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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유감(遺憾)

2020.04.29

필자는 유학생 아들을 둔 아빠입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가 대구를 중심으로 창궐하기 시작했을 때, 아들이 공부하고 있는 미국은 그래도 안전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젠 상황이 완벽하게 역전되어 미국이 코로나19의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그 한가운데에 아들 혼자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미국의 대학들이 모두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어 많은 학생들이 귀국했지만, 인턴과 리서치가 남아있고 인터넷 강의의 시차 문제를 고려해서 남아 있기로 한 것입니다.

미국에선 우리나라의 KF94 마스크를 구하기 어렵습니다. 한국에서 보내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코로나 사태 초기에 마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하면서 해외에 마스크를 보내는 것이 3월 중순까지는 불가능했습니다. 또한, 이번 주부터 5부제가 느슨해져서 등본을 들고 가면 가족 당 3매씩 마스크 구입이 가능해졌지만, 그 동안에는 해외에 나가있는 가족의 마스크를 대신 살 수 없었습니다.

어찌어찌 가족들이 마스크를 아껴서 유학 중인 아들에게 보내려면 우체국의 EMS(Express Mail Service)를 이용해야만 하는데, 이게 참 코미디입니다. EMS는 말 그대로 매우 빠르게 배송되는 서비스입니다. 보통의 경우 사흘이면 배송이 완료됩니다. 그런데 항공 운송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보름이 넘어야 배송이 됩니다. 실제로 4월 16일에 접수한 EMS가 이 글을 쓰는 4월 26일에도 비행기에 실리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마음은 한시라도 빨리 마스크가 도착해서 자식의 안전을 지켜주고 싶은데 상황이 따라주지 않는 겁니다.

자체 화물 항공기를 운용하는 페덱스(FedEx)나 DHL 같은 특송업체를 이용해서 마스크를 보낼 수 있을까? 하고 문의를 해보니 우체국을 제외한 모든 업체의 마스크 배송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우체국에 전화를 했습니다. 질문은 아래 세 가지였습니다.
1. EMS는 우체국 해외 배송 중 가장 빠른 수단인데 왜 늦게 가는 것이냐?
2. 이렇게 늦게 가면서 비싼 특송료(마스크 8매에 운송료 2만 5천원 내외)를 받는 것이 합당한 것이냐?
3. EMS 배송이 보름 이상, 길게는 한 달까지 걸린다면, 우체국에서 마스크 배송 업무를 맡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페덱스나 DHL 같이 현재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업체를 이용할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 아니냐?

1588-1300번인 우체국 콜센터로 전화를 해서 담담하게 질문을 하니, 처음에는 국제우편물류센터 전화번호를 알려줘서 그쪽 직원과 통화를 했습니다. 1번 질문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미국으로 가는 배송 물량은 많은데 현재 비행기 운항 횟수가 줄어서 물류센터에 열흘 이상 대기해야 비행기에 실을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2번 질문은 그쪽 직원은 자신이 대답할 사안이 아니라며 서울청 국제영업과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그쪽 직원과 통화를 했습니다. 여기서는 “배송이 오래 걸린다고 해서 우체국이 부담하는 비용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요금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라는 궤변을 들었습니다. KTX를 타고 부산에 가는데 20시간이 걸렸는데, KTX를 탔으니 KTX요금을 내라는 얘기와 다를 게 뭐가 있을까요? 실제로 KTX는 운행이 지연되면 규정에 따라 환불을 해줍니다. 하지만 그 직원과 이런 문제로 옥신각신 따지고 싶지 않아서 바로 다음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해외로 마스크를 보내는 유일한 방법이 EMS인데, 정상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못한다고 해야, 다른 방법이 생기지 않겠습니까?”라고 물어보자 세종시에 있는 우정사업본부 우편사업단 국제사업과로 문의하라면서 그쪽 전화번호를 알려주었습니다. “EMS로 보내는 데 차질이 있다는 의견을 관계부처에 보냈구요. 우체국 EMS로 마스크를 보내는 결정은 관세청에서 한 겁니다.”
국제사업과 주무관이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관세청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대표번호인 125로 전화를 했더니 상담원이 받습니다. 상황을 설명하자 본청으로 전화를 해서 물어보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 가장 설명을 잘해줄 것 같은 대변인실에 전화를 했습니다. 조목조목 궁금한 것을 물어보자, “어디신가요?”라는 질문이 돌아옵니다. “시민입니다. 해외에 있는 자식에게 마스크를 보내고 싶은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습니다.” 그러자 “지금 EMS가 아닌 페덱스 같은 특송업체로도 보낼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라는 대답을 합니다. 맥이 빠집니다. 그 결정을 내리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리고 아직 확정된 것도 아니구요.

현재 마스크TF라는 것이 구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정사업본부, 관세청, 식약처, 총리실 등 관계부처 국장들이 매주 회의를 통해서 마스크와 관련한 결정을 내리는데 그 결과는 총리에까지 보고된다고 합니다. 그만큼 마스크 공급 문제가 큰 이슈라는 얘기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있는 국민에 대한 배려는 한 달 동안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겁니다. 자식을 생각하는 급한 마음에 페덱스 같은 서비스를 이용해서 내용물을 속이고 마스크를 보내다가 적발되면 필자는 범법자가 됩니다. 그게 싫어서 시간을 쪼개서 이리 알아보고 저리 알아보면서 보낸 시간이 벌써 몇 주가 흘렀습니다. 그사이 아들은 마스크 없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직 건강히 잘 지내고 있지만, 만에 하나라도 무슨 일이 생겼다면 차라리 법을 어기고 말 것을 하는 후회를 했을 겁니다.

애당초 마스크를 우체국 EMS로만 보내자는 결정을 내린 것은 무리한 결정이었습니다. 보통 모든 결정은 플랜A와 플랜B를 같이 마련하는데 왜 이번에는 플랜A만 고집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의 의료시스템과 의료인력의 우수함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공서비스 분야의 민첩한 대응과 신뢰도 역시 다른 나라의 부러움을 살만 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비상시국에 모두를 다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군복부를 마치고 다시 유학길에 올라 한국인의 긍지를 갖고 꿈을 좇아 밤을 낮 삼아 공부하고 있는 자식에게도 자랑스러운 조국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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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상도

SBS 선임 아나운서. 보성고ㆍ 연세대 사회학과 졸. 미 샌프란시스코주립대 언론정보학과 대학원 졸.
현재 SBS 12뉴스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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