새로운 발견을 하였습니다. 어떤 팀은 디자인에 창의성 외에도 고객 선호도를 충실히 반영해야 한다고 믿고 그대로 행동하여 히트 디자인을 여러 개 만들어냈습니다.
그 팀의 리더는 나중에 전 임원과 관심 있는 사원들이 참석하는 성과 발표회에서 이렇게 외쳐서 큰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성공 요인은 철저히 고객이 좋아하는 디자인을 확인하고 실행한 것입니다. 과거에는 한 번도 시장에 나가서 제품을 사지 않는 상무님이나 전무님이 최종 선택을 하여서 실패율이 높았습니다.” 머릿속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문제해결 행동을 통해 그들은 성과를 높이는 방법을 깨우쳤습니다.

지원팀의 연말 워크숍에서 내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한 해 동안 문제해결팀들이 거둔 성과는 기술 혁신으로 이룬 것이 아니라 기본 충실로 얻은 것입니다. 과장해서 비유한다면, 과거에 우리가 회사 바닥에, 그리고 영업사원들이 고객을 방문하는 길바닥에 깔아놓고 밟고 다니던 돈을 이제 줍기 시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말에 지원팀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나타냈습니다. 건질 것이 아직 많다는 뜻이기도 했습니다.

모두 실행하면서 깨우친 것들입니다. 무척 어려운 과제를 해결한 문제해결팀에게는 다른 종류의 학습도 있었습니다. 팀 활동을 마친 이들을 만나 소감을 듣곤 했습니다. 가장 자주 들은 말이 이랬습니다. “지난 몇 달 사이에 과거 몇 해 동안의 그것보다 훨씬 더 높게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걸 자각한다.” 이보다 더 효과적인 학습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해결팀에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한 지원팀원들도 배웠습니다. 현장 팀들과 같이 일했으니까요. 이것 말고도 있습니다. 시작할 때는 문제해결팀과 같이 외부에서 문제해결 교육을 받았습니다. 한 해 경험하고 나더니 연말의 워크숍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고 스스로 강사로 나서자고 결론을 내어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이 프로그램 만들기는 지원팀 내부에서 격렬한* 논의 과정을 거치면서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팀 리더인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훌륭한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언젠가 한 방송 드라마가 신입 기자들의 현장 연수를 소재로 다룬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실제 기자들이 거치는 과정이라고 들었습니다. 드라마 속 신입 기자들의 행동을 보며 회사에서 팀 활동을 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연상하였습니다. 퇴근 시각도 애매한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기삿거리를 발견할지 고심하며 종횡무진 뛰는 그들이 기자의 능력을 매우 빠른 속도로 체득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의실에 모여서 몇 달을 배운다 한들 그런 현장 능력을 터득할 수는 없을 것이니까요.

팀을 지원하던 시기에 책 하나를 접했습니다. 존 카첸바크가 쓴 『Wisdom of Teams』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팀의 의미와 팀 만들기, 잠재력 높이기에 대해서 말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흥분을 느꼈습니다. 체험하고 있던 팀 활동의 현상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이어서 그랬습니다. 자신의 경험에서 얻은 지식이나 생각을 똑같이 말하는 사람을 만난 기쁨은 말로 하기 어려울 만큼 컸습니다.
책에서 말하는 팀의 요소만 소개해 보겠습니다. 저자는 팀다운 팀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합니다. 성과를 얻기 위한 ‘능력’(문제해결, 기능/기술, 대인 관계), ‘책임 의식’(팀원 간, 소수정예, 개인별), ‘몰입’(특정 목표, 공동의 어프로치, 의미 있는 목적)을 제시합니다. 팀의 성과에도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합니다. 확실한 ‘성과’를 얻으며 그 성과가 ‘공동 작업의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 ‘개인의 성장’이 수반된다고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있었으니 이 책만큼 많은 배움을 얻은 책은 없습니다.

이 모든 학습은 어떤 교육 프로그램보다 강렬했습니다. 기회만 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팀 활동을 전했습니다. 관련 있는 지식이나 도구도 곁들여 보았습니다. 모델화한 프로그램을 통해 개인이 홀로 일하는 것보다 팀으로 일할 때 시너지가 난다는 것을 체험하게 해 보는 것입니다. 나중에 인적 자원이 부족한 중소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일할 때도 팀을 만들어 이노베이션을 실현하는 경험을 했습니다.

학습은 기업이 상대적으로 늦게 도입한 언어입니다. 그전에는 교육이나 훈련이란 개념만이 있었습니다. 각 구성원이 주도하는 능력 향상을 강조하면서 학습이란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경영자들이나 능력 개발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은 종종 잘못을 저지릅니다. OJT(On-the-Job Training, 현장학습)나 액션 러닝(일하면서 배우기)이라는 제목이 달린 프로그램에서조차 별도의 연수 장소에(off the job) 사람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일이 그 예입니다.

기업에서 학습의 패러다임이 변해야 한다는 논의는 오래 전부터 있었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잘 실행하고 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인재 육성 프로그램에 물적 자원을 적게 투입하고도 사업 성과는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 초기 회의에서 교재의 목차를 정한 다음 개인들이 작성할 교재 내용을 분담합니다. 다음 회의에서는 각 개인이 만들어 온 교재 내용에 대해 나머지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비판을 가합니다. 이 비판에서 살아남으면(작성자가 공격자를 납득시키면) 원래의 안을 통과시킵니다. 그렇지 못하면 논의를 통해 내용을 바꾸거나 결론 나지 않은 부분을 담당자가 다시 작성해서 다음 논의에서 다룹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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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홍승철

고려대 경영학과 졸. 엘지화학에서 경영기획 및 혁신, 적자사업 회생활동 등을 함. 1인기업 다온컨설팅을 창립, 회사원들 대상 강의와 중소기업 컨설팅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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