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골프장에선 무슨 일이... "전례 없는 황당하고 무서운 일"

마른 하늘에서 총알이 떨어졌다, 담양 골프장 무슨 일이


총탄 날아든 골프장 가보니
‘살상거리’ 벗어난 총알... 피해자 목숨 건져
“거동·대화 정상이지만 극도의 불안증세 호소”
육군 “사고원인 파악 4주, 피해자 보상 검토”
담양군 “주민·관광객 불안, 사격장 영구 폐쇄하라”



    지난달 23일 전남 담양군 한 골프장의 ‘마른 하늘에서 날벼락’이 떨어졌다. 여성 경기보조원(캐디)이 피격된 것이다. 머리에 중상을 입은 캐디는 탄알 제거 수술을 받았다. 골프장에 총알이 날아들어 사람이 다친 것은 국내에서 전례가 없는 일이다.

군기강 해이...점검 해봐야
(애스앤에스편집자주)


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조모(26)씨는 광주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했다가 A대학병원으로 옮겨져 입원 중이다. 건강 상태를 지근에서 확인했다는 한 관계자는 “조씨는 극도의 불안 증세를 호소하고 있다”며 “말하고 걷고 음식은 먹지만 총상을 입었다는 충격 탓에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돼 있다. 당분간 정상생활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찾은 담양의 그 골프장은 성수기를 맞아 이용객이 만원이었다. 엿새 전의 피격 사고를 딛고 정상 영업을 하고 있었다. 골프장 측은 “워낙 황당한 사고라 이용객들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며 “4~6월 최대 성수기를 맞아 평일에도 골퍼가 많다”고 말했다.

시골의 산중 골프장에선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사고 당일 오후 4시 40분쯤 이 골프장 16번홀에서 골퍼 4명과 동반하던 캐디 조씨가 ‘악’ 소리를 지르고 주저앉았다. 정신을 잃을 정도의 충격은 아니었다. 하지만 심한 두통이 몰려왔다고 한다. 당시 골프를 친 사람들은 “총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골프장에서 종종 일어나는 골프공 강타 사고로 여겨졌다.

챙이 넓은 천 재질의 모자를 쓴 조씨의 후두부에선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천을 뚫고 정수리 왼쪽 부분에 상처를 냈으나 타격한 물체는 보이지 않았다. 머리를 때렸을 만한 골프공이 주변에 없었던 것이다. 곧바로 119 응급차로 골프장에서 30분쯤 떨어진 광주의 한 병원으로 후송된 조씨는 병원 측으로부터 대학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1차 진단을 받았다.



저녁 무렵 광주 B대학병원에서 CT촬영 결과 조씨 머리에서 이상한 물체가 발견됐다. 머리를 수술했더니 5.56㎜ 크기의 소총탄 탄두가 나왔다. 골프장에서 총상 환자가 발생하자 의료진은 크게 술렁였다. 조씨도 자신의 머리에서 총알이 나오자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당일 오전 9시 40분부터 오후 4시 40분까지 육군 한 부대에서 개인화기 사격이 있었다. 몇 명이 몇 발을 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장병들이 사격 훈련에 동원한 무기는 K-1, K-2 소총으로 확인됐다. 이 소총은 5.56㎜ 크기의 탄두를 사용한다. 대부분 장병은 K-2 자동소총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육군 사격장은 사고가 난 야산 정상부에 위치한 골프장 16번홀과 직선으로 1700m가량 떨어져 있다. 정황상 사격장에서 오발한 총알이 골프장에 날아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 육군본부는 “조씨 머리에서 나온 탄두와 우리 사격장의 탄두가 같은 것인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밀 감식으로 확인해 봐야 한다”며 “감식 결과는 4주 후에 나온다. 그때 사고 원인 파악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총탄이 날아들어 캐디가 머리에 중상을 입은 전남 담양의 골프장./조홍복 기자
조씨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도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것은 “천우신조로밖에 해석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육군본부는 “K-2 소총의 살상 ‘유효사거리’와 ‘최대사거리’를 감안하면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탄두는 조씨 머리에 얕은 깊이로 박힌 것으로 알려졌다. 머리 피부의 표피층을 뚫고 진피층만 손상을 입혔고, 머리뼈에 닿지 않은 것이다. 이 때문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고 한다. K-2 소총은 적을 살상하는 최대 사거리가 600~800m에 달한다. 골프장과 사격장이 직선으로 1700m가 떨어져 있어 만에 하나 골프장에서 누군가 총을 맞더라도 치명상을 입을 확률이 적다는 뜻이다. 최대 사거리는 3300m. 육군 측은 “총알은 멀리 날아가면 갈수록 운동에너지가 감소해 살상력이 그만큼 떨어진다”고 말했다.

육군 부대의 사격 안전 조치는 도마에 올랐다. 개장한 지 12년 된 사고 골프장에서 줄곧 일했다는 한 직원은 “12년 동안 한 번도 군부대의 사격 경고 사이렌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부 캐디 등은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장 한 간부는 “건물 안에 있으면 바깥 사이렌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조사했더니 일부 직원이 야외에서 ‘사격 경고 사이렌 소리를 들었다’고 증언했다”고 말했다.

육군본부는 “해당 부대가 민간인을 상대로 사격장 안전 조치를 제대로 이행했는지 철저하게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육군본부는 사고 당일 문제의 해당 사격장을 긴급 폐쇄했다. 육군 측은 “조사 결과 조씨가 우리의 과실로 피해를 본 것이 입증되면 그에 맞는 적절한 보상 절차를 밟겠다”고 말했다.


디음뉴스
edited by kcontents

 


사격장 소음 피해로 평소 민원이 쏟아져 벼르고 있던 담양군은 부대 사격장 총기 사고로 인한 인명 피해 재발 방지 명분으로 ‘사격장 영구 폐쇄 카드’를 꺼내들었다. 담양군은 “사격장이 마을과 가까워 사격훈련이 있을 때마다 소음에 따른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이 많았다. 사격장을 영구히 페쇄해 달라고 군 측에 요구했다”며 “관광객에게도 불안감을 주고 있어 담양관광 산업에도 악영향을 끼쳐왔다”고 말했다.

담양군에 따르면 육군은 1983년 해당 사격장 운영을 시작했다. 2017년 사격장 근처에 대형수송부대가 들어서자 두 부대가 공용으로 사격장을 이용 중이다. 두 부대가 한 사격장을 함께 사용하니 사격 훈련 소음이 덩달아 증가한 것이다.

군부대는 진퇴양난이다. 부대가 들어설 당시 제한거리 주변에는 민가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점차 지역 개발이 본격화하면서 사격장 주변을 관광시설과 골프장, 전원주택 등이 에워싸고 말았다. 담양군은 “영구 폐쇄 조치가 불가하면 실내 돔형 방어막 등 시설 안전장치를 보강해야 한다”며 “안전 시설이 개선될 때까지 사격장을 전면 폐쇄해 줄 것을 국방부, 육군본부, 해당 부대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조홍복 기자 조선일보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