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다 쓰러져가는데 무슨 보존이냐"...법보다 서울시?…곳곳서 갈등 ㅣ 을지면옥 결국엔 철거...'면목’ 없어진 서울시


[박원순표 정비사업] 법보다 서울시?…곳곳서 갈등



역사‧문화 보존 명분으로 정비구역 묶었다 풀었다

사유재산 침해‧보존 가치 등 둘러싼 갈등 여전


    "건물이 다 쓰러져가는데 무슨 보존이냐. 사유재산 침해하지 말라!"(사직2구역 정비사업 조합)


"서대문 형무소(일제시대 독립운동 탄압기관)도 아니고 범법자를 수감했던 구치소 건물이 무슨 문화유산이라고 남겨두는건지 이해하기 어렵다."(성동구치소 졸속개발반대 범대책위원회)


'박원순표 정비사업'에서 주로 보이는 갈등 양상은 크게 이 두가지로 함축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역사‧문화적 보전가치를 이유로 정비구역 지정을 '직권 해제'하기 시작하면서 사유재산 침해 논란과 갈등은 더 커졌다. 소송전으로 치닫기도 했다.


최근들어선 대규모 정비사업을 중심으로 아파트 일부 동을 남겨두거나 옛 구치소 담장을 보존하도록 하면서 '보존가치' 자체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역사·문화 보존 앞에 '사유재산 침해' 목소리 커져


서울시 내 정비사업에서 지자체와 조합의 갈등을 키운 도화선 중 하나가 직권해제다.


서울시는 2016년 3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 조례'를 개정해 역사문화유산 보존 필요성이 높다고 판단되는 곳은 서울시장 직권으로 정비구역 해제할 수 있도록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를 근거로 2017년 3월 한양도성 성곽에 인접해 있는 종로구 사직2구역, 옥인1구역, 충신1구역(현 충신윗마을) 등 3곳의 정비구역을 직권해제했다.


박 시장은 '뉴타운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같은 해 이들 3곳을 포함해 총 35곳의 정비구역을 직권해제했다. 이는 2015년 27곳 이후 최대 규모로 당시 서울시 내 전체 정비구역 683곳 중 절반 이상인 363곳이 해제됐다.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이들 지역의 조합원 입장에선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충신1구역은 2006년 조합이 설립됐고 옥인1구역은 2009년, 사직2구역은 2012년 정비사업의 '8부 능선'으로 불리는 사업시행인가까지 받은 상태였다.


결국 사직2구역은 서울시와 종로구청에 소송을 제기해 2년여 만인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정비구역 직권해제 무효' 판결을 받았다. 당시 법원은 "역사문화적 가치 보전이라는 사유는 재개발 추진과 직접 관계가 없다"고 판결했다.


같은 해 12월엔 감사원이 '지자체 주요정책·사업 등 추진상황 특별점검'을 통해 사직2구역을 예시로 들며 서울시의 부당한 직권해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사기가 오른 사직2구역은 다시 사업 추진에 나섰지만 진척이 안되고 있다.


종로구청이 조합설립변경인가를 안 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직2구역이 구역 해제된 동안 소유권을 넘겨받은 조합원 51명(전체 조합원 260명)에 대한 정비사업 동의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사직2구역 조합 관계자는 "이미 조합원 78%의 동의로 조합설립인가를 받아 추진하던 사업인데 지금 와서 다시 동의를 받으라는건 어떤 법에도 나와 있지 않다"며 "법치국가에서 법에도 없는 사항 때문에 행정(인가)을 하지 않는 건 엄연한 사유재산 침해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존 가치' 모호…명확한 잣대 필요


보존 가치에 대한 공감대 형성도 쉽지 않다.


사직2구역의 경우 노후 불량주택이 밀집해 있어 현실적으로 보존·재생이 불가능하다는 게 지역 주민들의 얘기다.


사직2구역 조합 관계자는 "슬럼가도 아니고 폐허가라서 집이 절반은 비어있다"며 "지난해 구역 내 집 한 채가 무너지는 사고가 있었는데 워낙 오래돼서 개·보수가 안 된다더라"고 말했다.


이어 "오래된 건물은 폐인트칠 하고 문을 바꿘다는 정도로 안 되고 전면 철거가 답"이라며 "보존할 게 없다"고 덧붙였다.




