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값, 말이 되는 수준인가


서울 집값, 말이 되는 수준인가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최근 폭등하는 서울 주택가격


실제 가치보다 수익률 비교만 골몰

소득 감안하면 런던-뉴욕보다 비싸


주요국의 절반 이하인 보유세율 높이고 

요충지 임대주택 늘려 서울 집중 줄여야


    서울 집값은 거품인가. 금융위기들을 돌이켜보면 시장이 집값에 내재된 위험을 과소평가했던 사례가 부지기수다. 집값이 위험신호를 보낼 때 사람들은 그것을 새 시대가 열리는 신호라고 착각하곤 한다.



래리 서머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자산가격이 경제의 기초 여건과 괴리되는 현상을 ‘케첩 경제학’의 비유를 들어 설명했다. 케첩 경제학자들은 케첩 가격을 설명할 때 근본적 결정 요인보다는 여러 케첩들 사이의 수익률 차이에만 관심을 갖는다. 케첩 2L짜리 한 병이 얼마에 팔렸다면 1L짜리 두 병의 가격도 비슷한 수준이어야 한다. 만약 가격차가 크다면 상대적으로 싼 곳에 투자해 수익을 얻자고 한다. 일반 경제학자들이 케첩의 생산 비용, 소비자 소득 등 근본 요인을 보자고 할 때, 케첩 경제학자들은 그런 건 어차피 정확하지 않으니 가장 견고한 데이터인 매매 가격을 보자고 하면서 그것을 기준으로 여러 케첩들의 적정 가격을 이야기한다. 전반적 가격 수준이 거품이어도 그냥 거품들끼리 비교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케첩 경제학이 주택시장을 잘 묘사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이 집을 살 때 자기 집 가격을 다른 집 가격과는 매우 주의 깊게 비교하면서도 집값의 전반적 수준 자체가 말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을 안 쓴다고 지적했다. 한국 주택시장도 그렇다. 서울 강남 어느 아파트가 25억 원에 팔리면, 옆 동네 어디는 20억 원, 강북 어디는 18억 원, 경기도 어디는 12억 원, 이런 식으로 ‘적정 가격’이 ‘키 맞추기’에 들어간다.


지금 서울 주택의 중간가격은 7억 원이 넘는다. 가구 중간소득은 연 5000만 원대로 소득 대비 집값이 13.8배다(KB국민은행 자료). 실리콘밸리의 새너제이(9.4배), 런던(8.3배), 뉴욕(5.5배), 싱가포르(4.6배)보다 비싸다(데모그래피아 데이터 자료).


왜 그럴까. 케첩 경제학으로 설명해보자. 여러 수익률들의 기준은 역시 기준금리다. 금리가 1.25%면 10억 원의 연 수익은 1250만 원이다. 그렇다면 연간 1250만 원의 임대료를 얻을 수 있는 아파트 가격도 10억 원이 적당하다. 금리가 1%인 상태에서, 임대료 1250만 원의 수익을 얻으려면 아파트 가격은 12억5000만 원으로 오른다. 금리가 0으로 가면, 집값은 폭등한다.


이런 계산은 서울 주택이 안전자산으로 간주되고 예금처럼 보유 비용이 낮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실 저금리 선진국 중에 보유세율이 이렇게 낮은 나라가 어디 있나. 한국의 실효 보유세율은 주요국의 절반에서 10분의 1 수준이다. 재건축 기대 때문인지 감가상각도 간과된다. 수도권 집중이 심화되니 임차인 못 구할 위험도 없다. 담보가치가 확실하니 대출을 제한해선 안 된다는 말도 나온다.




그럼 일반 경제학의 관점에서 서울 집값은 어떤가. 빚으로 집을 사는 청년이 향후 30년 동안 일할 수 있고 매년 1000만 원(소득 5000만 원의 20%)까지 집에 투입할 수 있다면, 30년간 집에 3억 원까지 넣을 수 있다(금리가 0일 때). 은퇴 전에 대출을 다 갚으려면 집 구매 가격도 3억 원(연 소득의 6배) 이내여야 한다. 금리가 0보다 높고 보유 비용이 존재하면 매년 원금 상환에 쓸 돈은 1000만 원보다 적어지므로 적정 집값은 더 낮아진다. 그래서 예로부터 집값은 연 소득의 3∼5배 이내가 적정하다고 여겨져 왔다. 사람의 수명은 유한하고 소비를 해야만 가족의 생존이 가능하고 주택 수요도 유지된다. 주택담보대출도 소득에 연계할 수밖에 없다.


지금 서울 집값은 사람의 소득과 동떨어져 하늘 위에서 놀고 있다. 소득의 13.8배는 케첩 경제학자에겐 말이 될지 몰라도 보통 사람에겐 말이 안 된다. 이 상황이 지속되면 ‘금수저’ 아닌 젊은이들은 투기꾼이 되거나 집에 묶인 ‘농노(農奴)’가 되거나 아니면 결혼 출산을 포기하게 된다.


이 괴리를 줄이고 돌파구를 찾으려면 임차료 부담을 낮추고 보유세를 선진화해야 한다. 핵심 요충지에 임대주택을 충분히 공급하면서 교육 의료 등의 측면에서 서울 집중 유인을 줄이고, 공시가격을 현실화해 집값 장벽의 사회적 비용에 비례해 세금을 걷어야 한다. 주택대출도 차입자의 미래 소득과 연계시켜 상황이 변해도 견딜 수 있게 해야 한다. 소득과 집값이 영원히 따로 갈 수는 없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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