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 이유ㅣ대북제재 풀어주자는 의원 60명에게 묻는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 이유[현장에서/한성희]


    “2018년 ‘미투’ 운동으로 현안 대응이 많아지며 전반적으로 진정사건 조사가 지연됐다. 한정된 인력으로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조사관이 여러 번 교체됐다.”




지난해 11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던 A 씨는 숨이 턱 막혔다. 직장 성희롱에 고통받다가 인권위를 찾은 지 2년이 다 돼 가는데…. 그에게 서면으로 돌아온 답변은 고작 몇 줄짜리 ‘조사관이 바뀐 경위’였다.


A 씨는 2017년부터 약 7개월 동안 직장 상사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당했다. 그는 고민 끝에 2018년 2월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기다렸던 조사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진정을 넣은 뒤 22개월 만에 인권위 측이 일방적인 ‘조정’ 권고를 내렸을 뿐이었다. A 씨는 지금도 같은 직장에서 가해자 B 씨와 함께 일하고 있다.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며 B 씨를 포함한 직장 동료들에게 2차 가해를 겪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A 씨는 여러 차례 인권위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기다려 달라”는 말만 되풀이해 돌아왔다. 심지어 담당 조사관은 모두 5차례나 바뀌었다. 처음 사건을 맡았던 조사관은 장기 교육을 받으러 간 상태였다. 이후엔 같은 해에 조사관이 별다른 설명 없이 3번씩이나 바뀌기도 했다. A 씨는 “조사는 하고 있는지, 누가 조사하는지도 알 수 없는 상태가 이어졌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결국 A 씨는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했다. 감사에 착수한 감사원은 인권위가 ‘국가인권위원회법 구제규칙’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이 규칙에 따르면 인권위는 진정을 접수하면 3개월 이내에 진정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부득이한 사유로 조사 기간이 연장되면 진정인에게 사유를 설명해야 한다. 인권위는 감사 결과가 나온 뒤에야 “사건 처리가 지연돼 A 씨에게 심적 고통을 안긴 점을 고개 숙여 사과한다”며 답신을 보내왔다. 답신에는 “조사관 배정과 변경에 대한 진정인 정보안내에 관한 우리 위원회의 명시적 규정이나 매뉴얼은 없다”며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기 바란다”는 문장도 있었다. 인권위 관계자는 1일 A 씨의 진정에 대해 “정말 죄송하지만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며 “2018년은 ‘미투’ 운동으로 진정이 급격히 늘어났다. 조사관 1명당 사건이 140건 넘게 배정되며 과부하가 걸렸다”고 해명했다.


물론 인권위가 특정 의도로 A 씨의 진정을 무시했다고 보긴 어렵다. 실제로도 당시 인권위는 인력 부족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오랜 고통 끝에 어렵사리 손을 내밀었던 A 씨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인권위는 바로 그런 피해자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기관이다. 당장 조사관 변경 때는 바로 공지하는 등 매뉴얼을 정비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마련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공감 능력’이다.


 

한성희 사회부 기자

한성희기자 chef@donga.com 동아일보




대북제재 풀어주자는 의원 60명에게 묻는다

윤덕민 한국외대 석좌교수·前 국립외교원장


상식 있는 지도자라면 북핵에 무방비인 국민을 보호해야 한다

동해에 美핵잠수함 배치… 한미일 동맹 3국의 공동 관리하에 두자


   얼마 전 국회의원 60여명이 중·러 양국이 유엔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대북 결의안을 지지하면서 대북 제재 완화를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유엔 등 국제 무대에서 제재 완화를 주장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북한 핵무장은 최종 단계다. 하드웨어 측면에서 핵전력은 이미 완성되었다. 지난 2년간 과대 포장된 북한 비핵화 의지와 판문점, 싱가포르, 하노이 정상회담 리얼리티쇼에 열중하다 보니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가 저절로 이루어진 것으로 착각했지만, 현실은 비핵화의 첫 단추도 끼우지 못했다. 북한 핵전력은 오히려 증강되었고 20여 차례의 각종 미사일 실험으로 고도화·첨단화되고 있다. 최근 폐기했다던 동창리 미사일 실험장에서 신형 미사일 엔진 실험을 감행했고, 김정은은 새로운 전략무기를 보이겠다며 '충격적인 실제 행동'을 예고하고 있다.


