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을 읽으며 [임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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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을 읽으며

2020.04.09

요즘 이율곡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율곡 이이(1536~1584)에 관심을 갖게 돼 여러 가지 책을 사고 찾아서 읽는 중입니다.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이 율곡은 우리 역사에 우뚝한 인물입니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로 시작해서 “통촉하소서”로 끝나는 보통 사대부들, 자리나 지키는 구신(具臣)들, 학식과 덕망은 있지만 일을 모르는 선비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율곡이 그 시대에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시무(時務)를 알고, 국가를 경장할 방략을 갖춘 분이라는 점입니다. 성호 이익(1681~1763)이 <성호사설>에서 “조선조 이래로 시무를 알았던 분을 손꼽아 봐도 율곡 이이와 반계 유형원 두 분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 대로입니다.

율곡은 12년이 조금 안 되는 벼슬살이 기간에 임금을 바른길로 이끌어 ‘무너져 가는 집’ 조선을 다시 세우려 진력했고, 동서 붕당을 보합(保合)하려고 애썼습니다. 특히 경제사(經濟司, 기획재정부 같은 기구) 설치, 과세제도와 인사제도 개혁, 서얼 허통책(양반 첩의 자식인 서얼에게 관직을 고루 주자는 정책) 실시, 10만 양병설(지금도 허위라는 사람들이 있지만) 등 현실에 바탕을 둔 구체적 개혁안을 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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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시무(識時務). 시대의 중요한 일을 아는 것. 필자의 졸필.

그러나 선조는 어둡고 우유부단했고, 동과 서로 편이 갈린 사림은 율곡의 말을 받아들이기보다 시비하고 탄핵하기 바빴습니다. 각 단계의 과거에서 아홉 번 장원한 빛나는 경력과, 명민하고 직설적인 율곡의 태도가 질시와 반감을 산 점도 있습니다. 결국 율곡은 큰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한 채 49세로 병사하고 말았습니다. 율곡은 가장 존경했던 정암 조광조(1482~1519)의 묘지명(墓誌銘)을 쓰면서 그의 좌절을 한탄했지만, 자신도 그와 비슷하게 배척당해 꺾이고 말았습니다.

퇴계 이황(1501~1570)과 율곡을 비교해봅니다. 1567년 선조 즉위 직후 퇴계는 예조판서에 임명됐으나 병을 이유로 물러납니다. 이때 율곡은 35세 연상인 퇴계에게 머물러 일할 것을 권하면서 “벼슬이란 남을 위한 것이지 어찌 자기를 위한 것이겠습니까?”라고 말합니다. 퇴계는 “벼슬은 진실로 남을 위하는 것이지만, 남에게 이로움이 미치지도 못하고 자신에게 근심만 절실해진다면 할 수 없는 일이네.”라고 답합니다. 율곡이 “선생이 조정에 계시면서 아무것도 원대한 계획이 없다 하더라도 상(왕)이 마음으로 중하게 의지하고 사람들이 기뻐하며 신뢰할 것이니 이 또한 이익이 남에게 미치는 것입니다”라고 했으나 퇴계는 끝내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퇴계는 물러나고 물러남으로써 더욱더 높아지고 존경을 받았지만, 율곡은 물러났다가도 다시 나와 현실과 싸우며 상처받고 피 흘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나라 사랑은 같아도 출처(出處, 벼슬살이와 물러남)는 이처럼 달랐습니다. 율곡인들 물러나 후학이나 기르면 명예롭고 편안하리라는 걸 몰랐겠습니까? 벼슬을 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가난하기도 했지만, 율곡은 나라와 백성의 참담한 현실을 끝내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열 살 때 지은 ‘경포대부(鏡浦臺賦)’에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 그 자신을 사사로이 하지 않고, 혹시 풍운제회(風雲際會, 밝은 임금과 어진 정승의 만남)를 이룬다면 마땅히 사직의 신하가 되어야 하리.”라는 말이 이미 나옵니다.

여덟 살 때 지은 ‘화석정(花石亭)’ 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林亭秋已晩 숲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어
騒客意無窮 시인의 생각 끝이 없네
遠水連天碧 먼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 서리 맞은 단풍 햇빛 받아 붉구나
山吐孤輪月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 내고
江含萬里風 강은 만 리 바람을 머금는데
塞鴻何處去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나
聲斷暮雲中 저녁 구름 속에 소리 끊기네

사람들은 이 시에서 소년율곡의 천재를 읽지만 나는 가을과 황혼, 울음소리 끊긴 기러기의 이미지가 정말 가슴 아픕니다. 사람의 운명이 그가 지은 시대로 된다는 시참(詩讖)도 생각납니다. 율곡은 임진왜란 8년 전에 졸(卒)했는데 더 살았더라면, 영의정에까지 올라 좀 더 나라에 기여할 수 있었다면 나라 꼴이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됩니다.

21대 총선 투표일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배달된 선거 공보물을 살펴보며 이렇게도 인물이 많나, 잘도 그러모았구나, 다 뭘 하는 자들인가, 이 중에서 ‘벼슬은 남을 위해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는 사람이 있기는 할까, 이런 의심을 하게 됐습니다. 하도 비루하고 정직하지 못하고 좁쌀 같은 정치꾼들만 조석으로 접하다 보니 사심 없고 공명정대했던 율곡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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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임철순(任喆淳)

한국일보 편집국장 주필, 이투데이 이사 겸 주필 역임. 현재 자유칼럼그룹 공동 대표, 한국언론문화포럼 회장, 시니어희망공동체 이사장. 한국기자상, 위암 장지연상, 삼성언론상 등 수상. 저서‘노래도 늙는구나’, '효자손으로도 때리지 말라’,’손들지 않는 기자들‘,‘1개월 인턴기자와 40년 저널리스트가 만나다(전자책)’,‘내가 지키는 글쓰기 원칙(공저)’'마르지 않는 붓'(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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