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건 또 무슨 말..."이젠 알코올이 없어서 주사도 못 놓다니"


[OK!제보] "전쟁 난 것도 아닌데…알코올 부족해 주사도 못 놓을 판"


[이 기사는 경기 화성시에 의료직에 종사하는 윤모(40)씨가 보내주신 제보를 토대로 연합뉴스가 취재해 작성했습니다.]


    "평소 병원에서 가장 흔한 게 소독용 알코올인데 다 어디로 간 건지 모르겠네요."


경기도 화성 정형외과에서 의료기사로 일하는 윤모(40)씨는 병원 한구석 창고만 보면 속이 탄다. 넉넉히 쌓아뒀던 소독용 알코올 상자가 거의 바닥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난달초를 기점으로 납품업체가 물량을 점차 줄이더니 최근 들어 공급 자체를 중단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급속히 확산하며 소독용 알코올이나 소독용 솜 등 의료 소모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자 동네 병원이 직격타를 맞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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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씨는 "10년 넘게 병원 밥을 먹어왔지만 알코올이 동이 나는 것은 처음 본다"라며 "이대로라면 열흘을 버티기 힘들고 조만간에 주사를 못 놓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병원이야 맷집이 있으니 버틸 수 있겠지만 우리 같은 동네 병원은 생존이 달린 문제"라며 "이웃의 건강을 책임지는 중소 동네병원의 생존을 위해 의료용 소모품을 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소연했다.


2008년부터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외과를 운영해온 서정화(가명)씨는 "소독용 알코올 가격이 평소보다 두배 가까이 오른 것 같다"며 "4ℓ짜리 한 통이 8천원 정도 했는데 지금은 1만5천원까지 부른다"고 말했다.


그는 "납품 업체 측은 수요가 급증해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며 "소독약 냄새 안 나는 병원을 상상해 본 적 있느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납품업체 측은 팔고 싶어도 제품을 구할 수 없는 실정이라고 항변했다.


윤씨가 속한 병원에 의료용품을 공급하는 업체 관계자는 "15년 장사하면서 알코올이 떨어져서 못 파는 경우는 이례적"이라며 "우리와 거래하는 동네 병원 중 상당수가 길어야 일주일 뒤에 바닥이 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업체가 운영하는 온라인 판매 사이트의 소독용 알코올은 대부분 품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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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관계자는 "알코올 생산량은 일정한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형병원과 보건소 등으로 물량이 몰리면서 동네 병원으로 가야 하는 몫까지 부족해진 것"이라며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당시에도 이런 적은 없었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서울 영등포구 한 의료용품 판매업체는 "생산량은 비슷하지만 지난달을 기점으로 주문량이 평소보다 2∼3배 늘었다"며 "마스크, 알코올, 알코올 솜, 손소독제 등 순서로 주문이 급증해 홈페이지에 '배송이 지연되는 것을 양해 바란다'는 공지글을 띄웠다"고 밝혔다.


경기도 고양시 한 의료용품 업체 관계자는 "보통 제품을 생산하면 3차 의료기관(상급 종합병원), 2차 의료기관(일반 종합병원), 1차 의료기관(의원이나 동네 병원 등) 순으로 납품을 한다"라며 "이런 순서 탓에 동네 병원까지 가는 물품이 달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 환자가 몰린 대구의 동네병원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대구 달성군에 문을 연 소아청소년 의원 관계자는 "납품업체에 빨리 알코올을 달라고 주문했지만 '재고가 없다'고만 한다"라며 "병원 직원들이 인터넷 쇼핑몰이나 병원 주변 약국을 샅샅이 뒤지며 구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대구 동구에 있는 소아과 의원 관계자도 "한달은 버틸 수 있지만 그 이후는 장담을 못한다"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알코올 등 소독용 의료용품 대부분 품절된 의료용 소모품 판매사이트들[각 인터넷 쇼핑몰 캡처]


이에 대해 대한중소병원협회 관계자는 "지난 3일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했다"며 "정부가 지정한 주요 의료용 소모품 납품회사가 있지만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라 유통망 확대 등 현실 가능한 방법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이필수 중소병원살리기 특별위원회 위원장(대한의사협회 부회장)은 "지금 작은 병원에서 마스크와 알코올 등이 부족하다는 민원이 수차례 들어오고 있다"며 "오죽하면 동네 병원끼리 서로 빌리고 빌려주는 상황까지 갔겠냐"라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규모가 큰 병원이야 재고량이 넉넉할 테니 코로나19 사태가 지나갈 때까지 버틸 수 있다고 보지만 동네 병원은 그렇지 않다"며 "중소병원에 대한 맞춤형 지원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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