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 질병 퇴치가 어려운 이유


여과지도 통과하는 기이한 미생물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바이러스 질병을 치료하기 힘든 까닭


    러시아의 생물학자 드미트리 이바노프스키(Dmitri Ivanovsky)는 1892년에 담배 모자이크병을 연구하던 중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그는 담뱃잎의 광합성 조직을 파괴해 수확량을 크게 감소시키는 이 병이 미세한 균에 의해 전염된다는 증거를 찾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이 병에 걸린 담뱃잎의 추출물을 여과지에 통과시켰는데 병원체가 전혀 검출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여과지를 통과한 여과액은 여전히 다른 개체에 담배 모자이크병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이번에 코로나19를 일으킨 SARS-CoV-2라는 바이러스는 크기가 약 120nm에 불과하고 단백질을 33개만 사용할 뿐이다. ⓒ Image by TPHeinz from Pixabay




세균 같은 미생물은 여과지에 당연히 걸러져야 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이 사용하는 여과지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6년 후 네덜란드의 식물학자 마르티누스 베이에링크(Martinus Beijerinck)는 담배 모자이크병이 세균보다 더욱 미세한 감염원에 의해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그 전염체에 대해 ‘액상 전염성 바이러스(contagium vivium fluidum)’라고 명명했다. 인류가 최초로 바이러스라는 기이한 미생물을 찾아낸 순간이다.


바이러스가 이바노프스키의 여과지에 걸러지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 바이러스는 세균에 비해 훨씬 작기 때문이다. 대장균은 세포의 지름이 0.25~1.0㎛ 정도이고, 길이는 2-3㎛(1㎛는 100만 분의 1m) 정도로 길다. 그러나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바이러스의 경우 27nm(1nm는 10억 분의 1m)에 불과하다.


이번에 코로나19를 일으킨 SARS-CoV-2라는 바이러스의 크기가 약 120nm다. 인간의 세포는 약 2만 종류의 단백질을 사용하는 데 비해 크기가 작은 SARS-CoV-2는 단백질을 33개만 사용할 뿐이다.


완벽 퇴치는 천연두가 유일해


현재 전 세계 의학자들은 코로나19를 확실히 치료하기 위해 수십 가지의 약을 시험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치료법이 없는 가운데, 코로나19는 세계 각국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인류가 바이러스로 전염되는 질병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완벽하게 퇴치한 것은 1979년에 박멸이 선언된 천연두가 유일하다.


그럼 왜 바이러스는 이처럼 치료하기 힘든 것일까.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이바노프스키의 여과지에도 걸러지지 않았을 만큼 작았던 바이러스의 크기에 숨어 있다. 바이러스는 그 작은 크기 때문에 스스로 복제할 능력조차 없다. 따라서 바이러스는 숙주에 감염된 후 숙주의 복제 시스템을 활용해 증식한다.


그 적은 몇 개의 단백질을 사용해서 바이러스는 모든 종류의 모양으로 조립되고, 전체 생태계에 대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그들은 공기, 물, 토양, 물방울을 통해 숙주 사이를 마음대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세한 크기의 이점은 세균과 비교해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신체가 비교적 큰(?) 병원균들은 그 여분의 공간에 자신의 복제품을 만들기 위한 도구를 저장한다. 그런데 이런 도구들은 항생제에 대해 취약점으로 작용하며 표적 효과를 지니기도 한다.




바이러스, 인체 세포와 동일한 메커니즘 사용


또한 세균은 인체의 세포와 많이 다르므로 공격 목표를 달리하는 약물을 만들기가 비교적 쉽다. 이에 비해 그런 도구들을 가지지 않은 바이러스는 항생제를 투입해도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다. 숙주의 기관을 이용해 인체 세포와 동일한 메커니즘을 많이 사용하므로 약물로 표적 공격하기도 어렵다.


즉, 바이러스를 목표로 하지만 인체 세포도 손상시키지 않는 약물을 찾기란 훨씬 어려운 셈이다. 더구나 바이러스는 엄청나게 다양한 돌연변이를 빠르게 양산하므로 맞춤형 치료와 백신의 사용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효력을 잃을 수 있다.


바이러스를 통제하기 위한 의약품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코로나19 같은 급성감염에 대한 항바이러스제는 그리 많지 않다. 새로운 약을 개발하는 데 수년간의 실험이 필요할 수 있는데, 그때쯤이면 확산세가 꺾인 상태거나 또 다른 위협적인 바이러스가 출현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설사 효과적인 치료법이 나오더라도 코로나19는 지속적인 위협으로 남을 수 있다. 새로운 치료법이 나오고 자주 업데이트되는 백신, 그리고 공공보건의 오랜 대응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매년 수십만 명의 사망자를 내고 있는 독감 바이러스처럼 말이다.


