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축이 우등생을 만든다" ㅣ 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한은화의 생활건축] 좋은 건축이 우등생을 만든다


    사람이 공간을 만들지만, 공간은 되려 사람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 힘은 꽤 세다. 2013년 영국 샐퍼드대 교수진이 국제저널(SCIE) ‘건축과 환경(Building and Environment)’에 등재한 연구 결과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학교 건물과 학습률의 상관관계를 연구했다. 일명 신경건축학의 영역이다. 건축이 얼마나 우리 신경에 영향을 미치는지, 즉 학교 건물이 학생들의 학습 성취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영국 내 7개 학교, 34개 교실에서 학생 751명을 대상으로 디자인이 학습 진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 학습 진도 차이가 평균 25%가량 벌어졌다. 디자인이 가장 뛰어난 교실과 엉망인 교실에서 공부한 학생의 학습 진도 차이는 일반적인 학생이 한 학년 동안 공부하는 양에 달했다.


서울의 한 학교 교실의 모습. 반세기 넘게 그대로다. [연합뉴스]




머리 위에 직접 조명이 있고 장판 바닥에 철제 의자가 있는 교실을 쓰는 학생은 집처럼 안락한 교실을 쓰는 학생보다 수업 참여도가 낮았다. 학습량도 적었다. 반세기 동안 좀처럼 바뀌지 않는 한국의 교실을 돌아보게 한다. 여전히 ‘판옵티콘’처럼 딱딱한 교실에서 아이들은 감시당하며 공부한다. 이 사례를 저서 『공간 혁명』에 인용한 미국 건축평론가 세라 윌리엄스 골드헤이건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성인이 되도록 돕는 시설을 만들면서 학습 환경 디자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중요성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한 반복되는 건축 환경적 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스스로 건축하지 않더라도, 사람은 살면서 늘 건축을 경험한다. 공공건축물만 해도 한 해 12만 채 넘게 지어진다. 공사비만 26조5700억원(통계청·2016년 기준)에 달한다. 민간을 아울러 건축 산업으로 봤을 때 그 규모는 더 크다.

 

건축 관련 정책 마련과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가 응당 필요하다. 프랑스·캐나다·일본 등 선진국들은 이미 1940년대부터 도시 및 건축 관련 국책 연구기관을 뒀다. 한국은?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정부 출연 연구기관 등의 설립·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통과됐다. 24번째 정부 출연 연구기관으로, ‘건축 도시 공간연구원’이 첫발을 내딛게 됐다. 2007년 국무총리실 산하 국토연구원의 부설 연구소로 출발했던 건축 도시 공간연구소가 13년 만에 독립 연구기관으로 승격했다.




연구기관 하나로 뭐가 달라지겠느냐 싶겠지만, 중요성을 알게 됐다는 것만으로 변화는 시작됐다. 건축은 가깝고, 생활 속에 늘 있다. 관심을 가져야 우리 삶이 달라질 수 있다.

한은화 건설부동산팀 기자 중앙일보


[이 사람이 읽는 법]건축에 관심이 있다면


     10년 전 독자 2명이 기사에 대해 항의할 것이 있다며 회사를 찾아왔다. 회의실에 마주 앉아 까닭을 물었다. 전날 게재된 기사에서 다룬 건물의 소유주들이었다. 그들은 “이 건물을 디자인한 건 우리인데 왜 우리 허락도 없이 건축가의 이름만 기사에 냈느냐”고 말했다. 항의는 당연히 수용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5년 후 한 선배가 “건축을 잘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데 소개해주고 싶다”며 회사 근처 한 건물 식당을 알려줬다. 찾아가 보니 잊고 있던 그 건물과 그 사람들이었다. 선배에게 예전 일을 설명하고 빠져나왔다. 일로 인해 맺은 수많은 만남 중 가장 불쾌했던 만남이다.


건축을 향하여/르코르뷔지에 지음·이관석 옮김/299쪽·2만 원·동녘




스스로 ‘건축을 좋아한다, 관심이 많다’고 하는 사람을 이따금 만난다. 그에게 건축가 르코르뷔지에(1887∼1965)를 아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이 책을 읽은 사람의 수는, 르코르뷔지에가 설계한 유명 건축물인 프랑스 롱샹 예배당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사람 수보다 적을 것이 틀림없다.


2002년에 번역본 1쇄가 나온 이 책을 지금 글로 소개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다. 육중한 고전을 굳이 읽지 않아도 충분히 읽은 척할 수 있게 해 주는 가뿐한 책들이 효용을 겨루며 출간되는 세상에서, 55년 전 세상을 떠난 건축가가 남긴 책에 대해 이야기하다니. 그럼에도 쓸모없는 글이 될 가능성은 낮으리라 생각한다. 공자가 누군지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논어를 읽어본 사람도 그만큼 드물 것이다.


“건축은 숙련된 기술을 활용해서 볼륨을 빛 아래에 정확하고 장엄하게 모으는 작업이다. 건축가의 과업은 볼륨을 감싸는 표면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볼륨을 잠식하고 흡수해 스스로 우위를 차지하는 기생충 같은 표면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전도된 상황이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슬픈 현실이다.”


건축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다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건축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았느냐고. 공모전을 주최한 공공기관이 제한 조건을 미리 파악하지 않은 탓으로 인해 당선 후에 통째로 다시 새로운 설계를 해야 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여전히 발생한다. 공모전 담당자가 예나 지금이나 ‘건축가는 그렇게 대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상가가 자신만의 문법을 지니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건축가는 건설에 능통해야 한다. 건설은 문법보다 어렵고 복잡한 과학이므로 건축가는 오랜 시간 거기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그 수준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주택의 평면, 입체, 표면의 일부는 실용적 자료에 의해, 다른 일부는 상상력과 조형적 창조에 의해 결정된다.”


재미있는 책은 아니다. 구입이나 완독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자신의 건물을 지을 예정이거나 설계경기 진행을 맡았다면, 그저 서점을 잠시 방문해 이 책과 주변의 다른 건축 관련 책들을 대강이라도 훑어주길 부탁하고 싶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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