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여파] 로펌에 휴직·해고 문의 폭주 ㅣ ‘실업 대란’ 야기 ‘코로나발 정리해고’ 막아야


실업대란 조짐…로펌에 휴직·해고 문의 폭주


   대형 로펌에 무급휴직과 정리해고 절차 등을 문의하는 기업들이 폭증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경영 위기에 몰린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검토하면서 법률 자문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5일 “무급휴직, 정리해고 관련 문의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고 했다. 재택근무를 시행한 기업들이 성과가 나쁘지 않자 인력 감축을 고심하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 정리해고를 하려면 희망퇴직 무급휴직 등 ‘해고 회피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점도 인정받아야 한다.


 

제주신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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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요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업들의 정리해고가 수월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경영 어려워진 기업 늘면서…임금 삭감 절차 등 문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인력 구조조정을 고민하는 기업이 크게 늘었다. 대형 법률회사(로펌) 노동팀에 무급휴직과 정리해고를 위한 법적 절차를 묻는 기업관계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는 것. 조상욱 율촌 변호사는 “로펌 노동팀은 전형적으로 불황기에 일감이 늘어나는 조직”이라며 “단기적인 코로나19 대응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불황에 대비하기 위해 임금 삭감, 저(低)성과자 처우 문제 등을 문의하는 기업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해고 회피 노력이 급선무”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로 사업유지가 어려울 정도로 경영상태가 심각해진 적지 않은 기업이 ‘정리해고’를 검토하면서 로펌 문을 두드리고 있다. 한 로펌 변호사는 “한국은 해고에 매우 엄격한 법체계가 있어 정리해고 준비부터 실행까지 3~6개월이 걸리고 해고 요건도 까다롭다”고 말했다. 현행법상 정리해고 요건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 △해고 회피 노력 △대상자 선정의 합리성 △근로자 대표와의 협의 등 네 가지다.


이 변호사는 “현재 코로나19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요건에 해당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예전보다 정리해고를 단행하기 수월해졌다”며 “인력 운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외부 컨설팅을 받거나 희망퇴직, 무급휴직 등 해고회피 노력을 한다면 정리해고가 가능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매출 감소를 이유로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거나, 휴가 사용을 강제하고, 권고사직을 압박하는 것은 법률상 불가능하다. 모두 근로자의 동의가 필요하다. 대신 인건비 절감을 위한 전환배치는 가능하다. 김상민 태평양 변호사는 “전보 발령 시 해당 직원의 ‘생활상 불이익’과 ‘업무상 필요성’을 골고루 따져 시행하지 않으면 법적 효력이 사라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계 기업은 아예 한국 시장 철수를 검토 중인 곳이 늘고 있다. 한 변호사는 “한·일 관계 악화로 일본 기업은 물론 매출이 부진한 다국적 기업들이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아예 한국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며 “한국뿐 아니라 세계 사업을 전면 재편하기 위해 국가별 로펌에 문의하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또 다른 로펌 관계자는 “정규직 채용 대신 전문 업체에서 인력을 아웃소싱하는 형태로 고용 방식을 바꾸려는 외국 기업도 많아졌다”고 덧붙였다.


휴직수당 문의 ‘봇물’


기업들이 ‘사업장 내 코로나19 확진자 또는 의심환자 발생 시 대응 조치’를 시행함에 따라 휴업수당과 관련된 문의도 크게 늘었다. 특히 매출이 급감하면서 평균임금의 70% 이하로 휴업수당을 줄 수는 없는지 등을 문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 휴직에 관한 문의도 많다.


송현석 광장 변호사는 “코로나19에 따른 부품공급 중단, 예약 취소, 매출 감소로 휴업하거나 코로나19 확진자가 머물러 며칠 동안 회사(매장)를 폐쇄하는 경우에도 회사는 근로자에게 휴업수당을 줘야 할 가능성이 높다”며 “통상 법원의 판례는 회사의 귀책 사유를 넓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사업장에서 확진 환자가 발생해 불가피하게 휴업한 경우 휴업수당을 주지 않아도 된다. 이때 감염병예방법에 따라 정부로부터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휴업수당은 법상 평균임금의 70% 이상이어야 한다. 70% 미만을 지급하려면 노동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복잡한 절차 때문에 실제 사례는 많지 않다.




김동욱 세종 변호사는 “코로나19라는 특별한 사정을 감안할 때, 70% 미만을 주는 사례도 생겨날 것”이라며 “이럴 경우 보통 기업은 휴업수당 대신 노동조합과 합의해 유급휴직을 시행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사업주가 감원 대신 유급휴업·휴직으로 고용을 유지할 경우 정부가 수당의 일부를 지급하는 ‘고용유지지원금’ 제도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김 변호사는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는 3개월(4~6월) 동안 한시적으로 고용유지지원금 수준을 모든 업종에 (휴업·휴직수당의) 최대 90%로 상향 조정하겠다고 최근 밝혔다. 이 밖에 재택근무제 또는 원격근무제 시행에 따른 ‘재택·원격근무 인프라 구축 지원제도’, 유연근무제 도입에 따른 ‘간접노무비 지원 제도’, 임금채권보장법에 따른 ‘사업주 융자제도’, 중소벤처기업부의 ‘소상공인 경영안정자금 융자제도’ 등도 활용할 만하다는 게 법조계의 조언이다.


