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집 아니면 다 파시라"던 외침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


"사는집 아니면 다 파시라"던 외침이 우리에게 알려준 것


이진혁 기자
"정부 고위공직자도 다주택을 처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보고 2년 전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말이 떠올랐다.


2017년 8·2 부동산 대책을 발표하며 김 장관은 "집 많이 가진 사람은 좀 불편해진다"며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드렸으니 (다주택자는) 살지 않는 집을 파시라"고 했다. 똑같은 발언이 2년 만에 정책 책임자에게서 또 나왔다.

 


문재인 정부 부동산 대책은 그동안 ‘다주택자 잡기’에 집중됐다. 정책 담당자들은 살지 않는 집을 보유한 다주택자의 욕심 탓에 부동산시장이 과열된다고 봤다. 이들을 압박하면 부동산시장이 안정될 것이라고 믿었다.

정부는 2017년 8·2 부동산대책을 통해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을 투기과열지구·투기지역으로 지정했고, 이 지역 담보인정비율(LTV)·총부채상환비율(DTI)을 40%로 줄여 돈줄을 막았다. 주택담보대출을 1건 이상 보유한 가구가 추가 주담대를 받을 땐 이 비율을 10%씩 더 낮췄다. 다주택자에게 양도소득세를 중과해 시세차익을 억제하는 정책도 내놨다. 다주택자에 대한 ‘맹공’이었다.

 


하지만 엉뚱한 데서 부작용이 발생했다. 임대주택의 공공성을 높이는 이른바 ‘주거복지’까지 달성하겠다는 욕심에 등록임대사업자에게 혜택을 주며 다주택자의 등록을 유도한 것이 패착이었다. 다주택자는 물론 1주택자에게도 절세의 묘수로 통하면서 투자수요는 더 불을 뿜었다. ‘파시라’고 해놓고 정책은 ‘사시라’고 한 셈이다.

그러자 정부는 다주택자의 보유세를 강화했다. 지난해 내놓은 9·13 부동산 대책이다. 종합부동산세를 노무현 정부 수준 이상으로 강화했고 1주택자 주담대를 묶은데다 3기 신도시를 공급하는 정책도 내놨다. 대책은 어느 정도 효과를 봤다. 작년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서울 집값이 조금 내렸으니 말이다.

하지만 행복한 시절은 오래 가지 못했고, 하반기부터 집값은 다시 크게 오르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정부는 지난 16일 역대 가장 강력한 12·16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정부의 18번째 부동산 대책이다. 15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사는데는 1원도 대출해주지 말라는 억지스런 방법이 동원됐고, 청와대 비서실장과 경제부처 수장, 여당 원내대표는 약속이나 한 듯 "집 한 채를 제외하고 모두 팔자"는 권유까지 하고 나섰다.

 


이쯤 해서 앞으로 돌아가보자. ‘사는 집 아니면 다 파시라’는 2년 전의 호통에 고위 공무원들은 어떻게 대응했을까. 처분한 사람이 많지는 않은 모양새다. 여전히 두 채를 모두 가진 사람이 많다. 팔기로 한 사람은 서울 집은 남기고 세종시에서 특별공급으로 분양 받은 집을 팔았다. 팔지 않고 버티는 모습으로 고강도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판단을, 세종시를 파는 모습으로 서울의 ‘똘똘한 한 채’만 남기는게 좋다는 투자법을 알려주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집값이 안 잡히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무원들까지 사는 집이 아닌 집은 다 팔았는데도 서울 집값이 계속 오른다면 말이다. 강남이 문제라고 늘 진단했으니 고위 공무원들에게 "앞으로는 강남 아파트는 갖지 말라"고 할 것인가. 지금까지 행태를 보면 못할 것도 없는 정부이긴 하다.

여기까지 왔다면 정부는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볼 필요가 있다. 2년여 동안 실패한 논리를, 그것도 고위공직자도 믿지 않는 진단과 처방을 고수하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를 인정하고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정부가 시장을 누를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 효과는 일시적일 뿐,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집값은 또 오를 수 있다.


이제 써야 할 대책은 비바람으로 외투를 강제로 벗기는 것이 아니라 햇볕을 쏟아 스스로 외투를 벗게 하는 정책이 아닐까. 그 햇볕은 아마도 수도권이 아닌 서울에 쉴새없이 새 집이 공급될 거라는 믿음일게다. 그래야 마음 급해진 실수요자들이 오를 대로 오른 값에도 집을 사려고 뛰어들고, 그래서 집값이 더 오르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서울 요지에 집을 많이 공급하는 방법. 그것에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조선일보
케이콘텐츠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