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급에도 '계급'이 있더라"


9급 공무원 합격하더니 관두고 또 시험?… 9급에도 '계급'이 있더라

워라밸·조직문화 천차만별

     '평생직장'. 취업난과 고용 불안이 심한 2020년에는 낯선 말이 됐다. 그럼에도 정년까지 다닐 수 있는 직장은 아직 있다. 공무원이다. 지난해 5월 통계청은 청년(15~29세) 취준생 71만4000명 중 30%가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라고 발표했다.

지난해 6월 지방직 9급 공무원 시험 응시생들이 고사장을 확인하고 있다. 2019년 9급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국가직 39.2대1, 지방직 10.4대 1이었다. / 연합뉴스



강성현(가명·36)씨는 스물다섯이던 2009년 한 지방자치단체의 기술직 9급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강씨는 3년 만에 사표를 냈다. 그는 공무원 수험서를 다시 폈다. 한 번 더 합격. 우정사업본부에서 근무하는 국가직 9급 공무원이 됐다. 1년 정도 근무하던 그는 두 번째 퇴직을 했다. 세 번째로 공시생이 돼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세 번째 합격. 일반 행정 업무를 보는 국가직 9급 공무원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9급 공무원은 많은 청년의 꿈이자 전쟁터다. 선망받는 9급 공무원이 된 그는 왜 사직서를 던지고 다시 공시생으로 돌아간 걸까.

9급에도 서열이 있다?

"첫 직장을 계속 다녔으면 지금쯤 6급 달았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평생 버티며 일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만뒀어요." 강씨는 구시대적인 조직 문화가 싫어 첫 사표를 썼다. "상하 관계가 심했어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제가 있던 곳은 육두문자는 물론 술 안 사주면 문서 결재를 안 하기도 했어요. 특히 지방직 기술직은 인원이 적어서 첫 상사가 평생 상사가 되기도 합니다. 한번 찍히면 승진도 어렵죠." 그는 사직서를 쓰고 나서 '이 바닥 좁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며 진저리쳤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2018년 국가직 9급 일반공무원은 1만2791명. 4.3%인 552명이 퇴사했다. 행정안전부는 같은 해 지방직 9급 공무원 3만2149명 중 1070명(3.3%)이 그만뒀다고 밝혔다.

 


같은 9급 공무원이라도 다 같은 공무원이 아니다. 비슷한 월급을 받으면서도 근무 부처에 따라 소위 '워라밸'이 천차만별. 공시생들 사이에 선호도 서열이 생겼다. '법·일교출·노병우'라는 약어가 있다. '법'은 법원직, '일교출'은 일반행정·교육행정·출입국관리직, '노병우'는 고용노동부·병무청·우정사업본부를 묶어 부르는 말이다. 지난해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에서 일반행정직(전국)은 114대1, 교육행정직은 172대1의 경쟁률을 뚫어야 했다. 노병우의 경쟁률은 22대1(고용노동부), 34대1(병무청), 28대1(우정사업본부)이었다.

이 순서는 민원인 응대 강도를 고스란히 반영한다. 고용노동부·병무청·우정사업본부는 악성 민원인이 상대적으로 많은 곳으로 꼽힌다. 정현우(가명·41)씨는 고용노동부와 병무청 소속 국가직 9급 공무원을 그만두고 세 번째 이직을 준비 중이다. 그는 "다들 공무원이 편한 줄 아는데, 민원인에게 치여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앞으로 수십 년 힘들게 보내는 것보다 젊을 때 일하기 좋은 곳을 찾아가는 게 낫죠"라고 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 9급도 붙어본 놈이 또 붙더라." 국가직 9급 공무원 김서령(가명·29)씨가 말했다. 임용 2년도 되지 않아 37명으로 시작한 김씨의 연수원 동기 중 10명이 사표를 냈다. 그중 절반은 다시 공무원으로 이직을 준비 중이다.

공시 필기만 9차례 합격한 김동혁씨/1 boon

7·9급 공무원 시험을 무려 5번 합격한 청년의 빼곡한 공부노트
https://1boon.kakao.com/jobsN/58e2fea1ed94d200019b55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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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직장인이 퇴사를 꿈꾼다. 다만 재취업할 자신이 없어 사직서를 품 속에 모셔 놓을 뿐이다. 9급 공무원 시험의 '달인' 강씨는 "한번 합격해 보면 실제 경쟁은 심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고 했다. 2019년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한 19만5000명 중 15만4000명만이 시험을 쳤다. 결시율은 21%. 15만4000명 중 7만2000명이 한 과목 이상에서 40점을 넘지 못해 과락했다. 절반에 가깝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18년 공직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8~9급 공무원의 34.2%가 이직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이직을 하고 싶은 이유 중 41.7%가 '낮은 보수'였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청년들에게 9급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최고의 선택은 아닐 수 있다. 지금처럼 취업난이 가중되는 시대에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 중 직업 안정성과 노후 보장, 워라밸까지 충족하는 최선이 9급인 것이다. 안정성 높은 공무원 조직 내에서 마음에 맞는 문화를 가진 근무지에 안착하는 전략으로 보인다"고 했다.
조유진 기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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