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법적 이슈와 불가항력 면책 법리의 적용 가능성


'코로나19' 법적 이슈와 불가항력 면책 법리의 적용 가능성
강동욱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국제분쟁그룹장)

1. 서론

가. 배경
중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결국 각종 부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고 연이어 이를 재가공하여 수출하는 국내외 기업들의 각종 법적 분쟁이 예고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제는 국내에서도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주요 제조업의 공장폐쇄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였으며, 동시에 해외 대다수 국가들의 한국인 입국금지 조치로 비즈니스에 지장을 초래하면서 계약상 의무위반으로 인한 각종 및 다수 분야에서의 법적 분쟁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같은 국제무역분쟁 외에도, 코로나19로 인한 결혼식·돌잔치 및 여행 취소 위약금 피해구제 신청 역시 급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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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상황하에서 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China Council for The Promotion of International Trade, 'CCPIT')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기한 내에 국제무역계약을 이행할 수 없는 중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불가항력 사실증명서를 발급하기에 나섰다.

나. 예상되는 법적 쟁점
위와 같은 배경하에 예상되는 법적 분쟁으로는, 가령 ① 중국 등 해외 무역 거래 피해에 따른 국제 분쟁, 선박 체선료 분쟁, 항공·해운·여행 등 코로나 민감업종 인수합병에서의 가격조정리스크, 해상보험 관련 분쟁, 코로나19 확산 방지 과정에서의 개인정보보호, 해외사업장 운영 시의 고용자의 의무, 건설공사 지연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여행계약 취소로 인한 위약금 지급의무, 휴업과 휴업수당 지급의무 등을 들 수 있겠고, ② 이제는 한국 내에서도 확진자가 7000명을 초과하고 학교의 강제휴교, 개학연기, 공무원 출장 금지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친 중대한 사정변경이 발생하기 시작함으로써 문제가 제기되지 못할 분야를 손꼽기 어려울 정도에 이르렀다. 이처럼 광범위하고 다양한 유형의 계약상 채무불이행이 예상됨에 비하여 불가항력(force majeure, act of God)에 의한 면책 조항에 대한 일관된 해석지침은 부재한 상황이다.

이하에서는 국내법상 불가항력에 의한 면책 법리에 관하여 간단히 살펴보고, 코로나19에 따른 계약상 의무불이행과 국내법상 불가항력 법리의 적용가능성에 대하여 간단히 검토코자 한다.



2. 불가항력의 의미와 요건

가. 의의
'불가항력'이란 당사자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에서 발생하는 불가피한 사정을 이른다. 통상 계약에서 불가항력은 당사자의 책임을 면제하는 사유로 규정되며, 강학상 대표적인 사례로 항상 천재지변, 전쟁 등을 꼽게 되는데, 불가항력은 단지 당사자에게 귀책사유 없음을 의미하는 무과실보다 좁은 개념이긴 하지만, 아래에서 살펴보듯이 판례의 해석에 따르면 불가항력과 무과실의 판단 기준에 실무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나. 표준계약
국내외에서 통용되는 표준계약서에서는 대부분 불가항력으로 인한 면책 규정을 두고 있다. 가령 국제건설계약에서 통용되는 FIDIC(국제컨설팅 엔지니어링 연맹) 계약서는 불가항력(force majeure)에 관하여 ① 통제할 수 없고 ② 예견할 수 없었으며(unforeseeable) ③ 불가피한 사정으로서 ④ 상대방의 귀책사유에 의하지 않은 사정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가령 공정거래위원회의 '예식장 이용 표준약관' 은 천재지변 등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인한 경우 당사자는 계약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정하고 있으며(제12조), '국외여행 표준약관' 역시 천재지변, 전란, 정부의 명령, 운송·숙박기관 등의 파업·휴업 등으로 여행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 당사자는 여행 조건을 변경하거나(제12조) 손해배상 없이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제16조 제2항)고 정한다.

다. 국내법규
민법 제182조 및 어음법 제54조는 천재 기타 사변 등 불가항력의 경우에 시효 또는 기간의 연장을 규정하고 있다. 또한 상법 제796조는 운송인은 불가항력을 입증하여 그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정하고, 동법 제810·811조는 불가항력으로 인하여 운송물이 멸실되거나 계약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경우에 운송계약의 자동종료 또는 해제·해지 및 운임의 지급 여부와 범위를 정하고 있다. 민법 제390조 단서에 따르면 채무자의 과실없이 채무불이행이 발생한 경우 채권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는데, 불가항력이 여기에 대표적으로 해당함에 이론은 없어 보인다. 이처럼 '불가항력'은 당사자가 예견·회피할 수 없는 사유로서 당사자의 지배영역 외에서 발생하여 결국 계약당사자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 없으므로, 본래 계약에 따른 급부의무를 소멸시키거나 적어도 의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면제하는 기능과 효과를 갖는다.



