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특파원의 아비규환 우한 탈출기


지도에도 없는 샛길로 우한 탈출… 우리 차 뒤로 수십대가 따라왔다

[우한 폐렴 확산]
박수찬 특파원 우한 탈출기


봉쇄 발표날에도 빠져나가는 행렬
기자가 탄 택시, 검문소 우회하려 비포장도로·다리밑 좁은길로 이동


박수찬 특파원

'죄송합니다. 예약하신 1월 25일 우한~베이징 비행편이 공공 안전상 원인으로 취소됐습니다. 취소나 기간 변경을 원하시면….'

 


지난 23일 오후 5시 중국 남방항공이 보낸 문자 메시지를 받고 실감했다. 이 도시에 갇혔다는 것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가 갑자기 확산한다는 소식을 듣고 우한에 도착한 건 22일 아침이었다. 25일 도시를 떠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우한시 방역지휘본부는 23일 새벽 "오전 10시부터 대중교통을 중단하고 비행기·기차를 이용해 우한을 떠날 수 없다"고 전격 발표했다.

처음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날 기차역, 버스터미널 앞에 나가 취재하면서도 '정 안 되면 차편으로 나가자'고 생각했다. 기자가 가본 장한(江漢)구의 한 수퍼마켓에는 채소 코너 군데군데 빈칸이 있었지만 사재기라고 부를 정도의 혼란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호텔 측이 숙박 연장을 거부해 잠자리도 문제였다. 투숙 기간에도 호텔문 앞에서 체온을 재 37.5도가 넘으면 방을 빼야 한다고 했다.

 


점심때가 지나자 중국 관영 CCTV가 "우한시 교통 당국이 도시를 빠져나가는 주요 고속도로 출입구를 폐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한 총영사관 측은 "일반도로는 통행이 가능하지만 언제 폐쇄될지 알 수 없다"고 했고, 호텔 직원은 "이미 일반 도로도 막혔다"고 했다. 한커우 기차역 근처에서 만난 경찰관은 "시간이 갈수록 나가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날이 어두워지자 춘제(春節·중국 설) 기간 하루 13만명이 이용하는 한커우역 주변도 인적이 끊겼다. 더 늦기 전에 나가야겠다는 생각에 택시를 불렀다. 30여 분을 기다린 끝에 한 대가 왔다.

"이창(宜昌) 갑니다." 우한에서 서쪽으로 300여㎞ 떨어진 이창까지 가 달라는 말에 마스크를 쓴 기사 린(林)모씨는 주저했다. "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휴대폰 지도 앱(응용 프로그램)을 켰다. 우한 주변 도로에 '통행금지' 표시가 20개 가까이 떴다.

 


폐쇄된 고속도로를 피해 서쪽으로 달렸다. 차량 두 대가 지나가기 빠듯한 길에도 전조등을 켠 승용차와 화물차 수십 대가 줄을 이었다. 기자처럼 봉쇄령을 뚫고 우한을 빠져나가는 행렬이었다.

참고자료 Dimsum dai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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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뚫고 1시간쯤 달렸을 무렵 앞차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50여m 앞 검문소에선 경찰과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차를 돌려세우고 있었다. 우한이 고향인 린씨가 휴대전화 메신저로 친구 기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공사 중인 도로를 포함해 비포장도로를 달렸지만 세 차례나 막다른 길에서 차를 돌렸다. 지도에 없는 고가(高架) 밑 도로에 들어간 끝에 기자가 탄 차는 검문소를 우회하는 데 성공했다. 차량 수십 대가 기자가 탄 택시와 함께 우한을 빠져나왔다.

 


린씨는 이창까지 300여㎞를 달리면서 기름을 넣을 때를 빼곤 한 번도 차를 멈추지 않았다. "도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몰라 최대한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우한시는 24일 우한 시내 택시 운행을 제한하고, 26일부터는 허가받은 차를 제외하고는 모든 차량의 시내 중심 구역 운행을 금지했다.
박수찬 특파원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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