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불냈습니까?" ㅣ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유가족들 오열·절규

"안전수칙 다 지키는 데 어딨나, 건설현장선 다들 그렇게 한다"

이천 물류창고 시공사측 항변
6차례 화재위험 지적받았지만… 정부, 업체 말만 믿고 넘어가

   "내가 불냈습니까?" "안전 수칙 다 지키는 건설 현장이 어디 있습니까?"

30일 새벽 4시쯤 경찰 조사를 마치고 나온 건설 업체 '건우'의 현장 안전책임 담당자는 '혐의를 인정했느냐' '안전 수칙은 다 지킨 거냐'는 본지 질문에 이렇게 항변했다. 건우는 전날 화재 참사가 벌어진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의 시공사다. 이 책임자는 "솔직히 건설 현장에서 그런 거 다 지키는 곳이 어디 있느냐. 다들 그렇게 한다"고 했다.

왜 시공사에만 
근무 태만 감독청, 감리사 책임 물어야
(에스앤에스편집자주)

29일 오후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물류창고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 늦은 시간까지 현장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2020.4.29/뉴스1 © News1



실제로 안전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도 공사엔 별 지장이 없다.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국회의원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사고가 난 이천 물류창고 공사 현장은 작년 4월 착공 이후 6회에 걸쳐 화재 사고 가능성에 대한 지적을 받았다. 지난달 16일에도 공단은 해당 현장을 가장 위험한 단계인 '위험도 1등급'으로 판정하면서 '날리는 불꽃에 의해 화재가 일어날 수 있음에 주의하라'고 했다. 하지만 업체가 '주의하고 있음'을 인증하는 사진을 찍어 보내면 공단은 '합격' 판정을 내려줬다. 결국 이 현장에서는 38명이 숨지는 화재가 발생했는데, 그 화재 원인이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 중 발생한 불꽃'이라고 소방 당국은 추정했다.

공사장 인명 사고에 대한 처벌이 가볍다는 지적도 있다. 2017년 1명이 숨지고 15명이 다친 경기도 광교신도시 오피스텔 신축 공사 현장 화재 사고에서 건설사 안전 담당자들에게 내려진 처벌은 '벌금 400만원'이었다.

"참 허망하네요. 다 날려버렸네." "열심히 하셨는데…."

이천 물류창고 시공사 간부들은 30일 오전 4시 경기 이천경찰서 로비에서 이런 대화를 나눴다. 그다음에야 "몇 명이나 죽었어요?"라는 질문이 나왔다. '사고는 그저 운이 나빴다'는 투로 들렸다.



예견된 참사였다. 화재는 우레탄폼 작업으로 실내에 유증기(기름 섞인 공기)가 가득 찬 상태에서 엘리베이터 설치 작업을 하다가 불꽃이 튀며 발생했다. 이의평 전주대 교수는 "우레탄폼 작업이 벌어지는 실내에서는 쇠에다 망치를 때리는 것만으로 불이 날 수 있다"고 했다.

정부의 관리 부실 책임론도 제기된다. 국회 한정애 의원에 따르면,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이번 공사와 관련해 건설사로부터 분기별 1회씩 총 여섯 차례 계획서를 받고 현장을 점검하면서, 매번 화재 관련 지적 사항을 내놨다. '향후 용접 작업 등 불꽃 비산에 의한 화재 발생 주의' '향후 우레탄폼 패널 작업 시 화재 폭발 위험 주의' 등 내용도 구체적이었다.

하지만 사후 조치는 업체가 찍어 보낸 '인증샷'을 받는 게 전부였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점검에서 공사를 중단시킬 만큼 급박한 위험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했다.



현행법상 대형 공사 현장에는 '산업안전관리자'와 '화재 감시자'를 둬야 하는데, 1명이 겸직해도 문제가 없다. 시공사 측은 "안전관리자가 현장에 상주하고 있었다"고 주장했지만, 현장 근로자들은 "안전관리자도, 화재 감시자도 없었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의평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는 "산업안전관리자는 주로 추락·붕괴를 막는 데 집중하기 때문에, 일본처럼 별도의 화재 감시자를 두도록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무리한 공기(工期) 단축 시도도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교수는 "당시 아홉 팀이 엘리베이터 공정과 우레탄폼 공정 등을 동시에 진행한 걸로 봐서는, 공기 압박이 상당했던 걸로 보인다"고 했다.

시공사가 약속한 기간 내 완공하지 못하면 '지체보상금'을 물어야 하는데, '하루 밀릴 때마다 총 공사 금액 0.3%'가 일반적이다. 단순 계산으로 건우가 공기를 맞추지 못하면 하루 1억8000여만원씩 손해를 보고, 인건비도 추가로 들어가는 것이다.



여기에 비하면 사고가 났을 때 받는 처벌은 가볍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업주가 폭발성·발화성·인화성 물질 등에 대한 사고 예방 조치를 취하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하면 7년 이하 징역형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로 징역형 실형(實刑)이 선고되는 경우는 드물다. 2018년 인천 부평 주상복합건물 신축 공사 안전 담당자는 1명이 숨지고 6명이 다치는 화재가 발생했지만,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징역형 대신 벌금 수백만원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다.

30일 오후 2시쯤 이상섭 건우 대표가 사과를 하고 수습 대책을 논의하겠다며 유족들을 찾았다. 그는 유족 앞에 무릎을 꿇고 흐느끼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한 뒤 단상에서 내려오더니 곧바로 실신했다. 유족들이 그를 둘러싸고 비난을 쏟아냈다. 구급차에 실려간 이 대표는 회사 관계자를 통해 "저녁 8시에 다시 오겠다"고 했지만, 이날 유족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천=이영빈 기자 이천=이기우 기자 조선일보 



이천 물류창고 화재 참사 합동분향소 찾은 유가족들 오열·절규

   38명의 생명을 앗아간 경기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 희생자들의 합동분향소를 찾은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몸부림치며 오열을 했다.

[이천=뉴스핌] 정종일 기자 = 30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유가족이 주저앉아 절규를 하고 있다. 2020.04.30 observer0021@newspim.com [이천=뉴스핌] 정종일 기자



경기도 이천시가 30일 창전동 소재 서희청소년문화센터 실내체육관에 한익스프레스 물류센터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준비했다.

합동분향소를 찾은 유가족은 믿을수 없다는 듯 영정사진을 수차례 다시 보면서 화재 참사로 가족이 떠났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 듯 연거퍼 고개를 저으며 현실이 아니라고 부정했다.

참사로 아들을 잃은 노모는 온몸에 힘이 풀린듯 걸음도 제대로 못 옮기며 바닥에 주저앉아 절규했다.

[이천=뉴스핌] 정종일 기자 =30일 경기도 이천 물류창고 화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유가족이 가족을 잃은 슬픔에 고개를 저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2020.04.30 observer0021@newspim.com

이날 오후 5시 현재 합동분향소에는 사진이 확보된 희생자 24명의 영정사진과 위패가 마련됐으며 나머지 희생자들의 사진도 확보되는 대로 위패와 함께 모실 예정이다.



이천시는 합동분향소 운영에 대한 기간을 정하지 않고 화재참사 관련 상황이 모두 종료될 때까지 운영하며 24시간내내 분향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분향소를 찾으려면 입구에서 코로나19와 관련해 인적사항과 체온검사 및 손소독을 해야하며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가능하다.
[이천=뉴스핌] 정종일 기자 observer0021@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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