사직2구역뿐만 아니라 옥인1구역, 충신1구역을 직권해제한 이유 중 하나인 한양도성의 유네스코 등재가 불발됐다는 점에서도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는 2013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한양도성을 등재하는 것을 목표로 성곽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여러 구역들과 마찰을 빚어왔으나, 2017년 등재를 자진 철회했다.





전문가들은 정비사업에서 '보존 가치'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현수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부 교수는 "영국 런던의 버킹엄궁전이 있는 동네는 인근 건물들의 층수를 5층으로 제한하고 주택 개보수나 못질 하나까지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며 "서울도 600년된 수도의 국격을 나타낼 수 있도록 적어도 사대문이나 한양도성 성곽 인근은 강하게 컨트롤하는 게 맞다"며 방향성에 공감했다.


다만 "이런 원칙이 일관성있게 가지 못하고 자꾸 바뀌고 그 과정에서 사업시행인가를 받은 곳(사직2구역 등)까지 직권해제를 하는 등은 재산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는 건 그 구역에 대한 권리가 확정됐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서울시도 지난해 10월 도시계획위원회에서 구역 지정한 이후엔 직권해제를 하지 못하도록 관련 개정조례를 공포했다.


김 교수는 "논란이 됐던 을지면옥 등 노포, 재건축 1개 동(개포주공4단지, 잠실주공5단지 등) 보존 등을 보면 맥락이 다 다르다"며 "오래됐다고 다 보존가치가 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원칙이나 기준을 구체적이고 명확히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채신화 기자 csh@bizwatch.co.kr 비즈워치




을지면옥 결국엔 철거키로 ‘졸지 면목’ 없어진 서울시

 

    서울 중구 을지로 세운3구역에 위치한 유명 노포(老鋪)인 ‘을지면옥’이 보존을 거부함에 따라 철거 수순을 밟게 됐습니다.


지난해 1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서울의 역사와 지역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노포(老鋪) 등 생활유산과 도심 전통산업을 이어가는 있는 산업생태계를 최대한 보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래픽=홍영주 기자]


당시 세운상가 일대는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 따라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세운3구역은 이미 이주·철거가 진행 중이었는데, 을지면옥과 양미옥 등의 오래된 가게들이 철거 대상에 포함됐습니다. 해당 노포들은 재개발에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보상에 대한 협의가 불발되면서 이주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보상 협의가 장기화되는 사이 노포에 대한 철거는 의견이 분분하게 나눠졌습니다. 시민단체 등에서는 전통과 문화가 있는 노포를 철거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문화적 가치가 없는 낡은 점포를 굳이 보존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그러자 서울시가 나섰습니다. 박 시장은 을지면옥 등 노포를 보존하는 것은 물론 아예 세운3구역에 대한 재정비촉진계획 자체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가 2014년에 마련한 재정비촉진계획에 생활유산을 반영하지 못한 채 수립됐기 때문에 ‘보존’을 원칙으로 종합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노포의 입장을 대변한 셈입니다.




하지만 연내 발표하겠다던 시의 재정비촉진계획 발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지난 4일에야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대한 재검토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약 1년 3개월만에 재검토 결과를 내놓은 것입니다. 그 사이 세운3구역은 사업을 중단해야만 했습니다. 이미 이주가 진행됐던 만큼 이주비 대출에 따른 금융비용 등이 무려 1,500억원 가량 발생했을 것으로 업계는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시가 발표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에서는 세운상가 일대의 건축물 상당수를 보존 또는 재생하겠다는 계획입니다. 상인과 토지주, 사업시행자, 전문가 등과 무려 80차례가 넘는 논의를 거친 결과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문제가 됐던 ‘을지면옥’은 철거될 전망입니다. 시가 노포 보존을 위해 촉진계획을 재검토했지만, 을지면옥 소유주가 원형 보전을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건물에 입점해 현재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 다시 영업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시가 사업을 중단시키면서까지 촉진계획을 변경한 이유는 바로 ‘을지면옥’이었습니다. 노포를 보존한다는 명분에서였죠. 하지만 무조건적인 보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특히 을지면옥보다 오래된 노포는 철거 대상이 되기도 하면서 시의 보존 기준에 대한 질타도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을지면옥의 철거가 기정사실화하면서 재검토 결과는 졸지에 면목이 없게 됐습니다.

심민규 기자 smk@arunews.com 한국주택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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