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같은 남자로 사는 법 [노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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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같은 남자로 사는 법

2020.04.03

아들이 좋을까, 딸이 좋을까? 이 어려운 질문을 40대 초반의 결혼한 남자 후배한테 하니 “고양이가 좋아요”라고 대답합니다. 30대 중반의 여자 후배는 “고양이보다 토끼가 예뻐서 세 마리 키우고 있어요”라고 합니다. 아기 대신 애완동물이라니, 세상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농장지경, 농와지경’이 삶의 가장 큰 기쁨이던 조상님들이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요.

농장지경(弄璋之慶)과 농와지경(弄瓦之慶)은 자식을 낳아 기르는 부모의 자상함이 듬뿍 담긴 옛말입니다. ‘손에 구슬을 쥐어주는 즐거움’을 뜻하는 농장지경은 아들 낳은 기쁨을 표현한 말입니다. 고대하던 아들을 봤는데, 구슬만 쥐어줬을까요. 비단 이불에 누이고 고까옷을 입히고 무럭무럭 자라라고 참젖으로 소문난 젖엄마도 구했겠지요.

딸을 낳으면 ‘실패를 갖고 놀게 하는 경사’인 농와지경이라고 축하했습니다. 바느질을 배워 집안일을 돕는 살림꾼으로 자라라는 뜻이겠지요.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처럼, 덕담 같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들이 아닌 것에 대한 섭섭함이 담겨 있습니다. 어쩌면 농와지경은 경사에 한참 못 미치는 그저 ‘즐거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남아선호 사상이 극심했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구슬을 갖고 놀던 사내아이는 좀 자라면 친구들과 칼싸움·창싸움을 하며 놉니다. 바로 ‘희롱’을 하는 것이지요. ‘농(弄)’은 사내아이가 손에 구슬(玉)을 들고 장난치는 모습을, ‘희(戱)’는 창(戈)을 들고 전쟁놀이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러니까 스마트폰, 게임기가 없던 시절의 사내아이들은 ‘희롱’을 하며 성장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선 ‘희롱’을 어떻게 풀이했는지 궁금합니다. ①말이나 행동으로 실없이 놀림. ②손아귀에 넣고 제멋대로 가지고 놂. ③서로 즐기며 놀리거나 놂. 사내아이가 손에 옥구슬을 쥐고 노는 모습은 ②, 좀 자란 사내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창놀이를 즐기는 모습은 ③에 해당하겠지요. 둘 다 유쾌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어려서나 하는 희롱을 나이가 들어서도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특히 ‘성(性)’이라는 글자를 보태 ‘성희롱’을 하다 다른 사람의 인생까지 망친 못나고 어리석은 이들도 많지요. 말 한마디, 행동 하나로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게 성희롱입니다. 시각적·언어적·신체적으로 수치심이 들게 하는 모든 성적 행위가 성희롱입니다. 성적 내용을 담은 정보를 의도적으로 유포하는 행위, 성적 관계를 강요하거나 회유하는 행위, 음란한 내용의 전화 통화 등이 모두 해당합니다. 외설적인 사진이나 그림, 낙서를 게시하거나 자신의 특정 신체 부위를 고의적으로 노출하거나 만지는 것도 당연히 성희롱입니다. “웃자고 한 얘기”라도, 누군가 수치심을 느꼈다면 성희롱 범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음담패설과 유머를 구분하지 못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모처럼 만난 자리에서 ‘유머감각 넘치는’ 친구가 분위기를 띄워놓으면 여지없이 ‘낯뜨거운 음담패설’로 찬물을 끼얹곤 하지요. 밖으로 데리고 나가 주의를 주면 “조크를 모르는 너희들이 답답하다”고 되레 성질을 냅니다. 참 무지하고 위험한 친구입니다.

반대로 과하게 조심하는 지인도 있습니다. 강원도의 한 대학 교수인데, 제자들과의 관계에서 행여 성희롱 등 추문에 휘말릴까 봐 무척 조심한다고 합니다. 학생이 학점·진로 등의 문제로 찾아오면 연구실 문을 활짝 열어 놓거나 조교를 부른다네요. 학생을 위로할 상황이나 축하할 일이 있어도 악수는커녕 어깨도 토닥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수가 존경받는 길은 사제간의 정은 멀리하고 오로지 지식을 바탕으로 지도만 하는 것입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강의를 하는 요즘이야말로 정말 마음 편합니다.” 무척 씁쓸한 말을 무덤덤하게 합니다.

이슬같이 맑은 남자로 사는 법, 어렵지 않습니다. 음담패설하지 말고, 손 가볍게 놀리지 말고(아내와 딸은 제외), 머릿속에서 남녀 차별적 의식 버리기!
꼰대로 살지 않는 법도 어렵지 않습니다. 아기 대신 개나 고양이 키우는 게 좋다는 후배에게 반론 제기하지 않기, 결혼한 후배들에게 아기 낳지 않는 이유 묻지 않기!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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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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