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여파] 정기예금 돈 뺀다 ㅣ 은퇴 아닌 금퇴(禁退)시대 온다



"최악 상황에 대비"…정기예금 돈 뺀다


코로나·저금리發 뭉칫돈 이동

자영업자 "언제 현금 필요할지 몰라"

입출금식통장에 한 달새 28조 몰려


   “지금 상황에서 정기예금에 넣어두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최모(35)씨는 정기예금에 넣어두었던 2000만원을 연장하지 않고 자유입출금통장에 옮겼다. 어차피 정기예금 금리가 1%대로 추락해 정기예금에 넣어둔다고 해도 대단한 이자수익을 기대할 수도 없는 데다 코로나19 사태로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현금이 필요할지 모르니까, 대비를 할 수밖에 없어요.” 최씨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픽=이동훈 기자)


은행의 ‘요구불예금’으로 자금이 몰리고 있다. 22일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의 자유입출식예금과 시장금리부 수시입출금식예금(MMDA)를 합친 요구불 성격의 예금 잔액은 지난달 말 잔액 기준으로 총 557조4516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동월대비로 14.8%(71조7377억원) 증가한 수치다. 지난 1월 말과 비교해도 한달 사이에 5.3%(28조847억원) 늘어났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이달 들어 수시입출식 요구불예금으로 옮겨가는 분위기가 더 분명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이맘 때는 정기예금으로 돈이 몰리는 분위기였다. 2018년 2월의 정기예금 전월대비 잔액 증가분은 8조4381억원이었고, 작년 2월에는 9조8650억원이었다. 하지만 올해 2월 정기예금 잔액은 전달보다 8536억원 감소하며 흐름이 달라졌다. 오석태 소시에떼제네랄(SG)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금리는 갈수록 낮아지고 시장은 불안정하기 때문에 현금성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했다.

[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은퇴 아닌 금퇴(禁退)시대 온다


예전보다 젊어진 노년층

소비와 생산주체로 등장


정년 폐지해 혁신 촉진땐

누구나 늙고싶은 시대 도래


   인류 수명 연장은 재앙인가, 축복인가. 개인에겐 축복이지만 경제 전체적으로는 재앙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출산율이 낮아지는 가운데 고령화 진척은 경제에 큰 짐이다. 생산자는 줄어들면서 오히려 부양 대상이 늘어나고 재정 부담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출산율을 높여 경제에 활력을 주기 위해 과거 10년 동안 180조원이 넘는 국민 세금을 쏟아부었다.

아기 울음소리가 더 들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줄었다. 헛돈을 엄청 쓴 셈이다. 이 때문에 예전보다 젊어진 노년층을 주목하는 게 낫다는 분위기다. 늙어가는 한국 사회의 해법을 노년층에서 찾자는 역발상이다. 젊은 노년층(Young Old)인 욜드(YOLD)의 등장은 이런 발상의 전환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욜드는 연령대로 따지면 65~79세다. 욜드 세대는 요즘 코로나19 사태로 수세에 놓여 있지만 20년 후 한국에서는 인구 4명 중 1명을 차지하는 거대한 그룹이다.



한국에선 2020년부터 베이비붐 세대 은퇴가 시작되면서 매년 제주도 인구(67만명)에 맞먹는 은퇴자가 쏟아진다. 이들은 경제력과 학력, 건강을 바탕으로 소비는 물론 생산 활동에도 적극 뛰어들 준비가 돼 있다.


이제 경제력 있는 욜드들이 돈을 쓰게 할 때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19 사태로 해외 이동이 어려울 때 국내에서 돈을 쓸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자. 눈높이가 높아진 욜드 세대에 맞춰 관광 인프라도 국제적 수준으로 개선해보자.


은퇴시장에 쏟아지는 욜드는 생산현장에도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사회 인식 탓에 생산 주체로 적극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특히 노년층 일자리가 늘어나면 청년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인식이 욜드 일자리 창출의 걸림돌이다.


2005년 연금개혁을 통해 `정년 자유화`를 도입한 핀란드 사례만 보더라도 이는 잘못된 인식이다. 핀란드의 2005년 65세 이상 고용률은 5.1%였는데 2018년 11%까지 증가했다. 청년 고용률도 42.1%에서 45.6%로 늘었다.


욜드 일자리 확대를 위한 확실한 방안은 정년 폐지다. 특히 정년 폐지는 역설적으로 경제 혁신을 촉진하는 핵심 요인이다. 4차 산업혁명의 발상지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미국 실리콘밸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실리콘밸리에서 혁신의 원동력은 실패를 인정하는 기업문화다. 미국이 1986년 정년을 폐지하면서 생긴 현상이다. 정년 없는 사회에서 창업에 도전하는 사람은 언제라도 기업에 다시 취업할 수 있다는 `안전판` 덕분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 없이 창업에 도전할 수 있다.




하지만 정년제가 있는 사회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갖고 신사업에 도전하다 실패하면 갈 곳이 없다. 기업도 실패한 자의 경험을 큰 자산으로 여기지만 이를 활용하기 어렵다.


우리도 정년 폐지를 통해 욜드 세대가 이끄는 이상적인 경제 상태를 뜻하는 `욜디락스`에 도전할 만하다. 문제는 경직적 노동시장이다. 임금이나 고용 조정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 우리도 2013년 정년을 연장해 고령층 고용을 늘렸다. 하지만 청년 실업은 늘었다. 고령층 고용은 늘릴 수 있었지만 임금 증가를 걱정해야 하는 기업은 청년을 더 고용할 수 없었던 게 문제였다. 정년 연장이 청년 고용을 갉아먹었던 셈이다. 정년은 연장했지만 고용과 임금의 유연성을 늘려주지 않아 비롯된 부작용이다.


이제 일하고자 하는 욜드들은 일하게 하자. 욜드 경륜을 언제까지 산에서 썩혀야만 하는가. 젊은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자리라도 주자. 조그마한 소득이라도 있어야 보유 자산을 소비로 연결시킬 수 있다. 액티브 시니어가 살고 청년도 사는 길이다. 지금의 청장년도 10~20년 후면 욜드다. 더 빨리 늙고 싶은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금퇴(禁退) 시대를 준비하라.

[김명수 국차장겸 지식부장]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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