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동력분산식(EMU)’ 고속열차 세계무대에 진출 시동

한국 EMU 고속열차, 세계무대 시동

 

“기다려라, 독일 ICE-일본 신칸센-중국 CRH”
현대로템 올해부터 본격 생산
국내서 상업운행 실적 쌓은 후 글로벌 대세인 EMU 시장에 도전
정부 5년간 2조 규모 발주 계획


      현대로템이 세계 고속열차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동력분산식(EMU)’ 열차를 올해부터 본격 생산한다. 정부가 2024년까지 2조 원 규모로 EMU 열차를 발주하기 때문이다. 이번 EMU 고속열차 생산을 계기로 현대로템은 국내에서 상업운행 실적을 쌓아 세계 시장에 진출할 계획이다.

현대로템이 지난해 11월 경남 창원공장에서 처음 출고한 동력분산식(EMU) 고속열차. 정부는 올해부터 2024년까지 2조 원 규모로 시속 300km와 250km급 EMU 고속열차 2종을 발주할 예정이다. 현대로템 제공

 


20일 한국철도시설공단에 따르면 2020∼2024년 국내 철도차량 발주계획에서 EMU 고속열차 물량은 2조282억 원에 이른다. 금액 기준으로 이 기간 전체 철도차량 발주 물량의 35.4% 수준이다. 1990년대 프랑스 알스톰으로부터 KTX를 도입한 이후 최대다. 정부가 2020년부터 남부내륙선, 서해선 등을 고속철도를 중심으로 국가 철도망을 구축할 계획인 데다 기존의 경부·호남고속철도, 수서고속철도(SR)의 열차 증편 수요까지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주되는 열차는 모두 EMU 방식이다. 열차의 동력이 열차의 맨 앞과 뒤를 제외한 중간 객실 칸에 분산돼 있다. 반면 기존 KTX, KTX-산천에 채택된 동력집중식은 열차의 맨 앞과 뒤에서만 동력을 낸다. EMU는 동력이 중간 여러 칸에 고루 분산돼 열차의 가·감속 성능이 좋다. 출발하거나 멈출 때 시간이 집중식 열차보다 짧다. 열차가 중간 역에 정차하는 일이 잦은 한국 철도 특성에 유리한 셈이다. 열차의 동력부에서 고장이 났을 때 집중식 열차는 운행이 불가능하지만, EMU는 고장이 나지 않은 칸의 동력만으로 비상 이동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세계 고속열차 시장 역시 대부분 EMU 중심이다. 1월 세계철도연맹(UIC) 집계 기준으로 세계 고속열차의 76%가 EMU다. 반면 KTX가 쓰는 동력집중식은 24%에 머문다. 결국 일찍이 EMU를 선택한 독일 ICE, 일본 신칸센, 중국 CRH가 세계 시장을 싹쓸이하고 있다.

현대로템 역시 2010년대 초반 EMU 고속열차 기술을 확보했지만 해외 고속열차 수출 실적이 1건도 없다. 해외 시장에서는 EMU 수요가 높지만, 정작 수출을 위해 필요한 국내 상업운행 실적이 ‘0’이었기 때문이다. 2010년대 SRT, 강릉선 등 새 고속열차 발주 기회가 있었지만 정부는 모두 동력집중식을 선택했다. 철도업계 관계자는 “한국에서도 EMU 방식이 가능했지만 기존에 경험이 있어 빨리 제작할 수 있는 집중식 방식의 열차를 정부가 우선 투입해 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도 세계 시장의 흐름에 맞춰 올해부터 EMU 발주에 나서면서 현대로템의 주력인 철도사업의 수익성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로템은 지난해 3분기(7∼9월)까지의 1337억 원 적자 중 철도에서만 1305억 원의 손실을 봤다. 그동안 해외 수주를 이어온 것도 대부분 도시철도(지하철) 차량이다. 열차 1칸당 가격은 도시철도는 14억 원이지만, EMU 고속열차는 40억 원으로 차이가 크다.


독일 철도통계전문업체 SCI페어케어는 올해 세계 철도산업 시장 규모가 1900억 유로(약 245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현재는 시속 150km 이하 일반철도가 75%를 차지하지만 세계적으로 이를 고속화하는 사업이 예정돼 있어 고속철도 시장은 연평균 2.9%씩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1998년 프랑스로부터 TGV를 들여온 지 10여 년 만에 고속열차 기술 자립에 성공한 데 이어 2020년대에는 EMU 고속열차로 국제 수주전에 적극 뛰어들 계획”이라며 “국내 상업운행을 성공적으로 이뤄내 해외시장 공략의 발판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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