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의 복병들


부동산시장의 복병들

심윤희 논설위원

    정부가 고강도 12·16 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지 한 달이 되어 간다. 대출, 세제, 청약 규제를 한층 높이는 역대급 대책을 쏟아낸 탓에 오름세는 주춤해졌다.


고공 행진했던 강남 재건축 아파트 호가는 주저앉았고, 15억원 이상 아파트 대출이 금지되면서 고가 주택 시장에는 조정세를 넘어 거래절벽까지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바라는 가격 안정화의 시작인지, 시장이 공포에 질려 숨죽이고 있는 것인지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부동산을 잡겠다는 정부 의지는 서릿발처럼 매섭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을 정도다. 비강남·9억원 이하 주택으로 수요가 몰리고 전세 시장이 들썩이는 풍선효과가 우려되자 정부는 통제에 가까운 규제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마음을 놓기에 올해 부동산 시장에는 복병들이 적지 않다.

 


가장 큰 복병은 공공택지 조성, 3기 신도시 등으로 전국에서 풀릴 토지보상금이다.

남양주 왕숙·하남 교산 등 3기 신도시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신설로 올해 풀릴 돈은 4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다가 7월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되면서 2023년까지 공원용지 매입에 풀릴 예산도 7조원대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과잉유동성은 부동산 시장에서 버블을 만든 주범이었다. 그런 점에서 토지보상금이 집값 상승의 불쏘시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노무현정부 때로 시계를 돌려보자. 2006년 3·30 대책 때 총부채상환비율(DTI) 시행으로 돈줄을 틀어막자 집값이 비로소 한풀 꺾었다. 그러나 10월 다시 폭등했는데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 것이 그해 풀린 토지보상금(29조9000억원)이었다. 혁신도시 조성, 2003년 2기 신도시 발표 등으로 5년간 풀린 보상금은 103조원에 달했고 임기 말인 2006년과 2007년 집중됐다. 당시 지급된 보상금이 부동산 시장을 들쑤셨고 지방에서 풀린 자금이 서울로 유입되면서 서울 집값도 자극했는데 그 흑역사가 반복될 수도있다.


정부는 대토(다른 땅을 주는 제도) 보상과 리츠를 활용하고 시기도 분산하는 등 유동성 관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토지주들이 땅보다 현금을 받아 상가나 아파트를 사길 원한다면 응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일각에서는 토지보상금과 부동산 가격이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하지만 수요를 눌러놓은 시장에서 유동성은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다는 것을 간과해선 안 된다.

두 번째 잠복한 뇌관은 4월 총선을 겨냥한 포퓰리즘식 부동산 규제완화와 개발사업이다. 당정이 9일 여의도의 26배에 해당하는 군사시설 보호구역 7709만㎡를 추가로 해제하기로 한 것이 그런 사례다. 경기도 김포·파주 등과 강원도 철원·화천 등 14곳이 대상이다.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한 지 이틀 만에 나온 '당근'으로 강원도 위수지역 해제에 대한 지역 반발을 무마하려는 전략이자 총선용 선심정책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군과 협의 없이 개발을 진행할 수 있어 땅값 불안 불씨가 될 수 있다. 지난해에는 전국 23개 지역에서 SOC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기로 했는데 이처럼 표심을 노린 국지적인 개발 공약들도 부동산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


금리 인하 가능성도 변수다. 한국은행이 17일 열릴 금융통화운영위원회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데다 부동산정책에 공조하는 차원에서 금리 인하 카드를 꺼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경기 회복세가 가시화하지 않으면 금리 인하론이 힘을 받게 될 수도 있고 이는 유동자금의 부동산 쏠림을 부를 수 있다. 유럽 국가들의 집값이 최근 요동친 것도 제로에 가까운 대출금리 때문이었다. 부동산 시장은 복병에 약하다. 작은 불씨에도 들불처럼 타오를 수 있다. 이 같은 복병들의 기습에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막무가내식 수요 억제책도, '투기와의 전쟁'도 물거품이 될 수 있다.
[심윤희 논설위원] 매일경제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