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 장관 싫어하는 공무원들..."차라리 정치인이 낫다"


[흔들리는 경제관료] '교수 장관 포비아'... "차라리 정치인이 낫다"


    "가장 큰 원인은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이었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에서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사태와 관련 ‘중국에서 들어온 한국인’을 확산 주범이라고 말해 설화(舌禍)에 휩싸였다. 박 장관은 중국인 입국 금지와 관련해 대한감염학회가 입국 금지를 추천하지 않았다고 말해 거짓말 논란도 일었다. 대한감염학회는 입국 금지를 추천했다.

교수 장관 임명 이유는?
말을 잘 듣기 때문?

(에스앤에스편집자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우한 코로나 브리핑을 하고 있다./오종찬 기자

 


지난달 2일 기자회견에서는 “중국에서의 한국 입국을 위한 비자 발급을 제한하고 관광 목적의 단기 비자는 발급을 중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가 2시간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박 장관은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빈곤문제, 사회보장 등을 연구해온 사람이다. 보건의료 분야의 전문성이 없었지만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지침인 스튜어드십 코드를 주도적으로 도입하기 위해 발탁됐다. 스튜어드십은 국민연금과 같은 연기금(기관투자자)이 투자 기업의 주요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한 제도로 2018년 7월 제도가 마련됐다. 일각에서는 박 장관이 매번 구설수에 오르는 것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되는 교수 자리에 오래 있다가 정부 부처의 수장이 됐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라는 얘기가 나온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한양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도 큰 정책 혼란을 야기한 인물 중 하나다. 백 전 장관은 2017년 9월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과의 간담회 직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도 하나의 가능성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FTA 폐기 여부를 논의하겠다”고 언급하자 정부 입장을 묻는 말에 이같이 답한 것인데, 통상 담당 부처 수장이 한·미 FTA 폐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었다. 산업부는 당시 해명자료까지 내며 “(폐기를 포함한) 모든 가능성에 대비해 대응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확인한 것”이라고 진화에 나서야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경제·사회적 충격이 커질수록 박능후 장관은 ‘교수 출신이 부처 장관을 맡아서는 안된다’는 점을 확인시킨 대표 사례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교수가 정부 정책을 책임지는 부처 장관이나 청와대 주요 보직을 맡아서는 안된다는 인식은 조선비즈가 기획재정부등 7개 경제부처 과장급 1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확인된다.

이 조사에서 ‘현재 정책 환경을 감안할 때 경제수장에 적합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56명(58.9%)은 관료 출신을 꼽았다. 또 33명(34.7%)은 정치인을, 6명(6.3%)은 기업인이라고 답했다. 95명이 응답했는데 교수가 수장으로 적합하다는 응답은 없었다. 관료들이 ‘교수 포비아’(공포증)에 가까울 정도로 교수가 조직의 수장으로 오는 것을 꺼리는 것이다.

그래픽= 박길우


문재인 정부는 교수 출신인 청와대 정책실장들이 실질적으로 경제정책을 이끌고 있다. 장하성, 김수현 전 실장, 김상조 실장이 기획을 하고 각 부처가 실행을 하는 구조다. 이런 분위기에서 교수 출신 인사가 경제수장에 적합하지 않다는 정서가 팽배한 것은 현 정부의 정책기획에 불만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2년간 수장으로 있었던 공정거래위원회의 분위기도 비슷하다. 한성대 무역학과 교수 출신인 김 실장은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의 초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취임한 후 지난해 6월 정책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권 실세인 김 실장이 부처 장관으로 부임한 이후 공정위는 과거 정부에 비해 위상이 올라갔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러나 직원들의 시각은 사뭇 다르다. 지금도 ‘김상조 피로증’을 호소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 김 실장은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직원들에 대한 통제를 크게 강화했다.



2018년 초부터 현직자와 퇴직자의 부적절한 접촉을 막는다며 업무공간이 아닌 곳에서 퇴직자와 사적(私的)접촉을 하면 사후 보고를 하도록 의무화했다. 또 그해 8월부터는 퇴직자와의 사적 만남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고 사건과 관련해 퇴직자를 사적 공간에서 만난 직원은 중징계하고 사무실 전화, 이메일 등을 통한 업무상 접촉도 사후 보고 대상에 포함시켰다. 심지어는 직원 경조사 등에서 퇴직 직원을 만난 내역도 신고하는 지침을 내렸다가 지나친 통제라는 반발이 일자 취소하기도 했다.

2018년 공정위 퇴직 공무원 재취업 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도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 그동안 공정위가 퇴직자의 민간 기업 재취업을 알선해준 관행이 드러난 것인데, 공정위는 자체 정화 방안으로 외부 기관에서 제공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직원들이 참여할 수 없게 했다. 민간 기업 관계자들과 접촉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규제 강화 방안이 시행되면서 2018년 하반기에만 직원 수십명이 다른 부처 전출을 타진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관료들이 교수 출신 수장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는 하고 싶은 말을 너무 쉽게 해버리는 가벼움이 조직에 해가 되기 때문이다. 또 많은 교수들이 관료사회를 ‘사적 네트워크로 부당한 일을 하는 곳’이라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관료들이 꼽는 교수 출신 장관의 더 큰 문제점은 정책의 실효성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행정부는 정책을 만들어내는게 핵심역할인 조직인데 어떤 정책이 얼만큼의 실효성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장관으로 오면 조직 전체의 기능이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이 추진했던 대기업 불공정행위 규제강화 정책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 전 위원장은 취임 후 대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잡겠다고 기업집단국을 신설하며 많은 인력을 조사현장에 투입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공정위의 역할은 시장의 경쟁구조를 유지해 소비자 후생을 증진하는 것인데, 경제사회적 약자인 중소기업을 직접 보호하고 강자인 대기업에 대해 직접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취지였다.

이런 김 전 위원장의 기조에 따라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하이트진로(2018년), 효성(2018년), LS(2018년), 동부팜한농(2018년), 대림(2019년), 태광(2019년) 등 대기업을 사익편취, 일감몰아주기 등의 명분으로 제재하고 총수2세 등 관련된 사람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위법행위를 저질렀다는 사법부의 최종 판결을 받은 기업은 없다.
스페셜정해용 기자,, 편집= 임홍경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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