이제 남은 일은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의 핵무장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했지만 이로 인해 국제 제재에 직면해 있다, 핵보유에 대한 국제적 공인을 얻어야만 제재를 피할 수 있다. 북한은 이스라엘이나 파키스탄처럼 미국의 묵인을 통해 제재를 피하고자 한다. 지난 30년간의 핵협상 과정을 보면 북한은 대미 담판을 통해 '제재 없는 핵보유국'이 되고자 한다. 하노이에서 김정은은 낡은 영변 시설을 대가로 제재 해제를 일관되게 요구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새로운 길'이란 미국이 제재를 해제하지 않으면, 다시 말해 핵보유를 묵인해주지 않으면 ICBM 도발을 재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제재 완화나 해제를 운운하는 것은 북한 핵보유를 인정하자는 말과 다름없다. 포괄적 비핵 합의도 없고 동결조차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 요구대로 제재가 해소될 경우, 우리는 더 이상 비핵화를 이끌어낼 동인이 없고 결국 핵보유국 북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북 협상에 참여했던 조셉 윤 미 국무부 전 대북특별대표는 비핵화가 30년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30년이라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핵을 고집한다면, 북한 정권에 전략적 손실이 지속적으로 부과되는 국제 제재 틀이 존재해야만 그나마 30년 걸려서라도 협상을 통한 비핵화의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대한민국 지도자라면, 그리고 비핵화를 원한다면 허물어지고 있는 국제 제재 틀을 다시금 조이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정말 상식 있는 지도자라면 증강되고 있는 북한 핵전력으로부터 국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실질적 수단을 우선적으로 강구해야 할 것이다.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으로부터 14년이 지났다. 그동안 일본은 국민을 보호하는 중층적인 미사일 방어망을 갖추었지만, 한국은 국민을 보호할 이렇다 할 억제력을 구축하지 못했다. 한·일 간 방위비가 크게 차이 나는 것도 아니다. 킬 체인, KAMD, 3축 체계 등 요란한 용어들이 동원되었지만, 현실은 제대로 된 요격 미사일도 전략위성도 배치하지 못했다. 그런데 미국 확장 억제력은 형해화될 기로에 서 있다. 한국 정부는 이념의 틀에 갇혀 미 MD(미사일방어)에 편입하지 않는다는 도그마에 빠져 있다. 사드 배치로 평택 이남의 국민은 MD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수도권 2300만명은 핵미사일에 무방비다.


미 본토가 북한 핵미사일의 사정권에 놓이게 된 상황에서 과연 미국은 서울이 핵공격을 받을 경우 평양을 핵보복할 수 있을지 적지 않은 의문이 생긴다. 이미 동맹을 겨냥한 북한의 각종 미사일 실험에도 미국은 개의치 않고 있다. 북핵에 맞서 국민을 보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핵무장이다. 한국의 핵무장은 거의 전적으로 대미 관계에 달려 있다. 물론 주한 미군이 철수하고 한·미 동맹이 와해된다면, 다른 방법이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핵우산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전술핵 재배치도 고려할 수 있지만, 방어 무기인 사드조차 제대로 배치하지 못하는 정치 지형에서 전술핵을 국내에 배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한 가지 안은 육지가 아닌 동해에 핵순항미사일을 탑재한 미국 핵잠수함을 배치하여 동맹 공동 관리하에 두는 것이다. 비핵 국가인 일본도 참여한다면 실현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서울이나 도쿄가 북한의 핵공격을 받을 경우, 자동적으로 잠수함에서 평양을 공격하는 독트린을 갖게 함으로써 핵우산의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흔들리는 한·미 동맹을 재정비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물론 중국은 반발할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나 한국의 독자 핵무장보다 중국에 훨씬 이익이 되는 시나리오다. 국민의 안전을 북한에 구걸하는 것보다 실질적 억제력을 갖추는 일이 절실한 시점이다.

조선일보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1/05/202001050152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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