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에서 ‘마마병’을 다시 보다 [이성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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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에서 ‘마마병’을 다시 보다

2020.05.01

근래 온 나라가, 그리고 온 세계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이라는 역병(疫病)의 급습으로 크게 당혹해하고 있습니다. 전에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상황이 갑자기 우리의 생활권을 그저 경악할 정도로 흔들어놓고 말았습니다. 문학 소설이나 전문 의학 서적에서 간접 경험한 ‘전염병’이 우리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크게 위협하는 현실을 직·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습니다. 정녕 놀랍고 무섭기까지 합니다.

‘대형 전염성 질환’ 하면 우선 ‘페스트(Pest)’가 자연스레 떠오릅니다. 기록에 의하면 "5년 만에 유럽 인구의 4분지 1 내지 3분의 1이 이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했고, 시신들 대부분은 전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불에 태워지거나 구덩이에 한꺼번에 파묻혔다." (<Wie Krankheiten Geschichte Machen>, R.D. Gerste, 2019).

유럽에서는 지금도 대화하던 사람이 가벼운 기침을 하면 “건강하세요[Good health(英) / Gesundheit(獨)]”, “신의 가호가 있기를(Bless you / Sei gesegnet)”, 이라는 인사를 반사적으로 건네곤 합니다. 이는 페스트가 창궐할 당시 환자의 첫 임상 증상이 ‘기침’이었기 때문입니다. 6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역사의 상흔(傷痕)’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페스트가 얼마나 무섭게 유럽 사회에 창궐했었는지를 짐작케 됩니다. (https://praxistipps.focus.de)

‘질병과 언어’라는 측면에서 돌아보면 우리 생활 언어에도 질병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얼굴이 심하게 얽은 사람을 낮잡아 부를 때 우리는 흔히 ‘곰보’라는 단어를 씁니다. 이는 ‘천연두(天然痘)’, ‘마마(媽媽)’, ‘두창(痘瘡)’, ‘Small pox’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질병의 흔적인데, 여기엔 ‘손님 병’이라는 순수 ‘국산(國産)’ 병명도 있습니다. 참 별난 병명이라 그 어원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필자가 피부과학 전공자로서 ‘한국 탈과 조선 시대 초상화에 나타난 피부질환’에 관심을 갖고 연관 자료를 찾을 즈음 왜, 그리고 어떻게 ‘손님 병’이라는 병명이 생겼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인의 의식구조》라는 방대한 저서를 통해 한국인의 감정과 사고방식 등 우리네 생활 속에 스며 있는 고유의 정서와 생활 문화를 파헤친 이규태(李奎泰, 전 조선일보 주필, 1933~2006) 선생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필자는 유선상으로 “천연두, 또는 마마라는 병명을 가진 피부질환의 병명이 어떻게 ‘손님 병’이라는 별칭을 얻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했습니다.

선생의 답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마마병은 강남(중국)에서 도래한 외래 질병으로, 성별(性別)로 볼 때 유일하게 국내 질병 중 유일하게 여성인데 시기심이 아주 강한 게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마마의 한자 표기 ‘媽媽’가 어머니, 할머니 등 여자를 통칭하는 것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특히 아름다운 여인네의 곱디고운 얼굴을 할퀸 흉한 곰보 자국은 여인에게 평생의 한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먼 마을에서 역병(疫病)이 돈다고 하면, 우선 크고 작은 모든 행사를 취소했습니다. 특히 젊은 여인네들은 의복도 소박한 것으로 입고, 언행도 조신(操身)하게 하면서 온 가족이, 온 마을이 조용히 지냈습니다. 이렇게 ‘손님을 깍듯이 모신다’고 하여 ‘손님 병’이라는 별칭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현대판’ 페스트인 ‘COVID-19’와 지금은 전 세계에서 소멸한 마마병을 예방의학적 시각에서 고찰하면 유사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예컨대 그 옛날 페스트의 경우 사람들 간의 배려 및 ‘예(禮)’의 범주 안에서 수동적인 예방의학적 측면을 보였다면, ‘손님 병’의 경우는 우리 선조들이 지금의 ‘자가 격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ing)’ 같은 현대의학의 첨단 예방 조치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통영 오광대(五廣大)에 등장하는 손님탈에 천연두 자국이 묘사되어 있다

작금에 우리 사회가 보여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관련 대처 방안과 그 결과는 아마도 우리 역사의 시·공간에서 배어난 우리 고유 DNA의 또 다른 표출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지 아니하고서는 오늘 ‘코로나’를 둘러싸고 우리 사회가 보인 ‘기현상’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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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이성낙

뮌헨의과대 졸업. 프랑크푸르트대 피부과학 교수, 연세대 의대 교수, 아주대 의무부총장 역임.
현재 가천대 명예총장, 전 한국의ㆍ약사평론가회 회장, 전 (사)현대미술관회 회장,
(재)간송미술문화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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