가장 미세한 병원체이며 가장 기이한 생명체인 바이러스와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감염의 확산을 막는 것이 우선이다. 즉, 코로나19 같은 유행병을 퇴치할 수 있는 최고의 치료제는 증세를 보이는 환자의 격리 조치 및 사회적 거리 두기, 비누로 30초간 손씻기, 마스크 착용 같은 기존의 공중 보건 조치들일지도 모른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sciencetimes




담배 모자이크병에서 발견된 바이러스


    바이러스는 가장 작은 기생체다. 기생충은 내장에, 세균은 조직에 기생한다면, 바이러스는 세포 속에서 기생하는 미생물이다.


로마시대에 바이러스(virus)라는 이름은 ‘독(毒)’을 뜻했다. 나중에는 ‘독액(毒液)’을 거쳐 ‘병을 옮기는 감염성 물질’로 의미가 변했다. 현대 영어의 virulent(독성이 있는), viral(퍼지는, 옮기는)은 그러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입소문을 통해 판매를 촉진하는 ‘바이럴 마케팅’도 사람들 사이에 삽시간에 퍼지는 바이러스의 성질에서 따왔다.


바이러스가 언제 생겨났는지 알수는 없지만 인간은 물론이고 그 어느 생명체보다 오래된 존재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토록 오래되었지만 바이러스의 존재를 안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담배 모자이크병(오칼병)에 걸린 담뱃잎. ⓒ 위키백과


미생물학은 물론이고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파스퇴르(Louis Pasture)는 바이러스를 보지 못했다. 파스퇴르는 광견병 예방 접종을 만들어 사람들의 목숨을 구했지만 정작 그는 광견병바이러스(Rabies lyssavirus)을 직접 확인하지는 못한 것이다. 세균학의 창시자인 코흐(Robert Koch) 역시 콜레라, 탄저병, 결핵균을 발견했지만 바이러스는 보지 못했다. 미생물학의 대가들이었지만 바이러스는 그들이 쓰던 광학현미경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




바이러스의 크기는 대략 20~300나노미터(nm)이다. 아주 가늘다는 의미로 쓰는 머리카락 굵기가 6만 나노미터임을 고려할 때, 머리카락 단면에 바이러스 200~3000마리를 일렬로 세울 수 있다. 혹은 소금 알갱이 한 변에 피부세포는 10개, 세균은 100마리를, 바이러스는 1000마리를 늘어 세울 수 있다. 우리가 초미세 먼지라 부르는 PM2.5 입자 중 가장 큰 것이 2500 나노미터이니 바이러스는 얼마나 작은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작은 바이러스는 미생물 대발견의 시대에 유용했던 광학현미경으로는 볼 수 없었다. 만약 광학현미경으로 바이러스를 보았다고 해도 미세한 먼지를 본 것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다.


19세기 말에 유럽에서 담배를 재배하는 농부들은 깊은 시름에 빠졌다. 잘 키우던 담배 잎이 군데군데 썩어들어가면서 잎 자체가 생육 부진에 빠지는 병이 돌았기 때문이다.


1886년 독일 농화학자였던 마이어(Adolf Mayer)는 이것을 담배 모자이크병(tobacco mosaic disease)으로 명명한다. 잎이 군데군데 죽어서 생긴 얼룩무늬가 마치 모자이크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마이어는 원인을 찾아보았으나, 흔히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는 해충도, 곰팡이도 발견할 수 없었다.


이에 마이어는 병든 담뱃잎을 갈아 만든 즙을 건강한 담배에 주사해 보았는데, 병이 옮는 것을 확인했다. 이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병원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해당 추출물을 배양했다.


얼마 후 배지에서 균이 자라났다. 이것이 담배 모자이크병의 원인균이라 생각하고 건강한 담배에 주사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일어나지 않았다. 실망한 마이어는 연구를 더 이상 하지 않고 손을 놓아버렸다.


아돌프 마이어. ⓒ 위키백과




1892년 러시아 식물학자인 드미트리 이바노프스키(Dmitri Ivanovsky)도 담배 모자이크병을 연구했다. 그는 아주 특수한 필터를 이용했다. 1884년 프랑스 미생물학자 챔버랜드(Charles Chamberland)가 만든 ‘파스퇴르-챔버랜드 필터’로 세균을 걸러내어 무균(無菌) 상태를 만들어주는 필터였다.


