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주행거리 절반으로 뚝 떨어지는 전기차 사야하나

겨울엔 ‘설설 기는’ 전기차…벤츠는 주행거리 절반 뚝

대부분 저온서 상온 대비 60% 주행
EQC, 1회에 171㎞…보조금 못 받아
벤츠 측 “히터 온도 높게 설계한 탓”
전문가 “배터리 패키징 최적화 미흡”


     국내 수입차 시장 1위인 벤츠가 첫 순수전기차인 EQC를 앞세워 고급 전기차 시장 장악에 나섰지만 보조금 수령 문턱도 못 넘었다.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EQC의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기차 보조금(정부와 지자체 합계 최대 1900만원)을 신청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사실은 신청해도 받지 못한다. 1회 충전 때 EQC의 저온(영하 7도) 주행가능거리가 상온(영상 20~30도) 거리의 60%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2017년 개정돼 지난 8월 시행된 전기차 보조금 규정에 따르면 영하 7도에서 진행되는 저온 주행테스트에서 상온 대비 60% 이상의 주행가능거리를 인증받아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전기차의 겨울철 주행거리가 과도하게 줄어드는 것에 운전자의 불만이 커지자 이를 보완하기 위해 만든 조항이다.

 


겨울엔 배터리 효율 저하, 충전도 문제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전기차는 통상 겨울철에 배터리를 더 많이 써야 해서 평소보다 주행가능거리가 20~30%가량 줄어든다. 엔진에서 발생하는 열을 활용해 히터를 돌리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엔진이 없어 전기온풍기 등의 난방장치를 별도로 가동해야 한다. 또 온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낮아지면 배터리 효율이 떨어지고 충전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배터리 히팅’도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도 전기가 꽤 소모된다.

교통환경연구소에 따르면 벤츠의 EQC400 4MATIC은 저온일 때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가 171㎞로 상온(309㎞) 대비 55.3%에 불과했다. 주행거리 인증을 받은 후 국내에 시판된 전기차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르노삼성 SM3 Z.E 57.9%, BMW i3 94Ah 58.8%). 옵션에 따라 다르지만 최저 1억500만원부터인 차값이 무색할 성능이다.

현재 보조금을 받는 전기차는 대부분 저온에서도 상온 대비 60% 이상의 주행가능거리를 유지한다. 환경부 등록 자료에 따르면 트림별로 현대차 코나는 74~76%, 니로는 78~90%다. 테슬라는 모델S가 82~89%, 모델3는 60~61%로 인증을 받았다. 재규어 I페이스도 68% 수준이다. 보조금을 신청하지 않은 테슬라 모델X도 퍼포먼스 트림 기준 상온 대비 저온 주행거리가 81%다. 심지어 EQC의 상온 1회 충전 주행가능거리(309㎞)도 비슷한 가격대의 경쟁 모델보다 짧다. 테슬라 모델S는 480~487㎞, 모델X는 421~438㎞, 재규어 I 페이스는 333㎞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벤츠라도 비싼 돈 들여가며 주행거리가 짧은 차를 살 고객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10월 22일 출시된 EQC는 지금까지 2대가 등록됐다.

 


EQC의 저온 주행가능거리가 급감하는 주요 원인은 ‘난방’ 때문이라는 게 벤츠 코리아 측의 설명이다. 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국내에서는 히터 온도와 공조 단계를 최대로 올리고 주행거리를 테스트하는데, 극한의 추위에서도 난방할 수 있도록 설계된 EQC에는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말했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도 “저온 주행거리 평가방식은 히터 성능이 뛰어난 차에 오히려 불리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기아차 등은 전기차의 히터 최대값을 27도로 설계했다. 벤츠 EQC는 내연기관 차량과 같은 32도다.

다만 BMW와 재규어 등도 전기차 히터 최대 온도를 32도로 맞춘다. EQC의 저온 주행가능거리 감소가 난방 문제만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조재필 UNIST 2차전지센터장은 “상온 대비 저온에서 효율이 50% 가까이 떨어지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며 “벤츠가 납품 받는 배터리 셀은 제조사별로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배터리운용시스템이나 자동차 설계 과정에서 최적화가 미흡한 것 아닌가 싶다”고 추정했다. 벤츠의 경우 도이치 어큐모티브라는 자회사에서 배터리 패키징을 하고 배터리운용시스템을 다룬다.

벤츠 측이 한국 정부의 저온 주행가능거리 규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정황도 있다. EQC의 주행거리 인증은 이미 8월에 완료됐다. 그 직후 보조금을 받기 어렵다는 결론을 받아들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EQC를 그대로 시장에 내놨다. 수입 전 한국 규정에 맞게 차량 설정을 조절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전기차 충전서비스 업체 차지인의 최영석 대표는 “벤츠가 EQC를 들여오기 전에 한국 전기차 시장에 대한 ‘기출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고 바로 시험을 본 격”이라고 지적했다.

MERCEDES-BENZ EQC 400 4MATIC drivetrib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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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저온 주행거리 기준 더 강화
앞으로 EQC와 같은 이유로 보조금을 받지 못하는 전기차가 더 늘어날 수 있다. 2020년에는 1회 충전 주행거리 200~300㎞ 차량은 상온 대비 저온 주행가능거리 비율 65%를 충족해야 한다. 2021년부터는 주행거리 300㎞ 이상인 전기차도 65%를 맞춰야 한다.

업체들은 강화된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현대·기아차는 전기차 배터리나 인버터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히터에 공급하는 ‘히트펌프’ 등을 차량 옵션으로 제공한다. 기아차 니로EV에 히트펌프를 탑재한 모델은 상온에서 385㎞, 저온에서 348.5㎞의 주행가능거리를 인증받았다. 다만 이 방식이 해결책은 아니다. 히트펌프 난방에 만족하지 못하는 소비자가 존재할 수 있고, 벤츠 EQC의 경우 히트펌프로 히터를 보조하도록 했는데도 저온에서 효율이 낮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결국 유럽 업체들도 히터 최대 온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최윤신 기자 choi.yoonshin@joongang.co.kr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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