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우왕좌왕 콘트롤 타워..청와대 독주에 경제관료는 '정중동'


청와대 독주에 'Yes man'만… 납작 엎드린 경제관료


청와대 눈치 살피기에 정책 현장에서는 혼란 가중

전문성보다 정무적 판단… 반기들면 불이익 불안


     올해 초 한국 경제가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았다. 1월 소매판매는 전월대비 3.1% 감소해 2011년 2월(-7.0%) 이후 8년 11개월 만에 가장 크게 줄었다. 제조업 경기를 보여주는 광공업 생산도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큰 폭인 1.3% 감소(전월대비)했다. 금융시장에서는 코로나 감염자가 본격적으로 늘어난 지난 2월부터 소비, 생산지표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우왕좌왕 대응이 코로나발(發) 경제쇼크를 키웠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코로나 발생 초기부터 중국인을 입국 금지 시켜야 한다는 전문가 집단의 요구를 무시했다. 의사협회는 중국인 입국금지를 7번이나 주장했다.


김강립(보건복지부 차관·맨 오른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이 2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결과 등 정례브리핑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면적인 입국 금지는 어렵더라도 관광비자 발급이라도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정부 안에서 제기됐지만 묵살됐다. 의사출신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지난달 19일 브리핑에서 “방역 입장에선 고위험군이 덜 들어오는 (중국인) 입국금지가 당연히 좋다”고 밝힌 바 있다. 메르스 사태 이후 질병관리본부(질본)의 전문성을 방역 정책에 반영하기 위해 조직을 차관급으로 격상했지만 코로나 사태 대응에서 질본의 전문성은 후순위로 밀렸다.


관가에서는 코로나 방역 대응 혼선이 청와대가 정책 결정권을 독점하는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스타일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관료들의 전문성보다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이 우선하는 상황이 정책 현장에서의 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반응이다.


청와대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방한에 집착해 의협 등 전문가의 중국인 입국금지 주장을 묵살한 게 대표적이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73만명에 달했던 지난달 20일 문 대통령은 시 주석과의 통화에서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중국 측의 노력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이날 통화에 대해 “시 주석의 방한 문제와 관련, 두 정상은 금년 상반기 방한을 변함없이 추진하기로 하고 구체적 시기는 외교 당국 간에 조율하기로 했다”고 브리핑했다.


청와대가 의사 결정을 독점하면서 직업 관료들은 청와대 하명(下命)을 받드는 '예스맨(yse man)'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 방역 대책과 관련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을 맡고 있는 김강립 보건복지부 차관이 청와대 입장을 전달하는 브리핑으로 구설에 오른 것이 대표적이다.




김 차관은 지난달 24일 브리핑에서 ‘코로나19는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라고 했던 문 대통령 발언을 두둔했다. 김 차관은 당시 “대통령이 경제계 인사들과 코로나19 발생으로 인한 경제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자리였다”면서 “‘우리가 힘을 합치면 머지않아 코로나19도 마무리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희망을 같이 나눈 것으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세종시 관가에서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18년 11월 예산안 국회 심의 도중 경질 통보를 받은 것을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문재인 정부 첫 경제사령탑이었던 김 전 부총리는 2018~2019년 2년 간 최저임금이 30%가량 인상되는 과정에서 청와대에 쓴소리를 자주했다.



2018년 11월 8일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김 전 부총리는 전날 “경제에 관한 ‘정치적 의사 결정’의 위기”라고 말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11월 9일 김 전 부총리를 경질했다./이덕훈 기자




김 전 부총리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기할 때마다 청와대 측으로부터 ‘자기 정치를 한다’는 견제를 받았고, 국회 예산 심의 도중에 후임자 인선이 발표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김 전 부총리가 국회 예결위 심의 과정에서 “경제에 관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 게 청와대를 자극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김 전 부총리의 후임으로 당시 국무조정실장이었던 홍남기 부총리가 취임한 후, 청와대와 기재부의 마찰은 없어졌지만 동시에 기재부의 목소리도 사라졌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세종시 관가에서는 김 전 부총리 경질을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 1기 청와대 비서관들이 부처 차관으로 내려왔다는 것을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의 부처 장악이 이 때부터 본격화됐다는 시각이다. 청와대 출신 차관들이 청와대와 의사 소통이 원활한 관료 중심으로 주요 보직을 채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과장급 관료는 “이 당시 행시 기수를 몇 단계 뛰어넘는 발탁 인사 대상자들이 대부분 청와대 핵심 실세들과 같은 지역 출신이거나, 청와대 실세들과 과거 외부 기관에서 같이 근무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라면서 “청와대와 가까울수록 요직에 등용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청와대 입김이 강해졌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는 부처 고유의 목소리가 낮아진 결과로 이어졌다. 재정건전성 지킴이 역할을 도맡았던 기재부 예산실의 ‘소·부·장’ 특별회계 도입 수용 과정이 대표 사례다.




기재부는 지난해 8월말 공개한 2020년 정부 예산안에서 소재·부품·장비(소·부·장) R&D(연구개발) 예산을 일반회계 내에서 2조4000억원 증액시키겠다고 밝혔다. 일반회계로 편성됐던 소·부·장 예산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특별회계 예산으로 변경됐다. 더불어민주당이 당정청 협의를 통해  '소재·부품·장비산업 경쟁력강화를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고 소·부·장 예산을 특별회계로 편성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소재 부품 수출 규제에 대한 극일(克日)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이다.


예산실은 이에 반대 의견을 냈다. 매년 일정한 금액이 고정적으로 투입되는 특별회계로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경우 낭비 요인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예산 심의 당시엔 소·부·장 특별법이 통과되기 전이어서 예산편성 근거가 없다는 것도 반대 논거였다. 소·부·장 특별법은 2020년 예산안이 통과된 이후인 지난해 12월말 국회를 통과했다.


이같은 예산실의 의사개진은 청와대와 여당 방침에 반기를 든 것으로 인식됐고, 주요 간부들은 홍 부총리 등으로부터 심한 질책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실이 지나치게 고지식하다는 분위기는 간부 인사 등에 일부 반영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1월 10일 홍남기(오른쪽)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국회에 들어서고 있다./이덕훈 기자




이와 관련 경제부처 안팎에서는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의 지난 1월 언론 인터뷰를 주목한다. 김 실장은 이 인터뷰에서 “전통적인 방식의 예산 편성은 사업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예산실에서 챙겨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문제는 큰 사업, 장기 사업, 타 부처와의 협업사업을 못한다는 점”이라며 기재부 주도 예산 편성에 부정적인 인식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현재 예산 시스템 하에서는 예산의 규모를 늘리는 문제도 있지만 그 예산이 정말 국민 경제의 장기적 생산성에 기여하는 예산으로 짜여질까라고 하는 것에 의문을 가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 인터뷰를 놓고 정부조직법상 기재부 권한으로 명시된 예산 편성권에 청와대가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해석한다. 소·부·장처럼 청와대 의지가 강한 사업을 별도 특별회계로 편성하면 재원과 집행 등에 관해 기재부의 간섭을 피할 수 있다. 청와대와 해당 부처가 마음만 먹으면 예산 사업을 마구 만들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한 경제부처 과장급 관료는 “예산 편성 권한을 기재부에 집중시킨 것은 가용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국가경제 발전이라는 긴 안목에서 고도의 전략적 판단에 따라 예산을 배분해야 한다는 정신에서 비롯된것”이라며 “기재부의 예산 통제가 허술해지면 정부 예산이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비효율적으로 낭비되는 사례가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석 기자, 편집= 임홍경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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