이바노프스키는 무균 필터로 걸러낸 병든 담뱃잎 추출물을 멀쩡한 담배에 주사했더니 병이 옮는 것을 발견했다. 무균 필터로 걸러냈기 때문에 세균은 아니라는 뜻. 이에 이바노프스키는 세균이 만든 ‘독(!)’이 필터를 통과해 병을 퍼뜨린 원인이 되었을 거라 추측했다.


1898년 네덜란드 마르티누스 베이에린크(Martinus Beijerinck)도 담배 모자이크병을 연구한다. 이바노프스키의 실험을 재연하던 베이에린크는 이바노프스키와 달리 필터를 통과한 액체가 ‘세균 독’이 아닐거라고 생각했다. 이유는 이 액체가 스스로 증식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담배 하나에서 얻은 독성 액체는 배양 과정을 거치면서 여러 담배에 병을 일으킬 정도로 독성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세균독은 그럴 수 없었다.


베이에린크는 살아서 몸집을 불리는 이 감염성 액체(contagium vivum fluidum; soluble living germ, 살아있는 액상의 미생물)를 연구했고, 그 액체 속에는 우리가 전혀 몰랐던 낯선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생명체는 세균에 비할 바 없이 왜소한 존재이지만, 알코올에 넣어도, 석 달 동안 건조해도 여전히 병을 옮겼다. 이 강인한 미생물은 동물, 식물, 세균, 곰팡이 그 어느 것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다. 베이에린크는 이것을 ‘바이러스(virus)’로 명명한다. 이렇게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TMV, tobacco mosaic virus)는 인간 세상에 데뷔했다.


마르티누스 베이에린크. ⓒ 위키백과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를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것은 전자현미경이 등장한 후인 1939년이었고,  바이러스의 기본적인 성질은 1950년대에 알려졌다.


바이러스는 단백질로 된 껍데기 안에 든 DNA 혹은 RNA로 이루어진 유전 정보가 전부인 미생물이다. 하지만 이 단순하면서도 강인한 생명체는 숙주 세포 속으로 들어가 숙주의 힘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하고 증식한다. 하루 만에 한 마리가 1000마리가 된다. 한마디로 자손 번식에 최적화된 생명체였던 것이다. 


바이러스는 어디든 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 속에, 먹는 음식 속에도, 우리 몸은 물론이고 바닷속에도 있다. 아마도 수백만 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인간이 발견한 바이러스는 대략 5000 종에 불과하고, 그중 200종 정도가 인간에게 병을 옮긴다.


하지만 병원체 바이러스는 전체 바이러스 중 극소수에 불과하다. 모든 바이러스가 유해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보면 숙주 세포 속에 들어가 숙주의 세포 기관을 이용해 자신의 유전 정보를 복제, 후손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일이 끝나기 전에 숙주가 죽어버리면 바이러스 입장에서도 손해이기 때문이다. 숙주도 건강해야 바이러스도 생존과 번식이 유리하다.


담배 모자이크 바이러스(TMV). ⓒ 위키백과




하지만 인간과 바이러스가 처음 만나는 그 순간, 인간은 바이러스에 매우 취약하다. 우리 몸속에는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 즉 면역이 없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유럽인들이 가져온 바이러스 때문에 떼죽음을 당한 것도 그런 이유다. 하지만 앞서 말한 이유로 맹독성 균주는 숙주를 죽게 하면서 스스로도 단종되기에 독성이 약한 계통들이 인간과 공존하며 일종의 생태계 평형 상태를 만든다.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바이러스 질병의 독성이 약해진 것을 체감한다.


마지막으로, 인간과 무관한, 인간이 모르는 그 많은 바이러스들은 자연계에서 무슨 일을 할까? 해양 바이러스는 매일 해양 세균의 절반을 죽인다. 바다의 비브리오균이 늘면 바이러스도 늘어 비브리오균을 죽이는, 인간에게 고마운 일을 한다. 또한 바이러스는 탄소를 제거하고 산소를 만드는 일에도 관여한다.


어쩌면 인간은 바이러스가 지배하는 지구 환경에 불쑥 제 권리를 주장하고 나선 탐욕스러운 훼방꾼일지도 모른다. 그런 인간을 향해 바이러스는 호된 질책의 경고를 보내는 것, 그것이 신종 전염병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때이다.

박지욱 신경과 전문의 yosoolpir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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