라. 판례
대법원은 불가항력에 관하여 '그 사업자의 지배영역 밖에서 발생한 사건으로서 그 사업자가 통상의 수단을 다하였어도 이를 예상하거나 방지하는 것이 불가능하였음이 인정되는 사유'라고 해석하고 있다(대법원 2008. 7. 10. 선고 2008다15940, 15957 판결, 대법원 2007. 8. 23. 선고 2005다59475, 59482, 59499 판결 등). 위와 같은 결과예견·방지의무의 해태는 손해배상책임의 요건으로서 과실을 구성하는데, 그와 같이 하지 아니한 것이 불가피하였다면 과실이 있다고 볼 수 없으므로(대법원 1979. 12. 26. 선고 79다1843 판결), 당사자는 손해배상책임을 면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법원은,
1) 건설도급계약의 당사자인 수급인의 지체상금 지급의무가 문제된 사안에서, "천재지변이나 이에 준하는 경제사정의 급격한 변동 등 불가항력으로 인하여 목적물의 준공이 지연된 경우에는 수급인은 지체상금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할 것이지만, IMF사태 및 그로 인한 자재 수급의 차질 등은 불가항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대법원 2002. 9. 4. 선고 2001다1386 판결)

2) 태풍의 진로가 당초 예보된 것과는 달리 지나감에 따라 선박이 정박 중이던 항구가 예상보다 더 강한 태풍권에 들게 되어 선박이 표류하게 된 사건에서 태풍에 대비할 상당한 시간이 있었음을 이유로 원고의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하고 불가항력에 의한 면책을 부정하였고(대법원 1991.1.15. 선고 88추27 판결)

3) 태풍으로 인한 선박 표류 사건에서 당사자가 강풍과 풍랑으로 인하여 선박들의 닻줄 등이 위 선박의 스크루에 잠기어 그 작동이 멈추게 되고 기동력을 상실한 후 양식장으로 표류하여 갈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음을 이유로 불가항력에 의한 면책을 부정한 바 있다(대법원 1991.1.29. 선고 90다12588 판결).

반면 법원이 불가항력을 이유로 면책을 인정한 예로,
4) 해상을 운행하던 선박이 수중에 있는 물체와 충돌하여 화물이 침수되는 사고가 발생하였으나 당시 수심이 100m 정도이고 그런 수중물체가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수면 위의 부유물도 발견할 수 없어 미리 사고를 예견하거나 방지할 수 없었던 점에 비추어, 위 사고가 상법 제789조 제2항 제1호, 제2호에 규정된 해상 고유의 위험 내지 불가항력 또는 상법 제788조 제2항 소정의 항해과실에 의한 사고임을 이유로 운송인의 손해배상책임을 부정한 사례(대법원 2004. 7. 8 선고 2004다8494 판결),

5) 100년 발생빈도의 강우량을 기준으로 책정된 계획홍수위를 초과하여 600년 또는 1,000년 발생빈도의 강우량에 의한 하천의 범람은 예측가능성 및 회피가능성이 없는 불가항력적인 재해로서 그 영조물의 관리청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본 사례(대법원 2003. 10. 23 선고 2001다48057 판결),

6) 회사를 통해 북한으로부터 무연탄을 수입하여 납품해 오던 회사가 북한의 갑작스런 무연탄 수출금지조치로 인하여 납품의무를 지체 또는 불이행한 경우 불가항력에 해당하여 회사에게 지체상금 및 계약보증금의 지급의무를 부담하게 할 만큼의 귀책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한 사례(의정부지방법원 2010. 10. 14. 선고 2010가합4018 판결) 등을 들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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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은 판례에 의할 때 '불가항력'에 해당하는지의 여부는, (ⅰ) 계약당사자에게 귀책사유가 있는지의 여부, (ⅱ) 계약당사자에게 예견가능성이 있는지의 여부, (ⅲ) 계약당사자의 지배영역에서 일어난 일인지의 여부 등을 구체적이고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게 된다. 따라서 불가항력에 해당하는지는 개별 사안의 특수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합리적이다. 더구나 일반론을 잠시 떠나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염두에 두고 볼 때, 대부분의 경우 계약당사자 중 어느 한쪽만 일방적으로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지 않을 것이라는 사정 또한 판단에 임하게 되는 법관의 큰 고민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도 쉽게 예상이 된다.

참고로, '불가항력'은 채무를 불이행한 계약당사자의 책임을 제한하는 사유이므로 원칙상 이를 주장하는 당사자에게 그 입증책임이 있음이 통설·판례이다(대법원 1988. 11. 8. 선고 86다카775 판결 등).

3. 결론

현대 사법 출범 이후 유례가 없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하여, 그리고 확실한 선례가 없는 상태에서 불가항력과 면책 법리, 비교법적 고찰 등이 거의 백지에서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며 어느 방향으로 논의가 이어지고 어떤 판결·결정이 출현할지 법률가로서 관심을 가질 때가 아닌가 한다.
강동욱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 국제분쟁그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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