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그늘에 대한 노래 [허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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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그늘에 대한 노래

2020.05.14

경제나 군사력에서 세계 최강국 미국이 코비드-19 대응에서 보인 난맥상은 어처구니없었습니다. 바이러스 확산을 처음 겪은 나라들에 비해 한 달 넘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음에도 대비가 미흡한 탓에 바이러스 감염 희생자가 많이 발생했습니다. 이들 가운데는 여러 분야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4월 초에 사망한 컨트리 음악 가수인 존 프라인(John Prine, 1946년 생)이 그중 한 명인데 한국에서는 좀 생소하지만 미국 내에서 잘 알려진 음악가입니다.

컨트리 음악은 미국 남부 및 중서부 농촌 지역 백인들 가운데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만 젊은 사람, 도시적 취향인 사람들과 거리가 있는 장르입니다. 하지만 노래에 따라 장르에 대한 호불호의 경계를 넘어 널리 사랑받습니다. 존 프라인의 노래들이 이 경우에 해당됩니다. 지난 반세기 미국 대중음악의 지주인 밥 딜란이 그의 노래를 좋아했고, 19세기 미국 시대상을 잘 그려낸 촌철의 소설가 마크 트윈에 비교되기도 합니다. 왜 그런 평가를 받는지 이해를 돕기 위해 그의 노래 두 곡을 소개합니다.

‘Sam Stone,’ 모르핀에 중독되어 돌아온 참전 용사
첫 번째 노래 제목 샘 스톤은 노래 주인공의 이름입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강한 국가는 전쟁을 불사했고, 20세기부터 지금까지 세계 패권국 지위를 지켜온 미국도 마찬가지이죠. 식민지 상전 영국과의 독립 전쟁을 통해 국가로 탄생한 것이 3백 년도 되지 않았는데, 그동안 국익을 위해 숱한 무력충돌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누가 추상적 인격체 나라가 결정한 전쟁에서 희생하는지 일정치 않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까지 대체로 다양한 사회적 계층 구분 없이 참전했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19세기 말 스페인과의 전쟁에 참전한 26대), 존 F 케네디(35대), 조지 부시(41대)는 본인들이 실전에 참전했던 미국 대통령들입니다. 근래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던 밥 돌, 존 케리, 존 매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26대 대통령 루스벨트의 아들과 존 F 케네디의 형은 2차 대전 때 전사했습니다. 제정 로마 시대에 귀족 가문 남자들이 다 전사하여 대가 끊긴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예로 자주 쓰이곤 하지요.

하지만 베트남 전쟁부터는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희생이 큰 전쟁이었습니다. 추첨에 의한 징병제가 실시되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나 빌 클린턴 전직 대통령의 경우처럼 부유한 가정, 요령이 좋은 남자들은 피해갈 길이 있었지요. 5만 8천 명이 넘는 베트남전 전사자들의 출신지 자료를 검토한 연구들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저소득 지역 출신 비중이 더 높았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참전한 명분이나 목표가 불분명해 상당히 반대가 많았습니다. 청년들의 기성세대에 대한 반발과 반전 운동으로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거세던 1971년에 참전 용사의 비극을 그린 프라인의 노래는 빠르게 알려지며 그는 단숨에 유명 가수가 되었습니다.

노래는 잔잔히 해외 전쟁에 참전했다 가족에게로 돌아온 샘 스톤에 대해 들려줍니다. 훈장까지 받았지만 그는 무릎에 파편이 박히는 부상, 그리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인해 모르핀 중독자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비싼 마약 중독 때문에 가정의 사정이 어려워지고 심지어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도독질하게 됩니다. 결국 마약 과다 투여로 사망하고 장례비를 마련하기 위해 제대군인 대출로 샀던 집까지 넘어갑니다.

Sam Stone came home/ To the wife and family/
After serving in the conflict overseas/
And the time that he served/ Had shattered all his nerves/
And left a little shrapnel in his knees./ But the morhpine
eased the pain/ And the grass grew round his brain/
And gave him all the confidence he lacked/
....
There was nothing to be done/ But trade his house that he bought on the GI bill/ For a flag-draped casket on a local hero's hill....

노랫말 중에 “아빠의 팔에는 돈을 먹는 구멍이 있단다/ 예수 그리스도는 쓸데없이 죽었나 보다 ” (There's a hole in daddy's arm where all the money goes/ Jesus christ died for nothin' I suppose)과 같은 가사는 왜 이 조용한 기타 반주의 노래가 헤비급 권투선수 펀치의 충격을 주었는지 알게 해줍니다.

‘Hello in there,’ 간단한 인사말이 그리운 노인들
두 번째는 쓸쓸히 늙어가는 노인들에 대한 노래입니다. 역시 1971년에 발표되었는데 당시 20대 중반의 청년이었던 프라인이 노인의 애환을 애틋이 그린 것은 참 특이합니다. 더욱이 ‘30세를 넘은 사람은 믿지 말라!’라는 것이 청년들의 구호였던 때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시류에 상관없이 그는 어려운 사람을 배려하는 심성이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죤 바에즈(Joan Baez) 등 여러 유명 가수들도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에 흐르는 세월에 대한 한탄과 적적함은 한국이나 중국의 옛 시를 연상시킵니다. 세 명의 자식이 있으나 하나는 멀리 살고, 하나는 어디 있는지 모르고, 다른 아들을 한국전에서 잃은 늙은 부부는 멍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더 튼튼해지고, 강은 날이 갈수록 점점 넓어지지만, 사람은 늙어갈수록 더 외로워져 어쩌다 지나가는 사람이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건네지나 않을까 기다리고 있네.”

You know that old trees just grow stronger/
And old rivers grow wider everyday/
And old people just grow lonesome/
Waiting for someone to say Hello in there, hello.

청년 프라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합니다, “길을 가다 오래된 멍한 눈을 보면, 그냥 무심히 보며 지나치지 말고, ‘안녕하세요’ 하고 말을 거세요.”

If you're out walking down the streets of town/
And spot some hollow ancient eyes/
Well please just don't pass them by and stare/
As if you didn't care/ Say hello in there, hello.

지금도 미국은 해외에서 전쟁을 이어가고 있고, 많은 참전 군인들이 민간으로 돌아온 후 마약에 중독되거나, 자살을 선택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합니다. 전에 이 칼럼(‘21세기판 아편전쟁’ 2019년 1월 15일)에서 다루었듯이 미국 내 치명적 마약의 확산과 중독에 의한 사망자 급증은 심각한 사회적 문제이지요. 소득 불평등이 더 악화되고 있고, 인종갈등과 같은 심각한 문제들이 여전하고 개선되는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아울러 현재 8만 명에 가까운 코비드-19 사망자 가운데 약 3분의 1 정도가 요양보호시설의 노인들이라고 하니 프라인이 노인들을 측은히 여겼던 일이 새삼스럽습니다.

21세기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미국은 9/11, 2008년 금융위기, 그리고 최근 코비드-19 대유행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바이러스 위기는 더 커졌습니다. 심각한 내부적 문제는 등한시한 채 인종적 편견과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피해자라는 선동으로 집권한 세력들의 국가 운영 역량이 크게 모자란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세계 질서가 혼란스러워 구심점이 절실한 요즘 휘청거리는 제국의 모습과 그 그늘에 대한 노래가 더 구슬프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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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프라인, LA Times 사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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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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