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파장] 세계 최초 개발 '차세대 소형원전'도 사장 위기


[단독] 20년 공들인 차세대 소형원전 '급제동'


개선사업 올 예산 고작 35억


      한국원자력연구원이 2012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시스템 일체형 원자로(SMART)’의 차세대형 개발 사업에 제동이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 국정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탈원전 정책이 영향을 끼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24일 정부와 원자력계에 따르면 원자력연구원이 1997년 개발에 들어가 2012년 표준설계인가(SDA)까지 취득한 소형 원전의 개선 사업이 난항을 겪고 있다. 미래형 원자로를 고도화하는 데 최소 2000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됐으나 올해 책정된 예산은 35억원에 불과해서다. 정부는 5년에 걸쳐 최대 250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1997년 개발을 시작해 완성 단계인 스마트 원전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2015년 10월 대전에서 열린 ‘연구개발특구 기술박람회’를 찾은 시민들이 스마트 원전 모형을 살펴보고 있다. 한경DB


한국이 개발에 성공한 소형 원자로는 대형 원전의 10분의 1 크기(용량 110㎿e)로, 인구 10만 명 규모 도시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차세대 발전원이다.




원자력계 관계자는 “20여 년 공들여 개발한 소형 원전의 차세대 버전을 만들려면 예산 지원이 필수인데 어렵게 됐다”며 “이대로라면 경쟁국인 미국 중국 러시아 등에 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예산이 2000억원 필요하다는 건 원자력계 생각일 뿐”이라며 “탈원전 기조에도 원전 기술의 수출 경쟁력은 유지하는 게 목표”라고 해명했다.


국내 기술로 개발한 ‘시스템 일체형 원자로(SMART)’가 2012년 7월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표준설계인가(SDA)를 취득하자 원자력계는 환호성을 질렀다. 급부상하고 있는 소형 원전 분야에서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경쟁국을 제치고 세계 최고 기술력을 보유하게 됐다는 의미가 있어서다. 당시 정부는 “2050년까지 350조원 규모로 추산되는 세계 중소형 원전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분위기가 확 달라진 건 2017년 정부의 탈원전 선언 이후다. 소형 원전의 사우디아라비아 수출을 주도했던 하재주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2018년 11월 석연찮은 이유로 중도 퇴진한 데 이어 사우디 원전 착공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올해 책정된 예산은 35억원뿐

세계 최초로 개발한 소형 원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려면 최소 2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게 원자력연구원의 추산이다. 미세먼지를 배출하지 않는 친환경 원전이 주목받으면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만큼 인력과 재원을 조기에 집중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올해 국회에 요구해 배정받은 예산은 35억원. 5년에 걸쳐 250억원 정도의 예산을 확보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이미 개발한 스마트 원전의 보완 성격이어서 많은 예산이 필요한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원자력계 입장은 다르다. 원자력연구원 관계자는 “세계 소형 원전 시장을 주도해온 상황에서 추가 재원을 집중 투입해 차세대 원전의 완성도를 높여야 하는데 아쉽다”고 했다. 또 다른 원전업계 관계자는 “작년에 차세대 원전 개발에 들어갈 계획이었으나 탈원전 분위기 탓에 시도하지 못했다”며 “올해 책정된 예산은 기본 개념 정도만 그릴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개발해놓은 소형 원전의 설계 재인가 작업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작년 말에야 안전을 대폭 강화한 설계인가 신청서를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제출했다. 원자력연구원과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안위의 재인가 승인을 받은 뒤에야 사우디 수출을 본격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안팎에서 공격받는 ‘원자력 산실’

국내 원자력 연구의 ‘심장부’로 꼽히는 원자력연구원이 이달부터 ‘중점 추진 전략’을 바꾼 것도 논란이다. 원자력연구원은 이달 초 공개한 추진 전략에서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소형 원자로 기술 확보’를 삭제했다. 대신 원전산업 생태계 역량 강화 등을 추가했다. 원자력연구원은 과기부 산하 국책 연구기관이어서 정부 통제를 받는다.



원자력계 분위기가 침체되면서 정부의 관련 공모 사업도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과기부는 현재 원자력정책연구, 미래 원자로 핵심요소 개발 등 7개 원자력 관련 사업의 재공모를 하고 있다. 1차 공모 때 관심을 보인 곳이 거의 없어서다. 과기부 관계자는 “2개 이상의 기업이나 기관이 지원해야 입찰을 진행할 수 있는데 그게 안 돼 재공모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자력연구원은 최근 일부 방사성물질의 원외 방출이 확인돼 원안위 경고를 받고 환경·시민단체들로부터 ‘즉각 폐쇄하라’는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


해외에선 소형 원전 경쟁 불붙어

한국과 달리 미국(누스케일파워) 중국(CNNC) 러시아(로사톰) 등 경쟁국 기업들은 소형 원전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소형 원자로를 수출전략 산업으로 지정했다. 이에 힘입어 누스케일은 소형 원자로 개발에 연간 1억달러씩 투입하고 있다는 게 원전업계 얘기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최근 들어 소형 또는 마이크로 원자로 개발 경쟁이 불붙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가장 앞섰던 한국 기술력이 뒤처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소형 일체형 원자로가 관심을 끄는 건 대형 원전을 짓기 힘들거나 인구가 분산돼 송배전 시설을 구축하기 어려운 나라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세계 1만8400여 기로 추산되는 노후 화력발전소를 대체할 수 있는 발전시설이란 평가도 나온다. 대형 원전 대비 건설비 및 공사기간이 20% 수준에 불과할 정도로 경제성도 뛰어나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한국경제

케이콘텐츠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