 

로펌 노동팀 ‘조직 확대’


로펌들은 노동팀 조직을 확대하기 위해 전문가 모시기에 나섰다. 재판과 수사가 지연되고 기업 투자가 위축되면서 송무와 자문 매출이 급감한 로펌 입장에선 노동팀이 주요 ‘캐시카우(현금 창출원)’이기 때문이다. 노동팀의 업무 영역도 기존 노동 관련 재판과 조사·수사 대응 수준에서 노사 관계 컨설팅, 기업 내부비리 조사, 산업 안전, 직장 내 괴롭힘 분쟁 등으로 점차 확장되고 있다.


주완 김앤장 변호사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노동전담 변호사는 시장 수요에 비해 많이 부족했다”며 “선진 사회로 갈수록 노동법률 전문가가 필요해진다”고 말했다. 김앤장은 노동전담 변호사만 70여 명으로, 국내 로펌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태평양과 광장은 최근 최대술 전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창원지청장과 전운배 전 노동부 기획조정실장을 각각 영입해 노동팀 강화에 나섰다. 광장은 자사 홈페이지에 코로나19 전용 자료실을 별도로 개설했고, 율촌도 ‘코로나19 태스크포스(TF)’를 출범시키는 등 인사·노무 자문 수요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세종 인사·노무전문팀은 다른 경쟁 로펌에서 3~4명의 노동전담 변호사를 영입해 덩치를 키울 예정이다.

안대규 기자 powerzanic@hankyung.com 한국경제




[사설] ‘실업 대란’으로 이어질 ‘코로나발 정리해고’ 막아야


    우려했던 코로나발 ‘실업 대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은 항공업계에서 먼저 시작됐다. 저가항공사인 이스타항공이 4~5월 전체 직원의 45%에 이르는 750명을 내보내기로 했다. 먼저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뒤 신청자 수가 목표치에 미치지 못하면 나머지 인원은 정리해고할 방침이라고 한다. 1~2년차 수습 부기장 80여명에 대해선 1일자로 이미 계약을 해지했다. 다른 항공사들의 형편도 녹록지 않아 대규모 실업 사태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 항공업계뿐 아니라 자동차, 여행, 호텔, 정유, 가스, 석유화학 등 산업 전반으로 퍼질 수 있다.


저가항공사인 이스타항공이 코로나19 사태 뒤 업계 처음으로 정리해고 방침을 밝혔다. 코로나발 실업 대란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스타항공 기종. <한겨레> 자료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고용 충격이 임시·일용직 등 취약계층에 이어 대기업으로까지 옮겨붙으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된다. 대기업의 인력 구조조정은 다시 협력업체로 번져 고용시장이 연쇄 충격을 받는다. 거리로 내몰린 노동자들은 당장 생계를 위협받게 되고 소비는 더욱더 침체된다. 특단의 고용안정 대책이 시급해졌다.




직원 감원 대신 휴업·휴직을 시행하는 중소 사업장에 해당 인건비의 90%를 지원한다는 고용안정 대책은 지난달 25일 이미 제시한 바 있다. 대기업에는 65%를 지원한다. 기업 차원에서 이 제도를 활용해 해고 대신 단축근로나 부분휴직, 순환휴직제로 위기를 넘겨야 한다.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경영계에서 이런 인식을 공유하고 보조를 맞추는 게 같이 사는 길이다.


 정부는 고용 유지를 유도하는 방안을 추가로 모색함과 아울러 이미 발표한 기업 지원책을 고용 유지와 연계 시행해 대량 해고 사태를 막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2차 비상경제회의에서 밝힌 100조원 규모의 금융지원 방안은 기업을 지키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일자리를 지켜 고용안정을 이루기 위한 목적이다. 외환위기 때처럼 정부 지원이 기업 살리기에만 그치고 노동자는 실업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고용 유지를 전제로 기업을 지원해야 한다.

위기 속에서도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선 정부의 대책에 더해 노사의 공동 노력이 절실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회원국에 권고한 ‘독일식 노동시간 단축 지원책’을 참고할 만하다. 노사가 고용안정과 노동시간 단축(임금 축소)에 합의하면 줄어든 임금 중 일부를 정부가 메워주는 상생의 방안이다. 이런 고통분담 없이는 사상 초유의 코로나발 위기를 헤쳐나가기 어렵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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