괭이잠 말고 단잠·꿀잠을 [노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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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잠 말고 단잠·꿀잠을

2020.03.06

당신의 가장 큰 욕망은 무엇인가요? 식욕, 성욕, 수면욕, 금전욕, 권력욕…. 이 중 식욕, 성욕, 수면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생물적·본능적 욕망이지요. 나는 권력욕·명예욕은 낮은 반면 수면욕이 매우 강합니다. 잠을 달게 자야 표정이 온화하고 말도 부드럽습니다. 반대 상황은 상상에 맡길게요. 오해하진 마세요. ‘미인은 잠꾸러기’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답니다.

피천득도 수필 ‘잠’에서 우리네 삶을 밝게 하는 데 아주 중요한 것으로 잠을 강조했습니다. “잠을 못 잔 사람에게는 풀의 향기도, 새소리도, 하늘도, 신선한 햇빛조차도 시들해지는 것이다. 잠을 희생하는 대가는 너무나 크다. 끼니를 한두 끼 굶고는 웃는 낯을 할 수 있으나, 잠을 하루 못 잤다면 찌푸릴 수밖에 없다.”

잠이 부족해 툭하면 화를 내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몹시 나빴던 대표적 인물로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을 꼽을 수 있습니다. 수면 전문가들은 에디슨은 하루 3~4시간만 잤기 때문에 늘 감정 조절에 문제가 있었다고 분석합니다.

교사인 30년 지기 친구도 비슷한 말을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거친 말을 쓰는 가장 큰 이유는 ‘부족한 잠’ 때문이라고요. 아이에게 미래의 멋진 삶을 강조하면서 늦은 밤까지 공부시키는 학부모가 너무나도 많다고 합니다. 아이가 책상 앞에서 부모 눈을 피해 ‘말뚝잠(꼿꼿이 앉아서 자는 잠)’이라도 자면 귀신같이 알아채곤 흔들어 깨운다네요. 아이들이 “잠 고문을 당했다”고 말할 정도랍니다.

아시다시피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졸린 사람의 눈꺼풀이잖아요. 오죽하면 천근만근이라 표현했을까요. 한창 잠이 많은 나이에 못 자게 억압하니 아이들이 작은 일에도 짜증을 내고 욕을 하고 싸우곤 한다는 것입니다. 탈모,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도 여럿이라며 28년 차 교사가 한숨을 쉬는데 땅이 꺼지는 줄 알았습니다. ‘미래’를 담보로 행복을 유예한 결과가 비참합니다. 아이들이 잘 때 자고, 놀 때 신나게 놀면서 공부할 수 있게 부모들이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잠은 우리네 삶의 기본인 만큼 표현하는 말도 다양합니다. 한 해 농사의 채비로 때맞춰 내리는 봄비는 고맙고 달아서 ‘단비’ ‘꿀비’라고 부른 것처럼, 깊이 잘 잔 잠은 ‘단잠’ ‘꿀잠’이라고 합니다.
‘꽃잠’도 깊이 잘 잔 잠인데, 옛말엔 ‘신랑 신부가 처음으로 함께 자는 잠’이라는 황홀한 뜻도 있습니다. 일생에 가장 아름답고 가슴 떨리는, 그래서 영원히 기억에 남을 첫날밤을 곱게 핀 ‘꽃’에 비유한 것이죠. 선조들의 ‘아슬아슬한(19금)’ 낭만에 제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신랑 신부가 사랑을 나눈 후 깊이 다디달게 잤을 터이니 꽃잠은 행복한 잠입니다.

‘통잠’과 ‘온잠’도 밤새 깨지 않고 해가 뜰 때까지 곤히 자는 잠을 말합니다.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통잠·온잠보다 깊이 잘 때도 있지요? 바로 ‘저승잠’입니다. 박범신 소설 ‘죽음보다 깊은 잠’이 바로 저승잠을 말한 듯싶네요.

‘발편잠’도 있습니다. 근심걱정 없이 마음놓고 편안하게 쉬는 잠을 뜻합니다. ‘발+펴다+잠’의 형태로, 발을 펴고 자는 잠입니다. 속이 편해야 두 다리 쭉 뻗고 기분 좋게 잠을 잘 수가 있지요. 나는 며칠 전 주말 ‘그루잠’에 빠져 오전을 꿈속에 보냈습니다. 그루잠은 ‘두벌잠’과 마찬가지로 한 번 들었던 잠이 깨었다가 다시 든 잠인데, 꿀맛같이 달콤했습니다.

즐거운 잠만큼 불편한 잠도 많습니다. 깊이 못 들고 자주 깨는 잠은 ‘괭이(고양이)잠, 노루잠, 토끼잠’이라고 합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놀라서 깨는 동물들 모습이 상상되지요. 눕지도 못하고 등을 구부리고 앉아서 자는 잠은 ‘고주박잠’입니다. 땅에 박힌 채 썩은 소나무의 그루터기가 고주박이라 왠지 마음이 짠합니다.

몹시 피곤해(혹은 술에 취해) 옷을 입은 채로 아무것도 덮지 않고 아무데나 쓰려져 잘 때도 있지요? ‘등걸잠’입니다. 잠자리에 나란히 누웠는데, 깨고 보면 다른 방향에 가 있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빙빙 돌면서 자는 ‘돌꼇잠’ 때문입니다. 밤새 움직였으니 다음 날 얼마나 피곤할까요. 자도 자도 피곤한 이유일 것입니다.

볼테르는 “신은 현세에 있어서 여러 가지 근심의 보상으로 우리들에게 희망과 수면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골치 아픈 일 때문에, 미운 사람이 자꾸 떠올라서, 가족이 코로나19에 감염될까 봐 조마조마해 못 주무셨나요? 오늘 밤엔 편안한 마음으로 푹 주무십시오. 잘 자야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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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노경아

경향신문 교열기자·사보편집장, 서울연구원(옛 시정개발연구원) 출판담당 연구원을 거쳐 현재 이투데이 부장대우 교열팀장. 우리 어문 칼럼인‘라온 우리말 터’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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